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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뉴욕타임스의 ‘혁신 보고서’라는 내부 문건이 유출됐다. 미디어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언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을 내놓은 셈이니 그 결론에 미디어의 미래가 그려져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대단했던 것. 우선, 6개월간 354명을 인터뷰하고 정리한 내용이 97페이지에 달한다는 것만으로도 무게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

무엇보다도 뉴욕타임스는 ‘스노우폴’이라는 인터랙티브 기사로 퓰리처상을 받았을 정도로 디지털 분야에서 앞서가는 언론사 아니던가, 그런 뉴욕타임스가 자신을 돌아보고 이대로는 안된다는 자성에서 변화와 혁신을 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다른 언론에게는 충격을 안겨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국내 미디어의 디지털 전략은 어디까지 와있을까? SBS 뉴미디어부 김도식 부장에게 어떤 고민을 안고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들어 보았다.

SBS 뉴미디어부 김도식 부장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를 보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한편으로는 뉴욕타임스처럼 앞서가는 미디어도 내부 조직 면에서는 여러 가지 개선점이 많다는 점에서, 디지털 퍼스트의 길이 생각보다 멀고 험난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우리가 고민하는 것을 뉴욕타임스도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서 묘한 안도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인터넷, 모바일 등의 기술이 미디어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정보의 생산, 확산, 기사의 가치 등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이렇게 지축이 흔들리는 정도의 혼란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데 있다.

채널이 다양해지고 뉴스와 정보가 넘쳐나는 ‘뉴미디어’ 시대에 어떻게 독자(시청자)층의 관심을 잡아 둘 수 있을 것인지… 전통 미디어가 풀어야 할 숙제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 있고,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상황은 한 번 더 꼬여 있죠. 독점적인 지위를 갖는 네이버가 뉴스 확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다 보니 언론사가 독립적으로 디지털 전략을 고민할 여지 없이 네이버 의존적인 기형적인 구조가 지속해 왔습니다.

2013년 5월부터 SBS 뉴미디어 팀을 맡은 그는 밤낮없이 디지털, 모바일 전략에 대해 고민했지만, 여전히 답을 찾지는 못했다. 다만, 그가 지향점으로 삼은 것은 ‘탈(脫) 네이버’와 ‘모바일 퍼스트(mobile first)’였다.

네이버의 뉴스스탠드 정책으로 네이버로부터 유입되는 방문자 수가 줄기 시작하자 대부분의 미디어에서는 네이버에서 한 명이라도 더 방문자를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충격’, ‘경악’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이 남발되고 같은 기사를 여러 번 다시 발행하는 ‘덮어쓰기 꼼수’도 등장했다. 이 때문에 독자들의 전반적인 언론 매체에 대한 신뢰도는 더욱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

그러나 그는 정반대 방향을 선택했다.

탈 네이버는 뉴스 브랜드 강화

‘탈 네이버’라고 하지만 뉴스 유통 경로로서 네이버를 포기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네이버에 의존해 방문자 수를 늘리는 것에 연연해 하지는 않겠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탈 네이버 전략의 핵심은 곧 SBS 뉴스의 브랜드와 신뢰도 강화라고 생각합니다.

네이버 뉴스 초기 화면 예시
그 뉴스 어디에서 봤어? / 네이버 뉴스에서. (실제로 네이버 뉴스 초기화면의 톱에는 언론사의 이름이 표시되지 않는다)

그가 느꼈던 가장 커다란 위기감은, 뉴스를 만든 언론사의 브랜드 파워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비단 사람들이 방송을 보거나 신문을 읽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접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뉴스와 정보 유통이 네이버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사람들은 ‘네이버에서 본 뉴스’로 기억할 뿐, SBS 뉴스라는 인식을 하지 않게 된 것이 더 큰 문제였다.

SBS 뉴스를 만드는 보도국의 대표 상품은 역시 저녁 시간의 ‘SBS 8 뉴스’입니다. 하지만 우리 시청자층은 온종일 회사에서, 혹은 지하철에서 뉴스와 정보를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죠. 그렇다면 뉴미디어부의 역할은 메인 뉴스 이외의 시간대에 우리 뉴스가 가진 브랜드를 유지하고 지켜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탈 네이버를 위한 방법을 ‘모바일 중심 (mobile centric)’에서 찾았다고 했다. 모바일 전략을 세우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고 집중해야 하는 일에 전념했다.

우선 SBS 뉴스가 확산할 수 있도록 SNS 채널 강화를 목표로 잡았다. 포털, 특히 네이버에 집중된 확산 채널을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등 다양한 채널로 분산화하기 위함이었다. 그중 페이스북 페이지에 집중해 활성화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덕에 5월 현재 23만 명 이상의 팬을 확보하게 됐다.

SBS뉴스 페이스북 페이지
SBS뉴스 페이스북 페이지

동계 올림픽이나 사회 이슈 등 (최근 세월호 사건을 포함해서) 사회적인 관심사가 몰리는 포스트에 대해서는 ‘좋아요’와 댓글 등이 몰렸다. 뉴스 소비층의 활발한 참여가 뉴스의 한 축이 되고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뉴스 확산 채널 다양화도 중요한 전략이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였다. 뉴스에서 보여주는 방송 리포트를 인터넷에서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뉴스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결국, 인터넷, 모바일, SNS 등 ‘뉴미디어’ (방송과는 다른 미디어라는 의미에서) 채널에 익숙한 뉴스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뉴스 레시피를 연구했다.

뉴스 소비자 입맛에 맞는 레시피를 개발하라

그것은 마치 식당에서 변화하는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레시피를 달리하고 신메뉴를 개발하는 작업과 같았다. 뉴미디어부에서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현장 취재 기자가 취재 뒷얘기를 들려주는 ‘취재파일’과 ‘현장 트윗’이었다. 1, 2분 내외의 방송 리포트에서는 담아내지 못한 취재 뒷얘기나 기자의 의견 등을 전하는 ‘취재파일’은 고정 독자층을 확보한 SBS 인터넷 뉴스의 인기 메뉴가 됐다.

SBS 취재파일 예
취재파일은 취재 뒷이야기나 기자의 의견을 전달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2014년 2월 ‘간첩 증거조작 사건’을 다루면서 검찰 출입기자가 썼던 ‘도다리쑥국’보다 못한 간첩 증거조작 사건이나 박근혜 대통령 사과 후에 올린 ‘대통령의 눈물로 향한 어떤 시선’ 등의 취재파일은 특히 SNS상에서 많은 사람이 공유하며 공감을 얻었다.

이번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에 보면 취재 뒷얘기를 스토리로 엮어야 한다며 취재파일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확실히 형식이 일정한 방송 보도와는 달리 기자들의 시선과 뒷얘기가 담긴 콘텐츠가 많은 공감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뉴스 소비층의 입맛을 파악하고 나니 좀 더 다양한 시도들을 해볼 수 있었다. 올해 초 동계 올림픽에 맞춰서 시작한 ‘오늘의 8초’도 SNS에 특화해서 만들어낸 콘텐츠이다.

SNS를 운영한다는 것이 단순히 페이지 만들어서 방송 리포트를 실어 나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SNS에서 어떤 콘텐츠가 맞을까를 고민하다가 짧은 동영상 뉴스에 주목하게 된 거죠. 8초면 굉장히 짧은 시간이지만, 그 안에 핵심만 담아낼 수 있어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SBS는 ‘오늘의 8초’을 스포츠와 연계했다. 극적인 순간으로 승패가 갈리는 스포츠야말로 8초 동영상이 가장 잘 맞는 콘텐츠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밖에도 SBS 8 뉴스를 진행하는 김성준 앵커의 마무리 이야기를 전하는 ‘김성준 앵커의 클로징’도 SNS를 겨냥해 기획된 콘텐츠로 고정 팬을 확보하고 있다.

이처럼 뉴미디어에 특화된 ‘깨알 같은’ 콘텐츠를 기획했던 뉴미디어부는 지난 3월 말에는 대표 메뉴도 선보였다. 바로 ‘모바일 30년, 스마트 리포트’가 그것이다.

2012년 뉴욕타임스는 ‘스노우폴(Snow Fall)’이라는 인터랙티브 뉴스를 선보였다. 2012년 2월 19일에 있었던 캐스케이드 산맥(Cascade Mountains)에서의 눈사태를 오랜 기간 취재해 깊이 있는 스토리라인을 잡았고 거기에 생생한 사진과 동영상, 그 당시 기후도 변화, 사람들의 음성 녹음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엮어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한 획을 그었다. 이 보도로 뉴욕타임스는 2013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스노우폴을 본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해외에서 혹은 국내에서도 인터랙티브 뉴스가 상당히 많이 등장했지만, 일부는 스노우폴을 따라 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죠. 하지만 형식만 따라 해서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을 했고 전달하려는 스토리와 잘 맞으면서 뉴스 소비자들에게 입체적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뉴스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SBS 스마트 리포트 모바일 30년 세상을 바꾸다
국내 모바일의 역사를 타임라인으로 묶고 정보를 동영상과 함께 부가정보를 제공하는 형태로 꾸몄다.

때마침 올해가 우리나라의 이동통신 서비스가 시작된 지 30년이라는데 착안해 ‘모바일 30년’으로 주제를 잡았다. 김도식 부장은 방송 뉴스의 특성을 살릴 수 있도록 TV 리포트를 기본 포맷으로 하되, 리포트 중간에 부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구성, ‘스마트 리포트’라는 새로운 형식을 선보였다.

리포트 안에 그 리포트에서는 다루지 않는 다른 리포트와 웹툰, 취재파일, 인포그래픽 등 다양한 정보를 함께 담는 형식으로 제작했습니다. 비유하자면 ‘스마트 TV의 기능을 포괄하는 리포트’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는 스마트 리포트의 형식을 이렇게 설명했다. 스마트 리포트는 새로운 형식을 구현했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스마트 리포트를 본 시청자들은 댓글 등을 통해 긍정적인 평가를 많이 남기기도 했다.

한 가지 단점은, 스마트 리포트 안에 다양한 관련 콘텐츠가 담긴 것을 모르고 지나친 시청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새로운 형식인 만큼 시청자들이 익숙해지는데 그만큼 시간이 걸릴 것으로 자체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스마트 리포트로 방송기자연합회로부터 ‘이달의 방송기자상’을 받았으니 노력한 것에 대한 인정은 받은 셈이었다. (수상자는 뉴미디어부 담당 기자)

SDF 웹툰 리포트
SDF 2014 관련 총 3편의 웹툰 리포트를 제작했다.

스마트 리포트 이후에도 서울디지털포럼 연사들의 주요 스토리를 웹툰과 영상으로 함께 엮은 ‘웹툰 리포트’ 등 꾸준히 이 형식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혁신의 열쇠는 디지털 리터러시를 높이는 것

SBS 뉴미디어부의 다양한 콘텐츠는 실제로 페이스북 등 SNS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 이유는 전통 미디어의 ‘뉴미디어 전략’의 핵심을 확산 채널(네이버와 같은)에서 찾지 않고 콘텐츠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미디어에 맞는 콘텐츠 전략을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은 뉴미디어부 뿐 아니라 보도국의 기자들이 적극적으로 SNS를 활용하고 이에 맞는 콘텐츠를 생산했기에 가능했다.

제가 뉴미디어부를 맡고 처음 역점을 두고 진행했던 것이 디지털 미디어 직무교육이었습니다. 2013년 보도국 기자들 대상으로 교육을 했는데 그 당시 뉴욕타임스의 ‘스노우폴’을 보여 주었더니 기자들이 다들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죠! 오랜 전통의 신문이 디지털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고는 다들 더 늦기 전에 뭔가 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 것이죠.

그때부터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SNS를 이용하는 기자들도 대폭 늘어났고 취재파일 작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뉴미디어 시대, 디지털 시대에도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조직원 모두가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를 높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에서도 편집국과 기술 부서 등 다른 부서 간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뉴스 콘텐츠의 핵심 조직이 변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죠. 솔직히 기자생활 24년째를 맞고 있지만, 저도 이 부서로 오기 전에는 디지털 미디어에 대해서 크게 주목하지 못했습니다. 기자들의 눈앞에 닥친 일 – 현장 취재해서 기사 작성하고 리포트를 제작하는 일은 ‘디지털’과는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시대의 흐름, 특히 미디어의 혁명적인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디지털, 혹은 소셜 미디어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아직도 디지털이나 소셜 서비스에 낯선 많은 기자가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며 이를 위해 조직적인 뒷받침이 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이끄는 SBS 뉴미디어부의 ‘탈 네이버’, ‘모바일 퍼스트’ 모험기는 아직 목적지에 닿지는 못했을지라도 참으로 힘든 첫걸음을 떼는 데는 성공했다. 이제는 좀 더 가속페달을 밟으며 디지털, 소셜의 가도를 달리는 일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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