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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때 속했던 삼성이 전 너무도 부끄럽습니다

이 글은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 근무했던 필자가 삼성전자 공식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읽고, 자신의 체험에 바탕해 이를 반박한 것입니다. 이 사안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 (편집자)

삼성전자 김선범 부장님.

부장님의 글 “영화가 만들어 낸 오해가 안타깝습니다” 를 읽었습니다. 삼성의 “홍보인”답게 내용 전체를 제목에 온전히 잘 담아 놓았네요.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죽은 고 황유미 씨의 사연을 담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내용이 삼성전자를 “나쁜 집단, 절대악, 범죄집단, 괴물” 등의 모습으로 그려 놓았고 그게 삼성을 “오해”하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회사 차원에서는 언급을 꺼리는 삼성이 홍보팀 상무의 이름으로 공식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회사 차원에서는 언급을 꺼리는 삼성이 홍보팀 부장의 이름으로 공식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과연 이 영화가 “예술의 포장을 덧씌워 일방적으로 상대를 매도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영화일까요? 삼성을 적대시하는 이들이 “투쟁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이 영화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계에 도움이 되고자 삼성전자에서 일한 대가로 백혈병을 얻어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 착한 딸과 그 딸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이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삼성전자의 협박과 회유에도 진실을 밝히는 데 앞장섰던 택시기사 아버지의 실화를 그대로 (실제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되려 약하게) 옮긴 영화입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 포스터

부장님은 글의 시작을 딸아이와의 대화로 시작합니다. “늘 아빠 회사가 자랑스럽다”던 딸아이가 “아빠 회사가 정말 그런 일을 했어?”라고 물었기에 오해를 풀기 위해 글을 쓴다고 했습니다. 딸아이의 이야기가 독자의 감성을 건드릴 수는 있었겠지만, 온전히 진실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딸아이 앞에 부끄러운 아버지가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아버지로서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였습니다. 삼성전자가 과연 “나쁜 집단”인지 “자랑스러운 회사”인지는 황유미 씨의 죽음을 두고 행했던 삼성전자의 행위들이 이미 답을 내놓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에서 일했던 사람으로 말씀드립니다

부장님은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한때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일했던 사람입니다. 더 자세히 말하죠.

전 1988년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의 3라인(황유미 씨가 일하다 백혈병을 얻었던 바로 그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제가 처음 입사했을 때는 아직 3라인 완공이 채 마무리되지 않았을 때이고, 회사를 그만두던 때는 4라인까지 완공되어 생산하던 때였습니다. 제가 거기서 계속 일했다면 황유미 씨하고 친구가 될 수도 있었겠네요. 제가 일했던 베이(bay; 반도체 공장 내의 작업 구역 단위)가 황유미 씨가 일했던 베이 바로 옆이었거든요.

부장님에게는 삼성전자가 자랑스러운 회사인지 몰라도 제게는 제 삶을 통해 가장 끔찍한 공장으로 기억됩니다. 부장님은 “엔지니어가 아니”기에 “어떤 물질이 어떻게 해로운지도 상세히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직원과 사업장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회사와 직원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에 “안전에 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전 “엔지니어”였고 2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반도체 일로 먹고사는 노동자입니다. 그것도 황유미 씨가 백혈병을 얻었던 바로 그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3라인에서 반도체 장비의 유지, 보수 일을 했던 현장 엔지니어였습니다. 그래서 전 “어떤 물질이 어떻게 해로운지” 상세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원과 사업장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회사와 직원들이”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생산량과 실적에 쫓겨 안전을 도외시하는 모습을 수도 없이 지켜보았고, 저 역시 그렇게 일했던 사실을 부끄럽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유해 가스 처리장치 없던 1988~1991년의 기억

그때 기억을 조금 더듬어 보겠습니다.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장비는 온갖 유해 가스들을 엄청나게 사용하기 때문에 사용하고 난 가스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스크러버(scrubber)라고 하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장비에 바로 연결해서 사용하는 1차 스크러버와 공장 옥상에 설치해서 사용하는 2차 스크러버가 반드시 필요하죠. 가스 별로 각각의 물성에 따라 물로 녹이거나 불로 태우거나 필터를 이용해 흡착해서 처리합니다. 두 가지 방식을 섞어 쓰기도 하죠. 그렇게 해도 유해 가스가 완전히 다 처리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 1988~1991년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3라인, 제가 담당하는 장비에서 1차 스크러버를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메탈(Metal) 공정 등 스크러버를 설치하지 않으면 치명적인 공정에는 스크러버가 있었을 겁니다. (사실 그 공정의 장비에서도 본 기억이 없지만, 제 기억이 틀렸을 거라고 믿습니다. 설마 아예 없었을 리가……)

최근에 만든 공장들은 모두 1차 스크러버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가스를 배출하는 펌프(pump)가 동작을 멈추면 생산 중인 장비도 자동으로 동작을 멈추지만, 가스를 처리하는 스크러버는 동작을 멈추어도 생산 중인 장비가 자동으로 동작을 멈추지 않습니다. 스크러버가 고장이 난 걸 확인하고 조치할 때까지 장비는 유해가스를 아무런 정화처리도 하지 않은 채 계속 배출한다는 뜻입니다.

당시 회사는 온전히 처리되지 않은 유해 가스를 공장 굴뚝을 통해 수시로 배출했습니다. 지금도 여러 가지 경우의 수에 의해 유해 가스를 배출할 가능성이 큽니다. 당시 반도체 공장 주변에 세워 놓았던 자동차들이 비를 맞으면 쉽게 부식되었던 건 잘 알려진 비밀입니다. 부장님 차에는 그런 일이 없었던가요? 그런 일이 있었어도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않아 자동차 회사만 탓하지는 않았었나요?

유해 가스로 차량이 부식된 적도……

2006년 부천의 반도체 회사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소개하죠.

유해 가스를 처리해야 하는 2차 스크러버가 고장이 나서 제대로 걸러지지 않은 가스가 비와 섞여 내리는 바람에 공장 주차장의 모든 차가 부식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물론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입단속을 시키고 부식된 차의 패널과 유리를 모두 교체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패널과 유리를 교체한 차 중에 제 차도 있었습니다. 제가 그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었으니까요.

당시 전 오마이뉴스에 자주 기사를 썼었는데, 이 건에 대해서는 침묵했습니다. 저의 밥벌이가 걸린 일이었으니까요. 내부고발자가 되기엔 제가 너무 비겁했습니다. 그 일이 지금도 가슴에 박혀 있는 건 당시 공장 주변의 일반 가정집에도 영향을 줬을 텐데, 제가 침묵하는 바람에 공장 관계자 외에는 그 사실을 몰랐고, 거기에 대한 조사도 대응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벌어진 안전사고에 대해 침묵한 제가 지금 이토록 가슴에 큰 돌을 안고 사는데, 부장님은 침묵을 넘어 회사 편에서 사실을 왜곡하는 글을 (그것도 딸아이까지 들먹이며) 썼으니 그 짐을 어떻게 하시렵니까.

차의 패널과 유리에 구멍을 뚫는 가스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비 오는 날 부장님이 일하는 공장을 걸어서 돌아다녀 보세요. 지금도 공기 속에서 시큼한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겁니다. 2차 스크러버를 통과하고도 남은 가스가 하늘로 올라가서 대기 중에 퍼져야 하는데, 비 때문에 혹은 기압 때문에 땅으로 내려와서 미세하게나마 코를 자극할 겁니다.

사람의 안전보다는 일과 장비가 우선

한 가지 더 이야기할까요?

지금이야 그렇지 않겠지마는 당시만 해도 장비에 쓰는 가스병(Gas Bottle)을 교체하는 일도 장비 엔지니어가 담당했습니다. 전 그 당시 신입사원이었는데 교체하는 방법을 선배 사원에게 한 번 배웠을 뿐입니다. 그 선배도 매뉴얼을 보고 배운 게 아니라 그 위 선배에게 경험을 통해 배운 겁니다. 그리곤 그 위험천만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었죠.

이 가스가 얼마나 위험한지, 사고가 났을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습니다. 배운 거라고는 그 무겁고 위험한 가스병을 한 손으로 기울이고, 발로 굴리면 쉽게 움직일 수 있다는 그런 잔기술뿐이었습니다. 가스병을 교체할 때 가끔 실수로 조금씩 새기도 하고 다른 가스병을 잘못 설치해서 다시 교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건 안전팀에 보고가 되지 않고 자체적으로 해결했었죠.

장비의 가동을 위해 안전을 위한 장치인 인터락(interlock)을 해제한 채로 사용한 이야기,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보수(PM)를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방독 마스크조차도 구비 되지 않았던 환경, 화공 약품이 잔뜩 담긴 수조(chemical bath)에서 일하는 작업자에게 앞치마와 보안경이 안전 도구의 전부여서 거기서 나오는 증기를 모두 작업자가 마셨던 환경……

할 이야기가 너무도 많지만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안전에 대해 무관심했던 회사가 생산하고 있는 칩(chip) 하나는 텔레비전 한 대 값이고, 웨이퍼(wafer) 한 장은 자동차 한 대 값이며, 웨이퍼 25장 한 카세트(cassette)는 아파트 한 채 값이라는 그림이 그려진 게시물을 공장 곳곳에 붙여 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그러하다면 그것 중 일부만이라도 떼어 내고, 그 대신에 안전 관련 게시물을 붙여 주시길 바랍니다.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켜주세요

“직원과 사업장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회사와 직원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고 했나요? 그 대목에서 헛웃음이 나온 사람이 오래전 삼성전자를 그만둔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지금도 공장 내에서 생산에 쫓기고 있는 엔지니어들에게 그 글을 한번 보여 주세요.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저도 궁금하니까요.

부장님은 “엔지니어가 아니라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거기서 일했던 사람들이, 거기서 병을 얻은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 간 사람들이 온몸으로 증명하는데, 스스로 “잘 모른다”는 홍보팀의 부장님이 딸아이까지 들먹이며 부정하는 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무모함입니까. “내 딸 죽였으니 보상해라” 가 아니라, “내 딸 죽인 삼성전자는 사실을 인정하고, 더 이상의 죽음이 없게 하라”가 그 영화를 만든 이들의 주장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영화를 “투쟁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말을 하다니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는 게 부장님의 딸아이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을 겁니다.

영화 [또 하나의 가족]의 실제 인물 황유미 씨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실제 인물 황유미 씨 (사진: 민노씨)

“설명이 부족하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에 서툰 것도 사실이지만 제가 다니는 회사는 최소한 영화가 그려 낸 그런 괴물은 절대로 아닙니다. 저는 제가 속한 이 회사에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부장님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부끄러움을 느낄 수도 없을 겁니다. 모른다고 발 빼지 말고 지금이라도 자기가 일하고 있는 회사의 상황에 대해 알아보려고 노력하세요. 만약 진실을 알고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면 양심이 없는 것이겠지요.

부장님의 문장을 따라 저도 마무리하렵니다.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고,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며, 심지어 피해자를 모독하는 것으로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는 삼성전자는 분명 괴물이며, 제가 한때 속했던 이 회사가 전 너무도 부끄럽습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의 홍보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의 홍보물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나눔과 연대 -싱가포르 이주노동자 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글의 표제와 본문은 슬로우뉴스 편집원칙에 따라 일부 수정하고 보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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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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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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