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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오늘 트위터를 무대로 일어난 ‘해프닝’을 극단적으로 요약한다.

  1. 한 일간지 기자(트위터에서 나름 ‘유명인’)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영화가 너무 재미없어서 ‘카톡질’을 했다는 트윗을 올렸다.
  2. 트위터 여론 분노. (왜 우리는 이토록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는가? 나도 그런다.)
  3. 해당 기자 왈, “욕하고 싶은 사람 안 나타나 어찌 살았을까 싶은 양반들.”
  4. 울고 싶은 아이 뺨 때리는 식 대응에 트위터 이용자의 분노는 폭주했다.
  5.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발빠르게 [극장에서 스마트폰을 켠 당신을 사람들이 비난하는 5가지 이유](이하 ‘5가지 이유’)라는 글을 발행했다.
  6. 곧이어 허핑턴포스트 공동편집장, 트위터에 “오늘의 프론트페이지 1면은 모 기자님께 바칩니다.”라는 트윗을 남긴다.
  7. 사람들 환호. 허핑턴포스트코리아가 나의 복수를 대신해줬다! 브라보!

우리는 항상 마녀와 악당이 필요하다

나는 성선설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성악설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리에게는 항상 ‘마녀’가 필요하다. 내 억눌린 분노를 폭발할 수 있는 먹잇감이 필요하고, 사회적인 정의감을 충족할 수 있는 악마가 필요하다. 쉽게 말해 사회적인 정의감으로 충만한 공격심리, 일종의 ‘대중심리’는 늘 우리 주변에 있다. 나에게도 그런 ‘대중심리’가 있다. 나만 혼자 깨끗하고, 고상하다는 거 아니다. 나는 너다. 우리는 이미 자기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체는, 언론사는 적어도 미디어질을 하는 사람은 이러면 안 된다. 대중심리에 편승해서 그 대중의 공격성을 휘발적으로 해소하는 건 언론의 역할이 아니라 개인의 원한을 대신 풀어주는 흥신소나 동네 깡패의 역할이다. 언론은 비유하자면, 국가가 형법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사적인 복수를 대리하듯, 언론은 대중의 공격성을 사회적인 공적 언어로 환원해서 합리적인 토론 공간, 이른바 ‘공론장’을 제시해야 한다. 그저 대중심리에 편승해 대신 복수하면 안 된다.

마녀 화형식
마녀 화형식 (그림: 위키백과 공용)

비판과 비난

비판과 비난을 나눌 수 있는 가장 쉬운 기준은 뭘까?

행위와 행위자를 구별하는 건 ‘비판’의 기본이고, 행위를 핑계 삼아 행위자에게 모욕을 가하는 건 ‘비난’의 기본이다. 물론 행위자를 공격하고, 비판할 필요가 존재할 때가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그 행위자를 공격해야 하는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유가 존재해야 한다. 이 경우에도 그 행위를 비판하는 것이 어쩔 수 없이 행위자에게 귀속하는 것이지 그 행위자를 비난하기 위해 비난하는 것은 아니어야 한다. 가령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 후보자(의 과거 행위)에 관한 판단이 대표적이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의 ‘5가지 이유’는 대체로 합리적인 의견을 담은 글이다. “예기치 않은 공격이다. 심하게 표현하자면, 어두운 밤 귀갓길에 당한 퍽치기나 다름없다.”라는 비유는 글쓴이가 표현한 것처럼 그 비판하려는 행위에 비해 과도하게 격한 비유라서 아쉽지만, 영화관 예절에 관한 견해로선 대체로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의견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얼마나 급하게 편집했는지, 자신의 매체 이름에 오타(누기)를 냈다. 허핑턴포스트코리!
얼마나 급하게 편집했는지, 자신의 매체 이름에 오타(누기)를 냈다. 허핑턴포스트코리! 물론 있을 수 있는 실수다.

‘허핑턴포스트코리'(!)의 트위터식 마녀 화형식

허핑턴포스트코리아가 ‘트위터’에서 일어난 일상적인 해프닝(트위터에선 이런 일이 일상적이다.), 그 대형 ‘버즈'(떡밥)를 발빠르게 ‘영화관 예절론’에 관한 리스티클 기사로 프론트에 올린 것도 대체로 이해하려면 이해할 만한 발행 정책이라고 나는 본다. 나는 허포코를, 물론 허포코뿐만 아니라 대개의 매체가 그렇지만, 이런 대형 ‘버즈’가 일어나면 일단 발행하고 보자, 이런 정책을 강하게 구사하는 매체로 본다. 이런 정책은 순발력 있게 독자의 의식과 호흡하려는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5가지 이유’ 자체보다는 이런 컨텐츠를 유통하는 방식에 있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공동편집장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오늘의 프론트페이지 1면은 모 기자님께 바칩니다.”라고 이 해당 글을 소개했다. 세칭, 트위터식 ‘조리돌림’이다.

허포코 허핑턴포스트코리아

그 비판 내용이 합리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방식은 비난이고, 마녀사냥이다. 대중정서에 편승해서 트위터 마을 광장에서 벌어지는 마녀 화형식을 마치 무용담이라도 되는 양 ‘광고’한다. 내가 보기엔 아주 개판스러운 상황이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물론 헛소리다. 사람의 의식은 그렇게 고결하지 않다. 마동팔 검사식으로 말하면, “솔직히 죄가 무슨 죄가 있어? 그 죄를 저지르는 좆 같은 새끼들이 나쁜 거지.”(넘버 3. 송능한, 1997) 하지만 “우리, 사람이 되긴 힘들어도 괴물이 되진 말자.”(생활의 발견, 홍상수, 2002)

하물며 언론이다. 언론인이다. 매체 하는 사람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외면한 ‘위선자’나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비판을 함에 있어 그 행위와 행위자를 구별하고, 반드시 그 행위자를 비판할 필요가 있을지 한 번 더 생각하면 좋겠다. 더불어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서로 편을 나눠 투쟁할 필요가 있는 이슈인지 아니면 ‘공론의 장’을 만들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대화’해야 하는 이슈인지도 좀 구별해주면 좋겠다.

고야
The Procession (goya,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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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댓글

  1. ‘하물며 언론이다. 언론인이다. 매체 하는 사람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외면한 ‘위선자’나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비판을 함에 있어 그 행위와 행위자를 구별하고, 반드시 그 행위자를 비판할 필요가 있을지 한 번 더 생각하면 좋겠다.’

    졸렬한 오타 지적이나 사람들의 반응을 ‘내 복수를 대신 해줬다’고 비약하는 부분을 봤을때 슬로우뉴스 역시 자신의 글을 한 번 더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2. 이 글을 “영화관 안에서 스마트폰질 하는 사람을 쉴드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

    윗분에게 // 편집장 트윗에 "브라보"라고 달린 댓글은 안 보이세요?

  3. 1. 오타 지적은 기본적으로, 해당 삽화 하단의 ‘캡션'(삽화 설명)으로도 표시한 것처럼 “있을 수 있는 실수”라고 했습니다.

    2. 굳이 오타를 지적한 취지는 ‘급한 발행 정책’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기 위한 취지로 살린 것이지 그 오타 자체가 문제라고 한 것은 전혀 아닙니다.

  4. “허핑턴포스트코리아가 ‘트위터’에서 일어난 일상적인 해프닝(트위터에선 이런 일이 일상적이다.), 그 대형 ‘버즈’를 발빠르게 ‘영화관 예절론’에 관한 리스티클 기사로 프론트에 올린 것도 대체로 이해하려면 이해할 만한 발행 정책이라고 나는 본다. 나는 허포코를, 물론 허포코뿐만 아니라 대개의 매체가 그렇지만, 이런 대형 ‘버즈’(떡밥)가 일어나면 일단 발행하고 보자, 이런 정책을 강하게 구사하는 매체로 본다. 이런 정책은 순발력 있게 독자의 의식과 호흡하려는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문단에서 첫 번째 문장에는 “대형 ‘버즈’”라고 나오고, 두 번째 문장에서는 “대형 ‘버즈’(떡밥)”라고 나오는데, 첫 번째 문장이 아닌, 두 번째 문장에 부가설명에 넣은 이유가 뭔가요?

  5. 세심한 지적 고맙습니다. 말씀처럼 첫 번째 문장에 넣어야 하는데 말이죠. 지금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조언 고맙습니다. :)

  6. 트위터의 가벼움.
    태생이 그런건지 모르겠네요. 전 트위터를 아직 사용해 본적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트위터의 진지함은 그 무게가 어떤가요. 저로선 감이 오질 않습니다.

    사건의 발단부터 부적절해 보이고…그 끝의 환호성도 씁쓸함이 남는 것 같습니다. 언론지가 한 개인의 트윗까지 비판한건 좀 그렇네요.
    그 개인이 보통 개인이 아니었나봅니다. 그렇다 해도 잘 이해는 안가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7. 비판은 대상이 존재하죠. 행위자는 그 대상일 뿐입니다.

    다만 이 글의 비판 대상은

    개인 보단 집단.
    기자 보단 언론

    이 핵심 아닐까요…
    그리고 이 글은 ‘비판’을 문제 삼은 것도 아니구요.
    오히려 ‘비난’ 을 조심해야 한다는 취지 같습니다.

  8. 이 글이 비난으로 끝났다면 허밍턴포스트는 얻을게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 글은 분명 잘못된 점을 경고, 지적 하고 있습니다.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이 비난으로 받을지, 비판으로 받을지는 시각차가 매우 큰가 보군요.

    비난에도 얻을 수 있는게 존재하는지 의문입니다.

  9. 앗! 바로 괴물로 수정했습니다. ^ ^
    제 기억에 착오가 있었네요. 인상 깊게 본 영화라서 제 기억을 너무 확신했던 모양입니다.
    지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10. 음 글쎄요.
    허핑턴의 글을 속칭 ‘트위터식 조리돌림’ 이라고 한다면
    이 글은 속칭 ‘저격’ 이라고 할수 있겠군요.

    글의 문맥으로 봐서는
    ‘허핑턴 포스트는 이슈를 공론화하여 토론하고 대화하기보다 편을 갈라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투쟁하고 있다’ 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것 같은데
    기사에 언급되었듯이 허핑턴포스트의 글 자체는 조리돌림이라고 하기 어렵고, 또 소소한 읽을거리로서 군소언론이 다룰법한 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시 하신 편집장의 트윗에 이르러서는 ‘언론인의 개인 트윗도 공적 언론이라고 봐야 하는가’ 라는 굉장히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개인적으로 편집장의 글은 단순히 ‘개인의, 개인적인 글’ 이었다고 판단합니다.
    조리돌림이고 저격일수도 있지만, 그 글은 단순히 트위터 안에 한정되는 글이었다는 말입니다.

    한편 이 글은, 저격이면서도 언론이군요.

    해당 기자에 관련된 사건이 과연 단순히 ‘대중이 마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벌어진 마녀사냥’ 인지에 대해서도 저는 회의적이지만, 그점을 떠나서라도 이 글은 자기모순에 빠질법한 글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11. 제 부족한 글에 의견주셔서 고맙습니다. 간단히 답하면 이렇습니다.

    1. 본문에도 썼습니다만, 해당 기사(5가지 이유)는 그 자체로는 있을 수 있는 좋은 기사입니다. 저도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2. 다만 그 기사가 생산된 과정과 그 직후, 특히 편집장이 할 수 있는 ‘언명'(자신의 ‘권한’을 사용해 프론트에 올리겠다는 그 해당 트윗)은 대중심리에 편승한 과도한 인격적인 공격이라고 저는 해석했습니다. 단순히 트위터가 공적이냐 사적이냐가 아니라 문제가 생긴 그 공간의 의미, 그리고 편집장의 행위관련성(업무관련성)이 문제입니다.

    3. 이 점에서 해당 기사의 생산과정과 그 이후의 유통 과정이라는 “맥락”을 고려하면 그 행위, 그 해당 기사를 생산한 취지와 이유, 그리고 이를 유통하는 ‘하나의 흐름’이 아주 제가 보기엔 ‘개판’이라는 것입니다.

    좀 더 부연하면, ‘극장 에티켓’은 의미있는 의제이지만, 한 개인에게 ‘조롱’으로 그 개인을 ‘묵사발’ 만들어야 하는 사안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즉, 어떤 개인을 ‘응징’해야 할 이슈는 아니고, 그저 그 꼴불견 행위 유형을 특정해 그 행위만을 비판하고, 공론화하는 것으로 해소할 수 있는 이슈입니다.

    그 ‘꼴불견’은 “말 싸가지 없게 하는” 어떤 일간지 기자와 긴밀하게 붙어 있지 않고, 이 글을 쓰는 저도 또 옆집 순이와 철수도 나의 형제와 부모들 중 누구도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유형의 꼴불견’이기 때문입니다.

    4. 즉, 제 글의 의미 단위들을 형식적으로 또 분절적으로 해석하고 계신 것으로 저는 보는데, 전체적인 ‘맥락’에 대해 한 번 더 숙고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물론 이 글은 부족함이 많은 글이고, 또 제 취지가 제대로 표현되지 않은 부분도 많으리라 여깁니다.
    읽고 의견 주셔서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12. 나름 관심있게 보던 허핑턴이지만 저도 그 해프닝 지켜보다 언팔했어요. 공적인 매체를 편집장이란 사람이 개인 블로그처럼 활용한 것 같아 불쾌하더군요. 그 기자의 글 진의도 조금 넓게 해석될 여지가 없지 않아 보였는데 무작정 ‘조리돌림’ 시키는 현상도 어이없고요.

  13. 왜 두번째 트윗을 마음대로 재단해서 썼는지 궁금합니다.
    항공기 모드니까 잘못이 전혀 없다는 투로 이야기를 했고
    자신의 잘못은 전혀 돌아보지 않았으며 그것을 지적한 사람들을 무작정 비난했죠.

    영화관 에티켓에 관한 이야기들 무지하게 많았습니다. 딱 서화숙기자만 비난받은게 아니라 저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 모두가 비난받고 있었어요. 그게 노출도가 높은 사람이 ‘유머’라고 트윗을 하니까 관심이 높아진 것뿐입니다. 이걸 가지고 사소한 일에만 분노하느니 하는 말을 덧대신건 본질을 흐리려는 의도로 생각되네요.

    그래서 영화관에서 카톡을 한 것이 문제없다고 보시는 건가요? 마지막 문단의 ‘공론의 장’을 만들어서 대화해야할 ‘이슈’라고 언급하신 것을 보면 그렇게보이네요. 마녀사냥의 기본은 ‘죄가 없음’ 아닌가요? 죄가 없는데도 죄가 있는 것처럼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여론을 호도한 후 대중정서를 이용하는 것이 마녀사냥이지 죄가 있는 사람을 과하게 처벌한다고 해서 마녀사냥이 되는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과한 처벌인가에 대해서도 별도로 논의할 필요가 있겠지요.)

    트위터에서 ‘바친다’고 한 허핑턴의 행보에 대한 지적은 좋다고 봅니다만 그것을 위해서 그 전에 와야할 이야기들을 조금씩 꼬아버리신건 아닌가 글 남겨봅니다.

  14. 서화숙 기자님 이었군요. 그 분의 통쾌한 동영상을 어느 팬사이트에서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 같은 무지렁이도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으니…그냥 개인은 아닐 수 있겠네요.

    트윗이 대체 먼지…친한 친구들 사이의 실시간 댓글 공간이라면
    이렇게 문제가 커질일은 없을텐데…
    이 ‘댓글공간’ 은 은밀한 골방인가요. 공개된 광장인가요.

    광장이라면
    어느정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되네요.
    그 시선에는 에티켓, 매너, 규칙과 같은 것이 공존 될 필요도 있어 보이구요.

    이 일의 마무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알기 쉽고, 명확한 지점들이 있으니
    그 부분들에 있어선 개인이든 집단이든 성숙의 계기가 될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15. ‘극장에서 스마트폰을 켠 당신을 사람들이 비난하는 5가지 이유’라는 글은 그 ‘모 기자님’의 극장에서의 에티켓이 트위터에서 논란이 된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극장에서의 예절 문제를 독자들에게 넌즈시 환기 시키는 좋은 글인 것 같다.

    그런데 ‘허포코’라는 매체의 편집장의 권한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지만 저 글을 발행하면서 트위터에 ‘오늘의 프론트페이지 1면은 모 기자님께 바칩니다.’라고 한 것은 저 글을 그 ‘모 기자님’을 본격적으로 저격하는 총알로 이용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어떤 매체의 공식 트위터나 관계자의 트위터로 그 매체의 글을 소개할때는 그냥 아무런 감정없이 제목과 링크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고 바람직하지 않았나?) ‘극장에서 스마트폰을 켠 당신을 사람들이 비난하는 5가지 이유’라는 글의 글쓴이는 본인의 글이 저렇게 특정인을 본격적으로 ‘조리돌림’하는데 쓰이는 것을 알았거나 아니면 그 ‘편집장’님과 사전에 양해 되었는지 궁금하다. 그런 상황을 글쓴이가 몰랐거나 ‘편집장’님의 총알이 되는 것을 양해했거나 둘다 모두 ‘아주 개판스러운 상황’인 것은 마찬가지일 것 같다.

    ‘허포코’나 여기 ‘슬로우뉴스’나 뭔가 글쓴이분들이 개성이 강하다고 할까? 아무튼 어마무시한 자존감들이 이 매체들에서 충돌하는 것 같다. 요즘에 있는 이러한 매체? 언론?을 보면 잘 알지도 못하지만… 콜라보레이션?, 큐레이션?…등의 단어가 생각나는데 이러한 매체의 어떤 특성상 콘트롤타워?인 편집자의 역할이 그 누구,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매체가 추구하는 어떤 방향에 맞게 잘 조율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뭐랄까? 그 중요한 편집자라면 그전에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이 인성과 품격같은 것도 아~ 그것이 있구나 할 만큼은 갖추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이러한 매체에 얽히고 설킨 각각의 글쓴이들의 좋은 글들을 그 중요한 권한을 가진 편집자가 어떤 ‘개판스러운 상황’을 위한 총알과 총알받이 이용한다면 그 매체에서 서로가 찌질해 지는 것이고 그 편집자는 좀 많이 비겁하다고 생각하는데…

  16. 허핑턴포스트코리(!) 편집장이 잘못했네. 매체의 격을 스스로 깨부순 꼴이다. 트위터에 ‘모 기자님께 바칩니다’라고 트윗에 썼다는 게 이 사안의 핵심이다.

    앞선 댓글에서 트윗이 공적언론이냐 이런 말이 보이는데… 공적이냐 사적이냐는 올린 글이 공적인 사안인지 사적인 주절거림인지의 여부로 따지는 것이다. 개인 계정의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렸다고 모두 개인적인 글인가?

    SNS에 올린 글로 인기를 얻기도 하고, 그 글 때문에 명예를 실추하기도 하는 세상이다. 또 그런 일들이 뉴스가 되는 때다. 하물며 뉴스매체 편집장이라는 사람이 그런 것도 모르고 저런 트윗을 날릴 리는 없다. 즉, 알면서도 기사를 생산할 때 저런 식의 과정을 밟았다는 건 글쓴이 말대로 ‘개판’인 상황이 맞다.

    기사에 극장예절로 문제된 해당 기자가 언급되지 않아도 그 사람을 타겟으로 했다는 건 전체 맥락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맥락을 기사로 연결시킨 거고. 그게 아니라면 조롱하는 워딩은 날리지 말았어야 한다. 편집장은 자기 트윗에 ‘브라보’, ‘브라바’ 등으로 달린 글에도 부정하지 않고 있다.

    허포코가 도대체 어떤 철학을 가진 매체인지 궁금해진다. 편집장에게 철학이란 게 있긴 하나. 댓글 표현대로 편집장 개인이 총알로 쓰는 매체인가. 그렇다면 허포코는 더이상 언론이 아니다. 편집장 개인 사업블로그지.

  17. 대체로 공감가는 글입니다만,

    이글 역시 “얼마나 급하게 편집했는지, 자신의 매체 이름에 오타(누기)를 냈다. 허핑턴포스트코리! 물론 있을 수 있는 실수다.”라든지 “‘허핑턴포스트코리’(!)의 트위터식 마녀 화형식” 같은 식으로 비판 대상의 사소한 오타를 빌미삼아 빈정거리는 등의 불필요한 공격성을 보이고 있군요. 하나의 글 속에서 보이는 자기모순.

  18. 앞서도 댓글로 설명했습니다만, 한 번 더 설명(더불어 항변 ^ ^)하면 이렇습니다.

    1. 대전제는 행위와 행위자, 비판과 비난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2. 다만 행위 비판이 곧 행위자 비판으로 귀속하는 경우, 그런 영역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1) 해프닝(꼴불견 등의 사례)인가 아니면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의제인가.

    2)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 혹은 경범죄스러운 꼴불견 사례인가, 아니면 특정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 그 업무와 관련해서만 벌일 수 있는 일인가. 즉, 내 친구 부모형제처럼 누구나 할 수 있는 행위인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그 책무/권력을 부여받은 ‘특정인’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인가.

    3) 더불어 사사로운 개인으로서의 행위인가 공적인 기관 혹은 이에 준하는 사회적 평가를 받은 조직, 그렇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높은 거대 기업 등의 행위인가.

    4) 간단한 표준으로 “정치”(권력)와 “언론”(권력 조율 권력) 그리고 “거대 기업”(자본 권력)에 속한 행위인가 아니면 그밖에 평범한 개인의 행위인가.

    3. 위 기준에 의해 평범한 개인의 행위(제 글에서 해프닝의 원인제공자 역할을 할 모 일간지 기자의 일상의 에피소드를 담은 트윗)과 언론의 업무와 관련한 권한을 행사하는 종류의 행위는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4. 제가 생각하는 이 기준에 따라 누구나 할 수 있는 행위에 관해서는 그 행위와 행위자를 더욱 구별해서 그 행위에 집중하는 것으로 족하고, 특정한 영역에서 좀 더 높은 사회적 권한과 (함께) 의무 혹은 책무를 부여받은 행위에 관해서는 오히려 “실명 비판”을 권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는 그 행위와 행위자가 분리 불가능한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행위와 행위자가 불가분인 영역(대표적으로 정치, 언론 등)에서는 그 정치인, 언론인을 비판하는 표현과 수위(풍자, 강한 공격)는 더 넉넉하게 허용해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5. ㅍㅍ 님의 말씀하신 취지에 공감하지만, 위와 같은 이유에서 동의하지는 않는데, 그 이유는 이상과 같습니다.

    답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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