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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Are you a teacher?
B: Yes, I am. Are you a student?
A: Yes, I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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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세요?

실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교과서 SF

오래전 교과서에 실제로 나왔던 문장이다. 이 상황에서 학생은 교사에게 “선생님이세요?”라고 묻고, 교사는 학생에게 “너 학생 맞니?”라고 묻는다. 실세계에서는 좀처럼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는 점에서 “교과서 SF”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이 문장들은 특정한 교육단계에서 “student”나 “teacher”와 같은 단어, “Are you…?”와 “Yes, I am.”과 같은 구조를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왔을 것이라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더 들어가면 학습자들이 쉬운 문장에서 시작해 점차 복잡한 단어와 구문을 접해야 한다는 교수원리가 담겨 있을 것이다.

이론적 강박(obsession)이 현실성(authenticity)을 압도할 때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더욱 허탈한 것은 이러한 대화가 한 강사의 작은 실수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온 국민이 보는 국정교과서에 오랜 기간 실려 있었다는 것. 출판사들은 한글 해석이 달린 참고서를 내놓았고, 교사들은 큰 소리로 대화를 낭독했으며, 학생들은 달달 외워서 시험을 보았다.

문장을 제시하고 문맥을 쓰게 해야

(그럴 리는 만무하지만!) 이 문장을 써야 할 절체절명의 이유가 있었다면, 학생들로 하여금 이 대화가 벌어질 상황을 만들어 보라는 주문을 했어야 옳다. 텍스트를 제시하고 컨텍스트를 쓰게 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저런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상상력에 따라 더욱 다양한 상황이 제시될 수 있다.

  1. SNS에서 만난 두 사람이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선생님이세요?”라고 묻고 “학생이세요?”라고 서로 묻는 경우. 서로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없지만, 기존의 포스트를 통해 각자가 선생님이고 학생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경우 나올 수 있는 대화.
  2. 연극반 아이들이 대본 연습을 하고 있음. 연극반 지도교사는 학생들을 무작위로 나누어 “자자, 이쪽 그룹은 선생님 역할, 이쪽 그룹은 반대로 학생 역할을 하는 거야. 아무나 붙잡고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서 있을만한 상황을 연출해 봐.”라고 주문. 이때 학생은 “너 선생님 역할이야?” “너 학생 역할이지?”라고 물을 수 있음.

껍데기뿐인 언어 교육은 아닐까

YouTube 동영상

EBS에서 반기문 UN사무총장의 영어 연설을 보여주고 그게 어떻게 들리는지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실험대상자 중 한국사람은 대부분 발음에 집중해 촌스럽다거나 TV에 나올 수준은 아니라고 평했다. 반면 영국인 영어강사는 해당 동영상의 연설자가 높은 수준의 단어를 사용했다고 답했고, 미국인 회사원은 문장 구조가 좋고 의사도 잘 전달했다고 평가했다. 어느덧 우리 사회는 자기 생각을 전하고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는 수단으로서의 언어 교육이 아니라 유창한 발음이나 단순히 구조를 암기하는데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돌아보게 한 실험이었다.

글 처음에 인용한 대화 문장은 이제 영어 교과서에서는 사라졌지만, 현재의 영어교육이라고 이런 황당한 풍경이 없을까? 진짜 삶이 아니라 꽉 짜인 텍스트의 구조에 갇힌 사회, 새로운 맥락(컨텍스트)를 써내는 상상력이 억압되는 사회에서 실소를 금하지 못하는 상황은 계속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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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1. 언어가 통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한국의 교육 상황, 사람들의 인식이 안타까워요.
    영어 단어를 많이 알고 문법도 빠삭한 사람이 발음이 구려서, 창피할까봐 등의 이유로 영어를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접해서 더 안타깝게 여겨지네요.

  2.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내용’을 말하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어떤 권위적인 단어나 도구로 말하는가가 중요해왔기 때문에 이런 교육의 흔적이 남아있는거 아닌가. 영어로 어떤 내용을 전달하는가가 아니라, ‘영어를 할줄 안다’ 자체가 중요하게 다뤄진 사회가 만들어온 희극이다.

  3. 초등학생때부터 영어만 달달 공부했는데, 대학와서 영어로 말하는게 그러게 힘들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쓰실 기사들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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