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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 판결문은 잘 소개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중요합니다. 교양 있는 보통 사람에게도 ‘암호문’에 가까운 판결문. 슬로우뉴스가 주요 사건에 관한 판결문을 쉽게 풀어 읽어드립니다. 그래도 어렵다고요? 어떤 문장, 어떤 표현이 어려운지 현명한 독자의 ‘지적질’ 부탁합니다. (편집자) [/box]

2014년 1월 17일, MBC의 해고와 징계는 무효라는 1심 판결이 있었습니다. 지난 2012년 1~7월 동안 공정방송을 요구하면서 파업에 참여했다가 해고당하거나 정직당한 노조원들이 낸 해고 및 정직처분 무효 확인 소송이었습니다.

많이 울었습니다. 아무리 노동3권이 바보 취급받는 시대라지만, 법대로 하면 해고가 무효라는 판단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판결 내용은 그보다 훨씬 더 깊은 뜻을 담고 있더군요. 판결문을 조목조목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그 와중에 연이어 두 번째 판결이 있었습니다. MBC가 노동조합을 상대로 낸 195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기각됐습니다.

두 판결 모두 방송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파업이 정당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왜 파업을 했고, 왜 그 파업이 정당하다는 것인지, 방송에 공정성 의무란 게 무엇인지, 해당 부분을 발췌하고, 요약해 정리하고자 합니다.

공정성 요구하다 해임 정직당한 44인의 ‘찌질한’ 죄목

사건은 MBC 노조가 2012년 1월 30일부터 7월 17일까지 이끌어 간 파업에서 비롯됩니다. 해고 및 정직이 무효라는 판결을 받은 44명의 ‘죄목’은 솔직히 조금 ‘찌질’합니다. 파업을 주도했다는 노조 집행부는 그렇다 칩시다. 새누리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든지,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했다든지, ‘집 나간 재철이를 찾습니다’에 출연했다든지, 노조 프리허그 행사를 진행했다든지, ‘연애 잘하는 비법’ 파업 특강도 이유가 됐습니다.

장안의 화제작 ‘MBC 프리덤’ 기획 제작도 죄목. ‘제대로 뉴스데스크’에 출연하거나 해설을 맡은 것도 괘씸한 죄가 됐죠. 파업에 동조하여 임의로 보직 사퇴한 간부들도 줄줄이 징계를 받았습니다. 파업 중인 이들에게 무단결근도 징계 사유였습니다. 파업에서 빠지게 된 동료 얘기를 페이스북에 올린 것도 걸렸습니다.

2014년 1월17일 판결 후, 여의도 MBC 남문에서 열린 환영 집회. 1심 승소 주인공들
2014년 1월 17일 판결 후, 여의도 MBC 남문에서 열린 환영 집회. 1심 승소 주인공들

당시 상황: 왜 MBC 기자들은 파업에 나섰나

두 재판부는 파업 이전 상황을 세세하게 살펴봅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1. 뉴스데스크

① 국무총리실의 불법 민간인사찰 의혹에 관하여 다른 언론사들보다 약 10여 일이 늦게 MBC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PD수첩‘에서 2010년 6월 29일 관련 내용이 방영된 후인 2010년 7월 2일 경 비로소 처음으로 보도하였고,

② 2011년 5월 23일에서 26일 동안 실시된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들에 관하여 다른 방송사들과 달리 전혀 보도를 하지 않았으며,

③ KBS 기자가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 도청하였다는 의혹에 관하여 경쟁 방송사인 SBS보다 이틀 늦은 2011년 6월 27일 최초 보도를 하였고, 이후 관련 뉴스에 대하여 피고의 사회2부장이 사안이 민감하다는 등의 이유로 송고(送稿) 제한을 지시하여 기자회가 보도국장에게 그 경위를 공개 질의하는 등 기자들의 반발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사안이 민감하면 보도를 안해요? 민감하지 않은 ‘동물의 왕국’만 보도하는게 소신?)

④ 2011년 11월 26일경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전국 동시집회 개최에 관하여 다른 방송사들과 달리 이를 보도하지 않는 등, 경쟁 언론매체들과 다소 다른 보도 태도를 보였다.

민감하지 않은 소식을 골라서 전해주는 뉴스데스크 혹은 ‘동물의 왕국’

2.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2008. 4. 29. 방영분) 이후, 농림수산식품부의 정정보도 청구는 일부 인용됐습니다. 그러나 농림부 장관 명예를 훼손했다는 소송에서는 PD들의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문제는 이들에 대해 회사 명예 훼손을 이유로 회사가 징계를 내렸고, 이 징계가 무효라는 1심 판결이 나온 상태입니다.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이라는 최승호 PD 방송은 국토해양부측의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음에도, 김재철 사장이 방송을 보류했죠. 이후 6명의 PD수첩 담당 PD를 다른 부서로 보내버렸습니다. PD수첩 궤멸작전이라 할 만했습니다. 4대강 문제는 결국 감사원을 통해서도 문제들이 줄줄이 터져 나오는데 그 때 그 보도 막은 것들 뭐라 할 건가요.

새로운 내용이 없다거나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진중공업 노사분규나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 관련 의혹, 제주도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관련 의혹 등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 제작을 허락하지 않았고, 2011년 8월 23일 방영 예정이었던 서울특별시의 한강 변 개발사업에 관한 프로그램의 내용 중 오세훈 시장이 등장하는 부분을 삭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담당 팀장은 2011년 7월 PD들의 책상을 뒤지는 듯한 행동을 하다가 발견되기도 했죠. (온갖 MBC의 기행 중 이 사례가 가장 서글펐습니다. 직원들 감시 강화하려 설치한 CCTV에 저런 거나 걸리고.)

급기야 일부 PD들을 경인지역본부로 보내버린 인사 조치는 소송까지 가서 효력정지 가처분을 받았어요.

3. 라디오

김미화, 김종배, 김종국, 윤도현 등 기존의 진행자 및 출연자들이 청취율 하락이나 정치활동 관여 등을 이유로 다수 교체되었고, 2011년 7월 경 사회적 쟁점에 관하여 특정한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출연자의 고정출연을 제한하는 내용의 고정출연제한 심의규정을 신설했고, 당시 ‘손석희의 시선집중’의 배우 김여진 섭외를 불허했죠.

4. 파업 직전 상황

2011년 10월 26일 재보궐선거 보도가 불공정했다는 논란, 한미 FTA 반대시위 관련, 2011년 11월 23일 집회 현장에 중계차까지 보내놓고도 뉴스데스크 보도 누락, 경찰 물대포 사용의 인권침해 논란도 비보도 등등 문제가 생기면서 노조는 공정방송협의회 개최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회사는 불응했죠. 2011년 이후 회사는 월 1회 개최하도록 단체협약에 정해놓은 공정방송협의회 정례회의를 단 한 차례도 개최하지 않았습니다. 노조는 14차례에 걸쳐 요구했죠. MBC 기자회는 보도본부장, 보도국장의 불신임투표를 진행했고, 회사는 이를 문제 삼아 징계에 나섰습니다.

노조는 결국 파업의 수순을 걷게 되죠. 처음 파업에는 600명이 참여, 6월 무렵에 최대 785명에 이르렀다고 판결문에 나옵니다.

파업의 목적이 정당했는가?

노동조합법에서 ‘노동쟁의’는 “노동조합과 사용자 간에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입니다. 쟁의행위 목적은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 또는 그에 영향을 미치는 기타 노동관계에 관한 사항으로서 노사관계 당사자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당해 노사관계 당사자에 관련되는 사항, 즉 원칙적으로는 단체교섭의 대상이 되는 사항”으로 한정됩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합니다.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은 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와 발전에 필수적인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올바른 여론의 형성을 위하여 방송에 객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할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하여 구체적으로 방송사업자에게 방송편성규약을 제정․공표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러한 법적 규율에 비추어보면, 공정방송의 의무는 방송법 등 관계법규에 의하여 피고의 노사 양측에 요구되는 의무임과 동시에 근로관계의 기초를 형성하는 원칙”

“방송의 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과 그 준수 또한 교섭 여부가 근로관계의 자율성에 맡겨진 사항이 아니라 사용자가 노동조합법 제30조에 따라 단체교섭의 의무를 지는 사항”이란 거죠.  방송 공정성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지키는 게 방송사 노사 양측의 의무, 단체교섭 대상이라는 지적입니다.

공정성,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방송의 공정성은 일체의 가치 판단을 배제한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주관적 가치판단에 따른 임의적 편성을 배제하고 다양한 가치를 수렴하여 사실에 기초한 객관적이고 가치 중립적인 방송을 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가치는 그 자체로 주관적인 것이어서 어떠한 내용의 방송이 공정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관점에 따라 필연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고, 결국 방송의 공정성은 방송의 결과가 아니라 그 방송의 제작과 편성 과정에서 구성원의 자유로운 의견 제시와 참여 하에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될 수밖에 없다.”

저는 그동안 꽤 오랫동안 미디어 공정성으로 연구하고 고민해왔습니다. 공정성은 매우 주관적입니다. 조선일보 독자에겐 조선일보가, 한겨레 독자에겐 한겨레가 공정한 건데 뭐가 공정성이란 말인가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법원의 판단, 참 현명합니다. 얼마나 치고받고 떠들고 싸우면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가. 이건 조직 건강의 핵심이자 민주주의의 본질입니다. 민주주의가 언론사라는 소우주 안에서 구현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단체협약에서 방송의 절차적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규정들을 두고 있는 경우, 사용자가 이러한 절차를 무시하고 인사권이나 경영권을 남용하여 방송의 제작, 편집 및 송출 과정을 통제하려 한다면, 이는 단체협약을 위반하여 근로조건을 저해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방송법 등 관련 제규정에서 정한 공정방송의 의무를 위반한 위법행위에 해당하는 것” 따라서 “근로자는 그 시정을 구하기 위한 쟁의행위에 나아갈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재판부는 특정 뉴스의 보도 여부나 특정한 방송프로그램 주제의 선정, 출연자의 교체 등은 담당자의 전문적 판단인지라..그 결과만 갖고 공정성 침해라 하기 어렵다 합니다. 그러나 직원들이 그런 결정에 담당자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합의한 절차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건데 그렇지 못했다는 겁니다.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단체협약에서 만든 제도와 절차들, 공정방송협의회를 유명무실하게 한 죄가 사측에 있다는 얘깁니다.

결론: 이 사건 파업은 그 목적에 있어 정당하다

두 번째 판결에서도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이 사건 직전까지 김재철을 비롯한 경영진은

  1. 단체협약에서 정한 공정방송 규정들을 지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2. 제작자와 상의 없이 임의로 방송 출연자를 변경하고,
  3. 정당한 이유 없이 정권을 비판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의 방송 제작을 거부하고,
  4. 다양성과 중립성을 유지하여야 할 자신의 의무를 위반한 채
  5. 합리적인 이유 없이 오로지 자신의 뜻에 따라 방송을 제작하지 않았거나 자신의 뜻과 다른 내용의 방송을 제작하려고 하였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방송 제작자의 보직을 변경하는 등 인사권을 남용하였고,
  6. 그와 같은 방법으로 원고 내부에서 구성원들이 자유로운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위축시켜 다양한 의견을 억압하는 한편
  7. 경영자의 가치와 이익에 부합하는 방송만을 제작, 편성하려 시도하였다.

사실 어느 조직에서나 담당자를 무시한 윗선의 일방적 결정은 대개 폐해와 부작용을 낳죠. 흔한 사례입니다. 정권을 비롯해 성역 없는 비판과 문제 제기는 언론이 존재해야 하는 그 본질적인 존재 이유입니다. 그리고 인사권 남용, 이게 사실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꼭 MBC만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옳은 말하는 이는 내쫓고, 능력보다 충성 경쟁에 뛰어난 예스맨을 중용하는 건 망하는 조직의 필요충분조건이죠.

공정보도 의무를 지키지 않는 미디어는 범죄 집단

MBC 입장은 판결 3일 후 조선일보, 매일경제, 문화일보 1면에 게재한 광고에 잘 나옵니다. 공정성 의무가 근로조건에 해당한다는 재판부 판단이 파업의 목적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것이라는 주장, 그리고 방송법 등에서 규정하는 공정성 조항은 노사 양측이 아니라 회사에 부여된 의무로, 이익단체인 노동조합은 공정방송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MBC는 ‘파업은 정당하다’는 법원 판단을 정면에서 비판하는 광고를 조선일보, 매일경제, 문화일보 1면에 게재했다. 판결 당사자가 정면에서 법원의 결정을 반박하는 광고를 며칠 뒤에 내보내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2014년 1월 20일)

방송 공정성이 노사 모두의 의무가 되는 순간, 단체협약이 중요해지는데, 그것을 부인하려면, 사측이 알아서 할 일일 뿐, 노조의 의무는 아니라고 맞받아 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회사 망가뜨리자고 작심하는 노동조합이 있나요? 궁극적으로 회사 잘 되자고 싸우는 겁니다. 일터 지켜야죠.

노조를 파트너로 삼는 기업, 그게 불가능한 꿈일까요? 애초에 방송사 단체협약에 공정방송 조항을 넣어둔 취지는 어디다 팔아먹으셨나요? 하나 사례를 들어볼까요. 노동자에게 경영 참여를 의무화한 독일과 정리 해고 등 노동유연성을 강조한 미국. 결국, 어떻게 됐나요? 양질의 고용이 가능한 제조업을 유지한 나라는 독일이었고, 미국은 몇몇 IT 기업을 제외하고는 기존 제조업이 전반적으로 침체에 빠졌죠. (참고: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리뷰)

두 번째 판결문에서 보여준 언론에 대한 언급들은 새겨볼 만합니다. “여론형성 및 개인의 의견형성의 매체이자 요인인 신문과 방송 등 매스미디어는 그 기능에 터잡아 헌법적 지위를 갖게 된다”라든지 “국가권력의 간섭과 규제로부터 독립하여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요청과 방송의 운영 및 편성에 있어 공공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각계각층의 주체들이 기회균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방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적 요청“을 받는 게 미디어죠. 제4부라 불리는 언론의 무게를 느낄 수 있습니다.

언론에 책임이 함께 하기를!
언론에 책임이 함께 하기를!

그리고 “공정방송의무는 방송사업자 뿐만 아니라 방송편성책임자와 그를 보조하는 모든 언론기관 종사자에게 부과된 의무이고 이를 침해하는 행위는 위법하다”라는 얘기는 방송만 귀담아 들을 얘기는 아닐 겁니다.

이제 겨우 1심, 아직 돌아오지 못한 언론인 기억하길

묻지 않고, 따지지 않고, 비판하지 않는 미디어는 이미 스스로 범죄자. 미디어 내부와 관련 학계에서 수도 없이 외쳐봤겠지만, 이렇게 사법부의 판결문을 통해 확인하는 것도 대단한 수업입니다. 대가는 가혹했지만, 의미를 곱씹어봐야죠. 이 두 사건은 이제 1심 판결을 받은 것일 뿐,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받을 때까지 몇 년 더 걸립니다.

아직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언론인이 많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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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번호:
2012가합16200 해고무효확인 등  ㅣ 2012가합3891 손해배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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