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 미디어 » TV 수신료, 부당한 권력에 맞설 수 있는 시청자의 무기

TV 수신료, 부당한 권력에 맞설 수 있는 시청자의 무기

공영방송은 관영방송의 폐해를 피하되 자본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방송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방송’ 공영성을 추구하는 이유

왜 방송에서만 이런 ‘공영성’을 추구하는 노력이 있었을까? 전파의 간섭현상에서 초래되는 전파 자원의 희소성 때문에 방송은 일종의 독점력을 가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독점력이 정치권력이나 자본을 위해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 공영방송이다.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가 열렸다지만 공영방송은 범매체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시청자들이 더 파편화할수록 (…중략…) 시청자들에게 기준점과 사상의 자유시장을 제공하는 하나의 강력한 서비스를 유지해야 한다.”

– Werner Rumphorst, “Public Broadcasting: Why? How?”, World Radio and Television Council (2000) 중에서

현실, 국민이 아니라 ‘정부에 봉사’하는 방송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공영방송은 어떠한가? 2010년 5월 당시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분석에 따르면 도리어 공영방송의 리더격인 KBS의 친정부 보도태도는 SBS나 MBC에 비해 훨씬 심하였고, 그 기조를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다. 또 그 이후 MBC 파업이 끝난 후 MBC의 친정부 보도태도는 SBS보다 심했다.

공영방송은 태생적으로 정부의 영향력에 취약하다. “전파는 국민 모두의 것”이라는 말은 당위이지만 결국 방송사 인선은 민주적 정당성 등의 이유로 대통령과 같은 선출직 공무원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결국, 이명박 정부 들어 대통령의 뜨거운 입김 하에 인선이 이루어진 MBC, KBS, YTN 등의 공영방송들이 모두 정부에 봉사하는 방송이 되어버렸다.

TV 텔레비전

국민을 위한 방송이 아니라 정권을 위한 방송으로 전락한 대한민국의 공영방송(사진: santinet, CC BY ND

선출된 권력이 합법적으로 장악하는 ‘공영방송’

민영방송이 자본의 영향력에 취약하다지만 도리어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자본이 선거를 통해 친자본적 인사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고, 공영방송제도는 자본의 방송 장악을 오히려 제도화하고 법적으로 정당화시키는 형국이다. 정부가 자본을 대리하여 방송을 장악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명박 정부 당시 [이병철 탄생 100주년 기념 열린음악회]를 기억해보라.

그리고 정부를 통한 장악은 더 강고하다. 과연 주주, 광고주, 시청자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민영방송이라면 MBC, YTN처럼 노사관계가 극단적으로 악화한 시점에서도 이사회가 특정 사장을 비호하였을까? 위정자들의 법적 권한의 뒷받침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리모콘

누가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있는가? 권력인가? 자본인가? 시청자인가? (사진: zoonabar, CC BY SA)

물론 현재 공영방송의 모습은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역사의 문제가 더 크다. 87년 투쟁이 철저한 인적 청산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4년 6월 5일 KBS 이사회는 ‘KBS 사태’ 35일만에 길환영 사장 해임제청안을 가결했다. 해임 전후에 보여준 KBS 노조의 힘은 컸다. 그러나 그렇다고 방송 노조가 계속 시청자의 권리를 대신 표출하기를 손놓고 기다릴 수는 없다. 더욱이 이번 KBS 노조의 승리는 세월호라는 특수한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KBS 노조

“청와대는 KBS에서 손을 떼라” 2014년 5월 17일, 종로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KBS 노조의 모습 (사진: 미디어몽구)

시청자, 유일하게 대통령에 맞설 수 있는 권력

공영방송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권력은 빈 공간을 파고든다. 권력을 막는 방법은 다른 권력으로 빈 공간을 채우는 것밖에 없다. 대통령의 영향력을 차단한다고 해서 KBS가 친정부 방송을 중단하지 않는다. 검찰을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독립시켜도 검찰의 친정부적 기소행태에는 변함이 없다.

대통령의 영향력을 그냥 차단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영향력에 맞설 수 있는 권력이 필요하다. 나는 그 존재가 바로 시청자라고 생각한다. 공영방송이 시청자들을 바라보고 방송을 만들 동기를 갖도록 해야 한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바로 수신료이다.

TV

시청자는 방송을 본다. 이제 방송이 시청자에게 관심을 쏟게 해야 한다. 그 무기는 ‘수신료’다. (사진: FailedImitator, CC BY SA)

수신료, 공영방송에 “가장 적합한 재원”임은 분명 

세계적으로도 수신료야말로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공영방송에 “가장 적합한 재원”(주1)으로 일컬어진다.

  1. 첫째, 수익자부담원칙이 지켜진다.
  2. 둘째, 시청자와 방송사업자 상호 간에 책임의식이 생긴다.
  3. 셋째, 정부예산과 광고수입에 의존하지 않게 되므로 정부와 자본으로부터의 통제와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주2)

특히 정부 이외에도 광고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시청률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걸 의미한다. 이에 따라 프로그램의 다양성을 제고할 수 있다.(주3) 또 광고수입으로 운영되는 상업방송은 광고수입만큼 광고된 물건의 소비자가격이 높아지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돈은 돈대로 내면서 광고 보기에 시간만 허비하게 된다. 이런 장점들 때문에 유럽국가들의 2/3이 공영방송 수신료를 받고 있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1/2 정도가 수신료를 받는다(주4). 대부분 나라에서 수신료는 물가상승과 연동되지 않는다(주5).

영국 BBC, 수신료 추심하지만 ‘강제납부’ 없다! 

공영방송의 최선의 모델로 일컬어지는 BBC를 살펴보자.

BBC도 수상기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가구별로 매년 145.5파운드를 받으며 이는 BBC의 예산 대부분(약 80%)을 차지하고 있다(주6). 수신료 납부는 법으로 강제되고 있고 수신료를 내지 않으면 벌금을 내거나 구류를 살아야 하고 미납률은 5% 정도이다. BBC는 수신료추징을 위해 ‘TV라이센싱’이라는 추심업체를 고용하고 있으며 전체 수입액의 3% 정도를 추심비용으로 쓰고 있다. 전 국민을 상대로 하는 추심서비스는 여러 갈등과 오해를 낳기도 한다. BBC의 문헌들을 보면 항상 “수신료납부자의 이익”을 최선에 둔다.

BBC

공영방송의 모범으로 평가받는 BBC 텔레비전 센터의 모습 (사진: Mike_fleming, CC BY)

우리가 중요하게 봐야 할 지점은 바로 수신료가 우리나라처럼 “강제납부”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강제납부”는 “납부의무”와 다른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전기료가 납부되는 자동이체계좌에서 수신료가 강제로 납부되고 있지만, BBC는 납부의무만 있을 뿐 강제납부가 되지는 않는다.

강제납부 여부는 공영방송과 시청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즉 공영방송이 ‘갑’이 되는가 아니면 공영방송과 시청자가 건강한 상호책임성의 관계를 형성하는가의 문제이다. 시청자들이 납부거부를 할 수 있는 물리적 기회마저 없다면 공영방송은 객관적으로 볼 때 시청자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시청자들이 공영방송의 질이 흡족하지 않아 말로는 불만을 터뜨리는 와중에도 그런 방송을 지지하는 수신료가 자신들의 양심의 자유에 반하게 강제납부된다면, 방송사와 시청자 사이의 관계는 억압적인 관계가 된다.

상대적으로 공정성을 인정받던 일본 NHK도 전액 수신료로 운영되며(매년 13,600엔) 강제납부를 하지 않는데 2000년대 후반부터 기업 관련 스캔들에 연루되어 수신료 미납률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2013년부터 추심을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최근 NHK 회장의 망언에 대한 수신료납부거부운동도 진행되고 있다. 일본에서의 시청자와 NHK와의 관계는 훨씬 더 건강할 것으로 판단된다.

전기료와 통합징수, ‘한국 터키 그리스’ 뿐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연 3만원), 터키(전기료의 2%), 그리스(연 51.60유로)만수신료를 전기료와 통합징수하고 있고 터키와 그리스 모두 이와 같은 통합징수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공공성은 국민 모두를 위해 국민 일부에게는 강제로 작용할 수밖에 없고 어떤 경우에는 국민 모두에게 강제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서로 한 약속이 국민 전체에게 강제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최소한 양심의 자유에 따른 불복종을 행사할 수 있는 물리적 기회까지 허용하지 않는 저질의 공공성으로는 공영방송이 요구하는 섬세한 수용자 관계를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리스는 우리보다 돈을 더 많이 냅니다. 그리스 공영방송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고, 사회감시 하지 않고, 국가권력이 어떻게 부패하고, 자본권력이 어떻게 횡행하는지 말하지 않다가 국가부도 사태 맞았고요. 그리스 공영방송 해체됐죠. 직원 2,400여 명 전부 해고됐죠." -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2014년 1월 15일,  TV 방송수신료 조정(안) 의견수렴을 위한 토론회 중에서 (사진: 미디어몽구)

“그리스는 우리보다 돈을 더 많이 냅니다. 그리스 공영방송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고, 사회감시 하지 않고, 국가권력이 어떻게 부패하고, 자본권력이 어떻게 횡행하는지 말하지 않다가 국가부도 사태 맞았고요. 그리스 공영방송 해체됐죠. 직원 2,400여 명 전부 해고됐죠.” –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2014년 1월 15일, TV 방송수신료 조정(안) 의견수렴을 위한 토론회 중에서 (사진: 미디어몽구)

국가공공서비스 선호하지만 방송은 예외인 이유

물론 일반조세를 통해 KBS 재원을 확보하는 경우에도 시청자들이 자신의 세금이 KBS로 가는 것에 대해 저항할 기회는 없으며 수많은 공공서비스에 대해 국민들은 개별적인 조세조항을 할 기회는 없다.

하지만 수신료는 위에서 말했듯이 다른 공공서비스와 달리 공영방송의 특수한 사명 때문에 만든 제도이다. 국민들은 관영버스는 반대하지 않지만(아니 도리어 선호하지만), 관영방송에는 반대한다. 일반조세를 통해 KBS 재원을 확보하는 경우 매년 KBS 예산에 대해 국회가 관여할 수 있게 되고 관영방송의 폐해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것이며 일반조세는 애초에 비교 대상이 아니다.

더욱이 수신료 자체가 실제로 공영방송 수신에 대한 대가가 아니다. 수신료 납부거부는 KTX를 무임승차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국가가 셋탑박스를 설치하여 수신 여부에 따라 수신료를 징수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시청자의 책임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KBS를 보지 않겠다’는 이유로 납부를 거부하지 못하는 것은 더욱 양심의 자유에 반하는 것이다.

KBS 수신료 토론회

TV 방송수신료 조정(안) 의견수렴을 위한 토론회(2014년 1월 15일, 목동 방송회관 회견장)에서 발언하는 윤준호 KBS 수신료현실화단장 (사진: 미디어몽구)

시청자와 관계 개선, 강제납부 재검토부터 시작해야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수신료라는 항-관영화적인 제도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영화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시청자들이 관영화 권력을 희석시키기 위해서는 시청자와의 획기적인 관계 재설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은 항상 수신료 징수의 위기를 겪는다.

“모든 공영방송은 시청자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 Robert Picard (2006) “Financing Public Media” in Making a Difference: Public Service Broadcasting in the European Media Landscape ed. by Christian S. Nissen, John Libbey Publishing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그토록 흠모해 마지않는 BBC, NHK를 비롯한 공영방송사들이 어떤 수용자 관계를 형성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2014년 5월 8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KBS 본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사진: 미디어몽구)

2014년 5월 8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KBS 본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세월호 사태는 공영방송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더욱 증폭하게 했다. (사진: 미디어몽구)

우리는 시청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돈을 빼앗아 가는 거의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제도를 손보면서 그 첫 단추를 끼울 수 있다. 2014년 5월 현재 BBC는 강제납부를 하지 않으면서도 시청자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수신료 미납으로 형사 처벌받지 않도록 비(非)형사화를 논의하고 있다. 구류(죄인을 1일~30일 미만 교도소나 유치장에 가두는 형벌) 위협까지 동원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나라는 수신료와 함께 묶여 있는 전기세를 이용해 ‘최소한 단전’을 위협 수단으로 동원하며 수신료 납부를 압박하고, 법정에 설 기회까지 박탈하며 강제납부를 강요한다. 이런 관행을 지금 당장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참고 문헌

  1. European Broadcasting Union (2000): The Funding of Public Service Broadcasting. Report of the Legal Department. DAJ/MW/mp. (원문으로)
  2. Newcomb H., ed. (1997): License Fee. pp. 956-957 in Museum of Broadcast Communications Encyclopedia of Television. Chicago: Fitzroy Dearborn Publishers. (원문으로)
  3. Doyle, C. (1998): Programming in a Competitive Broadcasting Market: Entry, Welfare, and Regulation. Information Economics and Policy, 10(1): 23-39. (원문으로)
  4. 전게서, Newcomb. (원문으로)
  5. O’Hagan, J. & Jennings, M. (2003): Public Broadcasting in Europe: Rationale, Licence Fee, and Other Issues, Journal of Cultural Economics, 27(1): 31-56. (원문으로)
  6. European Audiovisual Observatory, 2005. (원문으로)

이 글은 2014년 6월 16일 언론연대 토론회 “KBS 공적지배,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필자가 발표한 발제문을 퇴고한 글입니다. (편집자)

좋은 기사 공유하고 알리기
슬로우뉴스에 커피 한잔의 여유를 후원해주세요. 필자 원고료와 최소한의 경비로 이용됩니다.

필자 소개

박경신
초대필자, 오픈넷 이사

오픈넷 이사. 고려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 [진실유포죄], [호모 레지스탕스] 등 저자.

작성 기사 수 : 32개
필자의 홈페이지

©슬로우뉴스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슬로우뉴스 안내 | 제보/기고하기 | 제휴/광고문의
(유)슬로우미디어 | 전화: 070-4320-3690 | 등록번호: 경기, 아51089 | 등록일자 : 2014. 10. 27 | 제호: 슬로우뉴스 | 발행인: 김상인 | 편집인: 강성모
발행소: 경기 부천시 소사로 700번길 47 1동 506호 (원종동, 삼신) | 발행일자: 2012. 3. 26 | 개인정보관리/청소년보호책임자: 강성모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