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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 ] 널리 알려진 사람과 사건, 그 유명세에 가려 우리가 놓쳤던 그림자,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이상헌 박사‘제네바에서 온 편지’에 담아 봅니다.

오늘은 레가툼 연구소(Legatum Institute)에서 최근 발표한 보고서(WELLBEING AND POLICY, 2014)에 담긴 영국 35세~50세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삶의 만족도 조사(미발간 영국 총리실 자료) 속 그래프를 이상헌 박사가 소개하고, 논평합니다. (편집자) [/box]

원칙적으로는 이해하면서도 선뜻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말들이 있다. 학생들에게 늘 하는 말,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직장인에게 늘 하는 말, “행복은 월급 순이 아니잖아요.”

‘월급 짜게 주기’ 캠페인을 한다는 착각마저 일으키는 영국 정부가 이번에는 ‘행복은 월급 순이 아니잖아요’를 입증하기로 작정했다. 영국 총리실에서 연구 용역을 의뢰한 보고서에는 영국인의 직업별 행복지수가 등장한다. 말하자면 직업 만족도다. 자기 주머니는 착실하게 챙기는 보수당이 ‘돈은 중요치 않아요’라는 주장을 하고 싶어 하니,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일단 결과만 보자.

영국의 연봉과 생활만족도 상관관계 그래프 (2013년 기준)
영국의 연봉과 생활만족도 상관 관계 그래프 (2013년 기준)
출처: Legatum Institute, [WELLBEING AND POLICY](2014)

직업과 행복의 상관관계

1. 직업은 직업, 행복은 행복: 고만고만한 월급쟁이들 

월급과 삶의 만족도가 관련이 있긴 하다. 그런데 생각보다 강하진 않다. 연봉 3만 파운드 (한화 4천 5백만 원) 정도 받는 고만고만한 월급쟁이라면, 거의 관계가 없다 (타원 안에 속한 직업군). 월급은 월급이고 행복은 행복일 뿐이다.

2. 돈이 곧 행복임을 실천하는 계층: CEO, IT 회사 간부

수입과 행복을 연결해 결국은 ‘돈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하는 직업군이 바로 CEO나 임원들이다. 돈도 많이 벌고 많이 행복한, 어찌 보면 복 받은 계층이다. CEO와 IT 회사 간부들이 없었다면, 그림에 보이는 상향선은 그냥 평평해졌을 거다. 이들이 몸소 ‘돈이 곧 행복’임을 실천하는 계층이다. 통계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3. 가장 행복한 직업, 가장 불행한 직업

가장 흥미로운 결과는 주님의 ‘놀라운 뜻’이다. 박봉이지만, 교회에서 주님을 모시는 성직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 하지만 술집 (pub)에서 세속인들에게 행복을 권하는 자들(선술집 직원)은 역설적으로 가장 불행하다. 영국인들은 하나같이 은퇴 후 선술집에서 맥주를 따라주는 한가로운 삶을 꿈꾸는데, 그게 실은 불행에 다다르는 길이다. 주님의 뜻이 과연 그러하시다.

가장 행복한 직업과 가장 불행한 직업  (사진, 일러스트: 왼쪽 aktivioslo, CC BY NC ND, 오른쪽 Michael Sormann)
가장 행복한 직업과 가장 불행한 직업
(사진, 일러스트: 왼쪽 aktivioslo, CC BY NC ND, 오른쪽 Michael Sormann)

4. 월급에 따른 행복 수준을 조절하는 놀라운 능력자들

영국 보고서의 행복과 직업(수입)의 상관관계를 보여주고 있지만, 직업군별로 논란의 여지는 크다. 하지만 그 논란의 와중에 통계적 추계선(fitting line) 위에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자리한 직업군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경제학자요, 통계학자요, 금융업계 종사자다. 이들은 돈의 행복 효과를 치밀하게 추정해서, 월급을 받는 만큼 자신의 행복 수준을 조절하는 놀라운 능력의 소지자다. 나도 이런 잠재적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  (추계: 일부를 가지고 전체를 미루어 계산하는 것. – 편집자)

우리나라에서 조사했다면? 육체노동과 행복의 관계?

보고서는 영국 보고서다. 영국의 역사, 정치, 경제, 문화는 우리의 그것과 다르다. 인간이 존재하는 시간(역사성)과 공간의 차이에 따라 조사결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조사했다면 영국 보고서와는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으로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보고서를 접한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같은 방법으로 조사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농민(이든 농부든 농업인이든 농업경영인이든 간에)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이 나온 영국처럼 우리도 그럴까? 영국 조사에서의 법조인(Legal Officials)이 어디서 어디까지를 포함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법률 관련 종사자들이 저렇게 낮은 만족도를 보일까?  (김종철)

영국에서도 농부의 만족도가 높게 나와 화제였다. 연구자들 얘기로는 야외 활동이 포함된 직업이 대체로 행복지수가 높은 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정신노동을 하는 직업군보다 육체노동을 하는 직업군의 행복감이 높은 걸까?

행복감은 그야말로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라서 뇌 속에서 엔도르핀이나 세로토닌이 나오게하는 육체적 운동을 반드시 수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운동은 몰입하게 하니까요. 그리고 운동의 근원은 사냥과 짝짓기의 출발점이 아닐까요? 그래서인지 시작은 힘들지만, 운동하면 기분이 좋아지지요. 저는 요즈음 정신적 몰입(광범위한 운동)과 육체적 운동이 해결책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김국진)

육체를 쓰는 직업이라도 행복감은 서로 다르다. (출처: morguefile.com, 변경-영리-출처표시 생략 가능)
육체를 쓰는 직업이라도 행복감은 서로 다르다. (morguefile.com, 변경-영리-출처표시 생략 가능)

이번 보고서는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육체적’ 움직임의 중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좀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운동강사’는 상대적으로 저소득임에도 행복감이 높은 편으로 조사됐다. 물론 ‘비서’직도 만족도가 높다. ‘육체노동’이 아니라 ‘육체적 움직임’이라고 표현을 달리 하는 이유는, 보통 육체노동 직업군의 행복지수는 낮기 때문이다. 건설노동자가 대표적이다.

모든 직업을 망라한 행복의 조건

요즘 직업(수입)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문제는 경제학에서도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다. 좋은 성과가 나와서 인간의 행복에 좀 더 기여할 수 있는 경제학이었으면 한다. 나도 그런 작업을 해 보고 싶다. 물론 쉽지 않은 작업이다. 어떤 직업, 어떤 노동을 하든지 행복한 삶을 위한 부정할 수 없는 조건이 있다. 그건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주는 노동 그 자체로서의 가치다.

긍정 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의 연구결과들을 보면, 금전적 풍요를 포함하는 기쁨(pleasure)이나 향락적인(hedonic) 웰빙만으로는 행복감을 지속해서 유지하기 어렵다고 한다. 행복을 증진하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애착, 성취감, 몰입 등이 그것이다. 특히 ‘의미 있는 삶’과 ‘의미 있는 노동’이 중요하다. 여러 직업군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공통이다. 그래서 나라의 GDP 절대치보다 사회적 양극화가 인간의 불행에 더 큰 요인이다. 특히 남과 비교가 강한 대한민국 문화에서는.

가난한 나라지만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다는 부탄에 자극받아 몇 년 전부터 프랑스 및 영국 등에서 정부 차원에서 연구와 각 나라의 행복지수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론의 완결성을 위해선 ‘합리적인 인간’을 전제해야 한다. 이것은 경제학의 대전제다. 문제는 인간은 그렇게 합리적이지만은 않은 존재라는 점이다. 첫 단추가 어긋나는 느낌이다.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인간의 인지 과정, 복잡 미묘한 감정, 집단화됐을 때의 행동 변화 등을 모두 변수로 넣을 수 있는 함수를 풀 수 있게 되는 날이 올까? 이는 우주를 연구하는 것만큼이나 거대한 야망일지도 모른다. (Sinae Kim)

결론

직업군별로 사람이 느끼는 만족감과 행복감은 각양각색이다. 다만 가장 행복한 성직자와 가장 불행한 술집주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또 그들을 위로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유사해 보이는 노동을 하는 이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이 차이는 혹여 삶의 가치를 완성해주는 기꺼운 노동과 ‘감정 노동’의 차이는 아닐까?

영국 보고서를 보고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많지 않지만, 굳이 있다면: 사람은 참 제각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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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1. 잘 일고 갑니다. 기본조건이 있다면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경제력이 있어야 이런 고민도 가능한거 같아요 벌어서 당장 갚아야 할 빚이 있다던가 당장 먹고살돈이 없다던가 그렇다면 직업은 중요하지 않죠 그냥 돈이 중요하죠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네요 기본적인 의식주가 채워지는 세상말이죠

  2. Legatum Institute는 영국 총리실과는 관련이 없는 두바이에 있는 민간 싱크탱크입니다.

  3. Gary Park 님께

    1. 레가툼 연구소가 총리실 산하 기관인 듯이 서술한 점은 편집상 미흡함이 있었습니다. 지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

    2. 레가툼 씽크탱크 (전체) 본부는 두바이에 있지만, 레가툼 연구소는 영국 런던에 본점 사무실이 있습니다. 이 점에서 소재지와 관련해 착오가 있으신 듯 합니다.
    – 참고 링크: http://www.li.com/ (하단 좌측)

    3. 위 본문 중 레가툼 연구소에서 인용한 그래프 자료는 ‘미발간 영국 총리실(및 영국 통계청)’ 자료입니다(해당 보고서의 해당 도표 각주와 서술 부분 및 참고문헌 참고).
    – 참고: 레가툼 보고서 72쪽, 73쪽 .

    4. 레가툼 보고서는 영국 총리실에서 해당 연구소에 연구 용역을 의뢰한 것인데요. 이 점은 뉴스 보도에서 명시되었습니다.
    – 예: http://www.bbc.com/news/magazine-26671221

    위 내용과 관련한 본문 서술은 오해가 없도록 좀 더 정확하게 보충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4. [행복 편지]

    詩人·靑山 손병흥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어 기쁜 마음
    우리의 생활이 즐거운 모습의 상태
    주는 기쁨 만족감 즐거움 느끼는 것

    복된 좋은 운수 희망 가져서 흐뭇한 삶
    마음 속 인생 깊은 곳에 숨어있는 생각
    진실로 실천하며 행동하는 양심의 상징
    일상생활에서 충분한 만족 기쁨을 느껴
    조금씩 나눔으로써 되돌려 채워지는 것

    지혜롭게 살아가는 가장 큰 우리들의 소망
    나름의 기준으로 느끼고 만족해가는 일상사
    거울 속에 비춰진 자신에게도 토닥거려주는
    힘들고 지쳐도 끝까지 늘 희망 잃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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