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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25일, 한국만화가협회(이후 만화가협회) 제46차 총회 및 제26대 임원선거가 시행되었다. 지금까지 만화가협회 총회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치열했던 선거전이었다. 회장 후보자로 강촌, 이충호, 하승남(가나다순) 세 명이 출마했고, 선거를 위해 협회원과 관계자 4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색적이었던 건, 이번 만화가협회 총회에서는 젊은 웹툰 작가들의 모습을 대거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젊은 웹툰 작가들이 만화가협회에 들어오고, 웹툰분과에 가입하게 된 까닭은 2012년 초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웹툰 심의 사태로 발화된 웹툰 작가들의 조직적 대응 요구를 만화가협회로 끌어안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덕분에(?) 젊은 작가를 대거 영입한 한국만화가협회 (사진: 제46차 정기총회 모습)

젊은 웹툰 작가 만화가협회에 들어온 사연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2012년 6월 21일 자로 코믹스파크에 업데이트한 기사 ‘웹툰은 격랑의 소용돌이로’에서 요약한 내용을 인용한다.

조선일보는 1면에 폭력 웹툰 운운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1면에 폭력 웹툰 운운 기사를 실었다. 2012년 1월 8일 자 (온라인 입력 1월 7일)

조선일보의 “‘열혈초등학교’ 이 폭력 웹툰을 아십니까”라는 기사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서 수익을 공개하고, 만화가의 수익 공개 및 기본 소득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킨 만화가 박무직은 조선일보 기사와 관련해 “조선일보는 한국만화 변화를 알려주는 카나리아”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카나리아 조선일보가 울자, 민원에 시달리던 방심위가 24개 작품에 대한 심의 의견을 포털에 통보했고, 다음(Daum)은 ‘앗 뜨거워, 이거 큰일 나겠는데!’라며 윤태호 작가에게 SOS를 보냈다. 네이버는 일단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였다.

사람을 모아 대응을 준비한 윤태호 작가

청소년보호법으로 연재 매체가 중단된 경험을 한, 그리고 중견 작가의 위치에 선 윤태호 작가는 적극적으로 사람을 모았고, 학원폭력 추방만화에서 폭력 웹툰으로 극적 반전을 경험한 ‘전설의 주먹’의 이종규 작가가 결합하고, 변호사와 법대 교수, 만화과 교수 등이 결합해 논의를 확산시켰다.

웹툰에 대한 심의 기도는 작가들에게는 ‘생존권’의 문제로, 독자들에게는 ‘향유권’의 문제로 다가가며 생각보다 큰 파도를 일으켰다. 이어 웹툰은 기존 출판만화와 다른 작가들이 다른 연출로 만들어 다른 생태계를 구성했다는 논의가 등장하고, 웹툰 작가들의 조직화가 추진되었다.

웹툰작가의 조직화…… 포털 중심 웹툰 생태계 문제 제기

웹툰작가들의 조직화는 필연적으로 기존 포털 중심의 웹툰 생태계에 대한 문제 제기를 동반한다. 포털 중심의 웹툰 생태계는 대형 포털에 집중되어있으며(네이버, 다음 2강 체제에 네이트가 새롭게 웹툰 서비스 준비 중), 작품이 만들어내는 트래픽이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으므로 포털이 슈퍼 갑(甲)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건 담당자의 문제를 넘어 구조의 문제. 담당자가 아무리 만화에 애정이 있어도, 야후나 파란의 사례에서 보듯 슈퍼 갑의 판단으로 웹툰 서비스는 순식간에 ‘세이 굳바이 (Say goodbye)’.

야후 카툰세상 서비스 종료와 파란 포털 사업 철수라는 구체적 사건은 발랄한 아이디어로 웹툰 데뷔, 열심히 연재해 인기작가 등극, 미디어믹스(와라! 편의점 사례처럼 단행본의 다양화로 25만 부 판매, 문구 및 편의점 상품에 캐릭터 라이센싱), 드라마 판권 or 홍보 웹툰 작업 등으로 수익 극대화의 공식을 추구하던 작가들에게 근본이 흔들리면 한방에 훅 갈 수 있다는 위기감을 심어주었다.

여기에 공교롭게도 일주일에 1,000~1,500건의 만화를 아무 댓가도 주지 않고 ‘나도 누구처럼’의 비전 하나만으로, 혹은 ‘웹툰이 아니면 어디서 만화 연재할 건데?’라는 구조적 문제로 공짜로 활용하는 나도 만화가 게시판에서 초등생 성폭행 만화가 발표되며 새로운 국면이 조성되었다.

웹툰 생태계 구조적 취약성과 강풀의 유료 전환 선언

정리하면, (1) 웹툰 생태계의 구조적 취약성(슈퍼 갑의 존재, 트래픽이 어떤 비용으로 전환되는가에 대한 정보 부재) (2) 무료로 콘텐츠를 활용하는 데뷔 게시판(나도 만화가와 같은) 구조의 문제점(콘텐츠 내용의 문제, 노동 착취의 문제) (3) 외부 심의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얼핏 보면 복잡하지만 사실 이건 하나의 실타래다.

웹툰 생태계의 구조적 취약성이 무료로 콘텐츠를 활용하는 구조를 낳았고, 자율 등급 체계의 미정착(현재는 여전히 작가들과 방심위의 논의 수준)이 초등 성폭행 만화의 대중 공개라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낳았다. 여기에 하나 더 이슈가 들어온다. 다음의 대박 작가 강풀이 연재종료 작품을 유료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상, 박인하 ‘웹툰은 격랑의 소용돌이로’ 2012.6.21 업데이트 )

만화계의 카나리아 조선일보 

타임라인을 따라가 보자. 2012년 1월 8일 조선일보 기사로 사건은 시작한다. 구식 잠수함에는 토끼를 태웠다고 한다. 토끼가 사람보다 산소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옛 광부들은 막장에 들어갈 때 카나리아를 새장에 넣어갔다. 유해한 가스에 민감했기 때문이다. 2012년 1월 8일 조선일보가 1면에 올린 ‘열혈초등학교 이 폭력 웹툰을 아십니까?’는 가히 파격적이고 파괴적인 기사였다. 당시 일본에서 활동하는 박무직 작가는 조선일보가 ‘카나리아’가 아닐까 하는 댓글을 남겼다.

조선일보 기사가 나자 기다렸다는 듯 다음날인 1월 9일 방심위에서 웹툰 심의계획을 발표한다. 나중에 들어보니, 스포츠신문과 웹툰에 대한 지속적 압박이 있었다고 한다. 만화계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대응했지만, 2012년 2월 방심위는 24개 웹툰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사전 지정하고, 포털에 공문을 보냈다.

사실 알아서 표현의 수위를 조절하던 포털 사이트 웹툰 담당자들에게 방심위의 유해매체물 지정 공문은 충격적이었다. 포털에서 소식을 전해 들은 윤태호 작가는 1997년 청소년보호법 투쟁의 학습효과가 있던 작가였다. 하루아침에 연재잡지가 폐간되는 쓰라린 기억이 있던 작가는 빠르게 만화계에 소식을 전했다. 1997년 청소년보호법에 대한 학습효과가 있었던 만화계는 어느 때보다 발 빠르게 움직였다.

방심위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웹툰 작가 결합

여기에 ‘카툰부머’를 중심으로 조직화한 웹툰 작가들이 빠르게 결합했다. 선배작가들의 경험과 후배들의 결합이 어느 때보다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 중심에는 출판만화작가이면서 웹툰을 연재했던 윤태호, 이종규 작가가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웹툰 심의가 자율심의로 넘어가게 되었고, 이후 새롭게 떠오른 이슈는 웹툰작가협회의 조직이었다. 윤태호의 발의로 시작된 웹툰 작가들의 조직적 저항은 연대를 낳았고, 4월 9일 방심위와 만화가협회의 업무협약을 통해 이후 자율적 등급부여로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디지털타임스 2012년 4월 10일 자
디지털타임스 2012년 4월 10일 자

1월에서 4월까지 업무협약까지 이어지는 시기 동안 웹툰작가들은 심의의 문제뿐만 아니라 웹툰 생태계의 문제까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직적 연대의 필요성을 고민했다. 심의문제는 만화가협회가 대표성을 갖고 방심위와 업무협약을 맺었지만, 사실 자율규제를 위해서는 당사자인 웹툰작가들과 서비스를 담당하는 포털들이 참여해야만 했었다. 웹툰의 자율심의 체계 마련을 위해서도 웹툰 작가들의 조직화가 필요했다. 비대위는 웹툰작가협회의 조직화를 웹툰작가들과 논의하기 시작했다.

웹툰작가 조직화 고민……”협회에 가입하자” (이충호)

웹툰작가에 대한 조직화를 고민하는 중에 만화가협회 이사이면서, 동시에 웹툰을 연재하고 있는 이충호 작가가 만화가협회에 가입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6월 15일 경기디지털콘텐츠진흥원에서 열린 만화분과포럼에서 별도의 협회조직과 만화가협회 가입이라는 2개의 안을 놓고 토론이 계속되었다. 2개의 대안을 놓고 고민하던 중에 만화가협회에서 만협쇄신위원회를 만들어 보다 젊은 협회로 만들어가는 개혁안에 힘이 모였다.

선배 작가들과 웹툰 작가들이 모여 협회의 쇄신을 논의했다. 방심위 비대위에서 웹툰작가협회준비위로 넘어간 조직은 자연스럽게 만협쇄신위로 계승되었다. 오랜 토론 끝에 분과 체계와 회원 가입에 대한 정관 개정안을 만들었고, 마침내 2013년 1월 29일 만협총회에서 정관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그리고 약 1년간 분과 체계 구축과 신규회원 가입에 대한 적극적 노력 끝에 무려 200명이 넘는 신입회원이 대거 만화가협회에 가입하게 되었다.

이건 놀라운 일이다. 만화가들이 적극적으로 협회의 쇄신을 고민하고, 그 일을 자기 일로 받아들이며 의논하고, 체계를 만든 것이다. 2013년 1월 18일 웹툰작가의 만화가협회 가입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다. 2013년 8월 만화가협회는 이사회의 결정을 통해 분과구성과 총회 일정을 결정한다. 그리고 2013년 11월 19일 만화가협회는 윤태호 이사와 제효원 사무국장이 방심위 고현철 차장을 만나 2012년 체결 이후 후속 조치가 미흡했던 웹툰 자율규제에 대하여 2014년 2월 협회 내 자율규제위원회를 구성하고, 문화부의 법적 근거 마련과 함께 제도를 체계화시키기로 결정한다.

젊은 작가들 함께 한 만화가협회

2014년 1월 25일로 만화가협회 제46차 정기총회의 일정이 잡히고, 강촌, 이충호, 하승남 작가가 회장 후보로 선거전에 돌입한다. 이 와중에 협회 회원 가입 등에 대한 몇몇 불만도 표출되었지만, 내부의 조직적 갈등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조직보다 훨씬 건강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마침내 총회에 돌입했다.

총회에서 각 후보의 유세가 있었다. 유세 내용은 서찬휘 씨의 블로그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유세가 끝나고 조관제 회장의 주도로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후보들의 다짐을 받고, 투표와 개표에 들어갔다. 그리고 제26대 회장으로 이충호 작가가, 부회장으로 엄재경, 윤태호, 정재홍, 조원행 작가가 선출되었고, 선출직 이사로 강풀, 김수용, 신영우, 송래현, 임덕영, 원수연, 정철 작가가, 당연직 이사(분과 이사)로 노명희, 연제원, 이동규, 이종규, 조재호, 홍용훈 작가가 선임되었다.

드디어, 만화가협회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이 함께하는 협회로 거듭났다. 거대한 흐름의 시작은 2012년 1월 8일 조선일보 기사라는 걸, 꼭 남기고 싶었다. 토끼와 카나리아를 기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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