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box type=”note”]학교를 떠난 뒤에는 선생님도 교과서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들. 성공 스토리와 자기계발서가 쏟아지지만 어쩐지 다른 세상 이야기 같습니다. ‘생각 읽기’, 우리 주변 사람의 생각을 읽고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조금은 특이한 이력을 가진 갬블러의 이야기입니다. 기우겠습니다만, 혹여 이 글을 도박에 관한 미화로 읽는 독자는 없길 바랍니다. 일시적 오락이 아닌 도박과 도박장 개설은 명백한 불법입니다(형법 246, 247조). (편집자)[/box]

십 년 전쯤 커다란 인기를 끌었던 [올인]이라는 드라마가 생각난다.

워낙 주옥같은 명장면들이 많지만, 역시 주인공 김인하 (이병헌 분)가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세계 포커대회에 참석해 마지막 배팅에 올인하며 우승하는 모습을 빼놓을 수가 없다. 포커 게임의 규칙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승리와 패배를 가르는 긴박한 순간에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칩을 밀어 넣으며 ‘올인’의 승부수를 띄우는 장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짜릿하다.

이렇게 긴장감 넘치는 대리만족을 주어서일까? 도박을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는 언제나 인기를 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포커나 고스톱 등의 도박은 어쩌다 명절에 한 번씩 녹슨 배팅 감을 되살리는 정도의 ‘게임’일 뿐이니 도박사는 작품에서나 볼 수 있는 ‘꿈의 캐릭터’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압구정 크리스

우리 주변에서, (평범하다는 의미에서) ‘멀쩡한’ 직업을 가진 사람 가운데 프로 갬블러의 ‘쪼는 맛’이 어떤 것인지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 이브레인 컨설팅의 노상범 대표가 그 주인공. 그는 한때 홍익인터넷이라는 잘나가는 에이전시를 설립했던 경력도 있고, 현재는 ‘OKJSP’라는 개발자 커뮤니티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그의 경력에는 ‘압구정 크리스’로 이름을 날렸던 도박사의 그것도 포함돼있다.

노상범
한때 ‘압구정 크리스’였던 노상범 대표

“본격적으로 포커판에 자주 드나들게 됐던 건 2005년 12월부터였는데, 다음 해 1월까지 언더 하우스를 돌아 다니며 40전 전승을 기록하기도 했었죠. 그 당시 약 한 달간 4천만 원 정도를 따기도 했습니다. 압구정, 로데오 일대의 하우스에서는 ‘크리스에게 걸리면 털린다’는 말이 유행했죠”

텍사스 홀덤

그의 주 종목은 ‘텍사스 홀덤(Texas Hold’em)’으로 현재 포커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다. 텍사스 홀덤은 각 플레이어가 2장의 카드를 들고 (pocket card) 테이블에 깔린 5장의 공유 카드(community card)와 합쳐 총 7장의 카드 중에서 나올 수 있는 최상의 족보로 승패를 가른다. 자신의 패를 만들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조합을 잘 고려해야 하는 고도의 ‘두뇌 게임’이다.

카드 게임 텍사스 홀덤을 하는 모습
텍사스 홀덤을 하는 모습 (사진: 위키백과 공용)

1991년, 실연 뒤에 텍사스 홀덤을 만나다

그가 처음 ‘텍사스 홀덤’을 배운 건 미국에서였다.

1986년, 대학교 2학년 때 가족이 함께 이민했지만, 사정상 혼자만 남았다. 1991년 1월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실연의 아픔을 달래지 못해 ‘폐인 생활(본인 표현)’을 하다가 룸메이트를 따라 카지노를 가게 됐던 것. LA 인근 커머스 카지노(Commerce Casino)에 드나들며 텍사스 홀덤을 처음으로 익히게 됐다. 초보자에게 승리는 녹녹치 않았다. 세 번에 한 번꼴로 돈을 따면서 ‘재미삼아’ 포커를 쳤다.

94년 귀국, ‘죽돌이’가 되다

그러다가 94년 귀국을 했고 그 후 십 년 정도는 포커를 잊고 살았다. 97년 홍익인터넷을 설립해, 열심히 사업도 했었고, 실패하는 아픔도 겪었다. 2005년 후배가 홀덤 게임을 개발한다고 해서 텍사스 홀덤의 규칙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홀덤과 재회’했다.

“처음에는 강남역 부근의 카지노 바에서 재미 삼아 홀덤을 치게 됐어요. 그 당시 압구정동 일대에 언더 하우스가 우후죽순 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하우스에 가끔 들르기는 했었는데 그 해 말에는 우연히 회사의 직원이 모두 파견 근무를 가게 되고 부인도 아이들과 필리핀에 가게 되어 몇 달 동안 혼자 지내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하우스 죽돌이가 된 거죠.”

승패는 ‘배팅 실력’

‘압구정 크리스’는 실력이 없이는 홀덤 게임에서 돈을 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흔히 운이 좋아서 원하는 카드가 들어와야 게임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포커 게임의 승패는 ‘배팅 실력’이 좌우한다는 설명이다.

“카드의 흐름을 보고 상대의 패를 가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카드의 패가 펼쳐지면서 상대가 어떻게 배팅을 하는지, 상대의 스타일이 어떤지 아주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 아주 짧은 시간에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게임을 하다 보면 참여한 사람들의 ‘스타일’이 드러나게 된다. 흔히 좋은 패인지 나쁜 패인지를 표정을 통해 읽을 수 없도록 ‘포커페이스’를 가져야 이길 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자신의 스타일을 예측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상대가 자신에 대해 블러핑(좋지 않은 카드를 가지고 배팅을 크게 해서 이기려 하는 속임수)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믿게 한 후 오히려 좋은 패를 가지고 승부를 건다든지, 다른 사람의 허를 찌를 수 있어야 승리를 거머쥘 수도 있다. 이렇게 포커 게임은 한두 판으로 결정이 나는 것이 아니라 두세 시간 동안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을 역으로 이용해서 승부를 거는 드라마라는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언더) 하우스에서 돈을 따기 위해서는 상대보다 두 배 정도는 실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하우스에 주는 커미션이 정상적인 카지노의 다섯에서 열 배는 높았기 때문에 그런 커미션을 제외하고도 돈을 따기 위해서는 비등한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것이죠. 포커 플레이어로 오래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평소 자기관리가 철저해야 합니다.”

2006년, 하우스 은퇴

결국 매일 저녁, 화려하지만 실속 없는 돈의 잔치를 계속하다가 그는 2006년 6월, 돌연 하우스 은퇴선언을 했다.

“어느 순간 돈이 돈 같지가 않았습니다. 머리 써서 하는 카드 게임도 지겨워졌죠. 함께 판돈을 놓고 겨루는 사람들이 (저를 포함해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어요.”

갬블사업 접은 이유는 ‘SNS 혁명

다시, 하우스를 끊고 땀 흘려 하는 사업을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직원들 월급 줄 돈이 떨어져 하우스를 다시 찾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하우스에서 딴 돈으로 급여를 지급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만난 세계적인 플레이어 마이크 킴(Mike Kim)을 만나 이번에는 ‘갬블 사업’을 함께 했다.

2007년 7월 워커힐 호텔 카지노 테이블 6개를 임대해 외국인 대상 포커룸을 운영하기도 했고 필리핀 마닐라로 무대를 옮겨 포커룸 사업도 했다. 아시아 최초의 토너먼트 대회인 ‘아시안 포커 대회’ 지분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렇게 2009년 여름까지 사업으로 하다가 그만뒀다.

“그만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당시 한국에 아이폰이 판매되고, SNS 혁명이 일어나던 시기였는데 언제까지 일확천금의 신기루를 좇아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 있을 것인지…… 깊이 고민하다 보니 저절로 답이 찾아지더군요.”

소셜 서비스 SNS
SNS 혁명은 노상범의 인생을 바꿨다. (이미지: fredcavazza, CC BY NC SA)

가장 신물 났던 건, “사람들의 욕망”

간혹 영화 주인공처럼 ‘올인’을 외치던 때의 흥분을 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느낌은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을 첫사랑의 설레임 같은 것이리라.

하지만 가장 신물 났던 것은 사람들의 욕망이었다. 포커는 기본적으로 블러핑이 존재하고 남을 속여야 이길 수 있는 게임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게임 테이블이 아닌 곳에서도 서로를 속이고 돈을 마음대로 쓰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그게 싫어서 어느 순간 떠날 생각을 했고, 미련없이 떠났다. 당연히 떠나서도 미련은 남지 않았다.

욕망
Andi, “욕망”, CC BY NC ND

관련 글

3 댓글

  1. 요즘들어 ㅍㅍㅅㅅ나 슬로우뉴스에 홀덤에 관련된 글들이 자주 올라오네요. 조금 조심해야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댓글이 닫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