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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센트를 꼽았는데 왜 드라이기야 작동하지를 않는 거니…

2010년에 호주 시드니의 한 호스텔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호스텔은 대부분 방이 다인실이어서 여러 명이 섞여서 자는 형태의 숙소인데요, 한국에선 이런 류의 숙박업소를 일반적으로 무엇이라 부를까요? 호스텔? 게스트하우스? 무엇으로 불러도 비슷한 뜻이지만 이 글에서는 호스텔이라고 지칭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일했던 곳은 교회(Church)라고 불리는 32명이 모여서 자는 방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전 영어로는 graveyard shift 라고도 불리는, 밤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일하는 야간 근무를 봤습니다. 리셉션을 봤는데, 딱히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시간 때에는 투숙하려는 사람도 없고, 떠나는 사람도 없으니까요.

대신 시드니의 심장부에 있는 호스텔이었고, 상대적으로 싼 숙박료 때문에 젊은 배낭여행객들이 몰렸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많다 보니 매일 같이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났는데, 일하면서 호스텔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에 글을 썼습니다. 그 글을 한국어로 옮겨 봤습니다. (마지막 항목은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추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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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텔에서 밤 근무를 하면, 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취해있더군요. 그래서 만났던 사람들의 유형을 정리해봤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읽고 나면, 여러분은 여행할 때 당황하지 않고 이들처럼 행동할 수 있을 겁니다. 근데, 제 앞에선 제발 그러진 말아주세요.

1. 춤꾼

이 부류는 인근 클럽, 술집 등에서 분위기가 업되어 호스텔로 돌아와서도 꾸준히 춤을 춥니다. 이 친구들이 사실 이 모든 부류 중 가장 귀엽긴 하더군요. 그냥 추고, 추고, 또 춤을 추니까요. 심지어 리셉션 위에 올라가서 춤을 추거나 저에게도 같이 춤을 추자고 청을 하곤 하죠. 뭐 저야 괜찮습니다만, 제발 새벽 5시 비행기를 타려고 리셉션에서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손님한테만은 춤을 청하진 말아주세요.

2. 오브제

제일 좋아하는 부류입니다. 이 친구들은 마치 자신이 미술작품의 오브제라도 된 것처럼 아무 데서나 자요. 어디냐 구요? 예를 들면, 리셉션, 리셉션, 리셉션, 그리고 리셉션에서 자더라고요. 리셉션 앞에 기다란 소파가 있는데 모든 투숙객은 참 편하다고 느끼나 봐요. 사실 제가 근무할 때는 그곳에서 주무시는 건 대환영입니다. 왜냐구요? 여러분을 오브제 삼아 제 예술혼을 불태울 수 있거든요. 우리 호스텔의 왕/여왕을 만들어 드릴게요. 제 동료와 제가 만들어낸 이 명작을 한번 감상해보시죠. 전 이 친구의 바지에 물을 부었습니다. 화룡점정이랄까요. 다음부턴 그냥 맹물 말고 좀 더 오브제에 창의적인 접근을 해볼까 합니다. 그러니 제발 제 앞에서 편히 주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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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을 다리미로 다리고 계신 한 손님

3. 연인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건 참 아름다운 일 같습니다. 그리고 호주는 성에 대해서도 참 개방적인 나라고요. 하지만 리셉션을 주지육림처럼 만드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하루는 새벽 4시경 한 커플이 리셉션 바로 앞 소파에 앉더군요. 커플과 저 말고는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매우 취해있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서로 키스를 하기 시작하더니… 흠흠. 30분 동안 그러더라고요. 제 인생에 있어 가장 어색한 순간이었습니다. 다행히도, 누군가에게는 불행히도, 옷을 벗거나 하진 않더라고요. 근데 그 장면을 유튜브에 올린다면 한 100만뷰는 올릴 수 있었을 텐데. 아 맞다! 우리 CCTV 있는데!

4. 메멘토

혹시 메멘토라는 영화 보셨나요? 안 보신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하면, 선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린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선행성 기억상실증이 뭐냐 구요? 인생의 어느 순간까지는 기억하는데 그 이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병입니다. (검색해봤어요. 저도 잘 몰라서…)

아무튼 많은 사람은 취하면 이 병에 걸리는 것 같습니다. 주로 이분들은 방 번호를 잊어버리더군요. 뭐 한 번쯤은 잊어버려도 괜찮습니다. 우린 망각의 동물인 인간이잖아요. 두 번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다시 내려와서 물어보고, 잘못된 방을 들어가고, 문을 못 열고, 다시 내려오고,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자기 이름을 잊어버리고, 제 앞에서 ‘왜 내 방 번호를 잘못 가르쳐줬느냐!’고 화를 내고, 자신이 지금 어디 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나아가 이 세상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되면… 후…

그래서 제가 좋은 팁 하나를 가르쳐 드릴게요. 다음번에 술 마시러 나갈 때는 이름과 방 번호를 이마에 꼭 적어놓고 나가세요. 문신을 새기는 것도 좋겠네요. 그러면 저희가 친절히 고객님을 방까지 질질 끌어다 에스코트해 드릴게요.

5. 과학자

술을 많이 마시면 우리는 저녁에 무엇을 먹었는지 한번 확인해보고 싶어집니다. 어떨 땐 점심으로 무엇을 먹은 지도요. 이해합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됐다고 하더라고요. 알코올은 우리의 식품 섭취 물과 위산이 어떠한 반응을 일으키는지 확인하고 싶어하는 강력한 동기를 유발한다는 걸요. 하지만 이런 과학적인 연구는 화장실에서 하면 안 될까요? 리셉션 앞이나, 엘리베이터 안, 아니면 계단 하나하나에다 일일이 하지는 말아주세요. 빌어먹을 과학.

6. 누드모델

누드 비치 가보셨나요? 안 가보셨으면 가지 마세요. 정말 핫한 친구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계시겠지만, 털만 북슬북슬한 쭈글쭈글 할아버지들만 있습니다. 진짜배기를 보고 싶다면, 여기로 오세요! 사람들은 복도, 화장실, 샤워실, 심지어 여러분의 방에까지 모두 발가벗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운이 없는 날엔 아래 사진과 같은 분을 복도 끝에서 마주할 수도 있겠네요. 여러분께 참 죄송한 마음입니다. 다음부턴 이런 상황이면 위에 셔츠까지 벗어달라고 친절히 물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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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번엔 꼭 상의도 벗어달라고 해볼게요

7. 영화배우

흠. 영화배우는 영화배우인데, 성인 영화를 찍는 분이 종종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만나려면 매우 운이 좋아야 해요. 전 운이 좋은지 매일같이 만나고 있긴 합니다. 성인영화 한 번이라도 보셨나요? 전 한 번도 안 봤는데 친구가 그러는데 응응하는 배경이 참 다양하다고 하더라고요. 화장실은 기본이고, 세탁실, 심지어 6인실 같은 곳에서두요. 안타깝게 리셉션 앞에서는 목격 못 했어요.

제가 심어놓은 첩보원들이 밤 12시가 넘어가면 내려와 어디 어디에서 거사가 치러지고 있다고 항상 보고한답니다. 어떨 땐, 순진무구한 투숙객이 내려와 항의하곤 하지요. 화장실에서 거사를 치러지고 있어서 본인이 조금은 다른 거사를 치를 수 없다면서요.

이럴 땐 어떻게 하냐고요? 보통 12시쯤이면 1~6번에 속하는 사람들이 리셉션에 즐비합니다. 전 이들에게 방송합니다. “지금 화장실에 가세요! 거사가 치러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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