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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재보선으로 재확인한 다섯 가지 한국 정치의 현실

7.30 재보궐 선거가 끝났다. 결과는 주지하는 바다. 7.30 재보선이 끝난 지금 한국 정치 일반에 관해 생각해왔던 바를 거칠게나마 정리해 본다.

7.30 재보궐 선거 결과

7.30 재보궐 선거 결과 검색 화면 (구글에서 갈무리)

1. 민원 자판기: 유권자가 지역구에 원하는 두세 가지 것들

이왕에 거듭해서 강조한 바이지만,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를 지배하는 건 지역 이슈다. 그러니 당연히 지역 정책이 중요하고, 지역 조직이 선거의 판세를 결정한다. 전국구 이슈로 고르게 재미 보는 건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처럼 사회 근간이 뿌리째 흔들렸다는 느낌이 퍼졌을 때나 통한다.

지역 생활이라는 게 없는 유목민 들판이 아닌 이상, 지역구 선거에서는 지역 이슈 외 거대 이슈는 갈수록 쇠퇴하는 게 자연스럽다. 즉, 한반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이슈가 아니라 지역 유권자의 삶을 밀착해서 현미경 들여다보듯 바라봐야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지역 유권자들이 왜 국회의원을 뽑는지, 국회의원이 지역에서 해야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에 관한 ‘상숫값’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지역 유권자가 원하는 능력 있는 국회의원이라는 존재는 국민 전체의 대표 역할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지역에 ‘더 많은 국가예산’을 따오는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 지역 민원을 그때그때 처리해주는 ‘민원 자판기’. 그게 지역 유권자가 원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가치평가는 별론으로 이게 현실이다.

자판기

“대통령은 자판기가 아니다.”(T.K.) 하지만 지역민이 원하는 지역구 의원은 “자판기”다. (사진: midorisyu, CC BY)

이와 같은 맥락에서 어떻게든 우리 지역으로 예산과 정책을 따낼 느낌의 인물이 아니면 개별 인물론 따위는 먹히지 않는다. 얄궂게도 지역 정책을 통해 스스로 지역에 뿌리내리고자 한 인물이라도 ‘그 느낌’이 없으면 승산 없다. 동작을 김종철 노동당 후보의 득표율은 이를 방증한다.

따라서 지역 개별 이슈를 부각하지 못하면, ‘상숫값’의 대결이다. 상숫값으로 보면 당연히 현지 기득권 세력이 훨씬 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다. 지역 이슈를 비전으로 세팅한 도전자는 지역 이슈를 내팽개치고, 역행한 기득권 후보를 이길 수 있다. (예: 전남 순천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 당선.)

지역 이슈 데이터베이스와 이슈 현황판 그리고 실현 가능한 정책 선택지를 제공하는 참여형 정보서비스 사이트를 정당에서 제작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당이 이런 걸 할 것 같지는 않다.

2. 망하는 지름길: 유권자는 파벌의 파워게임을 원하지 않는다

이용당하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다. 정당이 지역 선거를 자신들의 정치적 파워게임의 도구로 삼는다는 느낌, 즉 정당이 선거를 통해 유권자를 이용당한다는 느낌을 주면 망한다. 정책적인 노선 투쟁은 별론으로 정파 갈등이나 인물 파벌의 무대이자 싸움터로 지역구가 비치면 그 선거는 망하기 위한 기본 조건을 완벽하게 갖췄다고 할 수 있다.

3. ‘심판’ 이슈는 일회용이다

건전지 촛불

아무리 큰 ‘심판 이슈’도 선거에선 일회용인 경우가 많다. (사진: kev-shine, CC BY)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심판’ 이슈는 대개 분노가 그렇듯 지속력이 약하다. 약하다 못해 일회용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세월호에 대한 분노가 크다 한들 한 번 선거에 써먹고 나면 더는 영향력을 미치기 어렵다. 그런데 세월호 심판론은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이미 써먹었다.

특히 무당파층(부동층)에서 이런 경향이 강하다(강한 추정). 그런데 하필이면 현재 한국 정치 지형에서는 무당파층을 규합하지는 않고는 새누리당 고정 지지층을 넘을 방법이 없다.

야권 단일화 후보 전략도 딱 그런 심판 코드의 연장 선상에서 그 영향력을 거의 상실해버렸다. 최소한 구체적인 정책 연대라도 중심에 놓고 내밀어야 앞으로 다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4. 이슈 정당과 특화 지역구 전략: 진보 정당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선거공학’을 갖다 대더라도 득표력이 약한 진보정당에 관해서는 스케일 적용 효과(scalability)가 미약하다. 노동당 후보와 통합진보당 후보의 단일화는 새정치연합과 정의당 단일화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작은 효과를 얻는 게 아니라 그냥 효과가 없다. 아니,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단일화 결정의 독단성 때문에 정치적 책임마저 져야할 판이다.

그 연장선에서 오늘날 진보 정당은 소규모 전국정당 전략으로는 도저히 이길 방도가 없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이슈 정당과 특화 지역구 전략으로 매진해야 한다고 본다. 당연히 그 이슈는 노동(비정규직 문제, 소득과 분배의 불평등 문제)이 되어야 하고, 특화 지역구는 노동 이슈의 이해관계 파급력이 강한 울산, 안산 같은 곳들이 적합하다. 내각제가 아니라서 정책 중심 정당이 어렵다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망하는 것보다는 어려운 게 낫다.

이미 진보의 의제에 충분히 공감하는 ‘내부 그룹’을 대상으로 하지 말고, 평범한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소통과 홍보를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적어도 홈페이지 대문을 내부인을 향한 투쟁 소식이 아니라 “한국사회에 진보정당이 있었기에 이뤄낸 것 열 가지”과 같은 외부 사람들에게 지지 이유를 던져주는 내용으로 바꿔야 한다.

해적당

우리나라 진보 정당도 유럽 정치에 돌풍을 몰고 온 ‘해적당’처럼 하나의 이슈와 정책에 집중(‘원 이슈 파티’)할 필요가 있다.

5. 일본식 보수정당의 장기 지배가 온다 

시민 일반의 정치 무기력으로 인해 보수 선호를 ‘기본 탑재’한 일본식 보수정당의 장기 지배가 현실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그런 정치적인 경향과 흐름을 겨우 막았던 ‘대형 사건들’이 우연하게 계속 이어지는 걸 바랄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정당을 중심으로 한 제도권 정치 참여 노력이 더욱 절실해졌다. 이런 노력과 함께 개별 사안들에 대해 주로 소송으로 해결을 압박하는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식 시민운동 모델을 적극적으로 더 키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돈’을 열심히 모아내야 하고, 그 방법론을 마련해야 한다.

‘차라리 확실히 망하고 정신 차리는 게 낫다’는 의견도 흔하게 돈다. 무기력에 익숙해지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 무릎을 꿇는다고 추진력을 얻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 변하지 않으면, 일본식 보수정당의 장기 집권은 피할 수 없는 대한민국 정치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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