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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뉴스가 ‘잊혀질 소리’를 찾아 나섭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가 있는 날”을 홍보하기 위해 극장에 찾은 아이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이런 소리를 했습니다.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대박을 터뜨리는, 그런 좋은 상상력과 작품을 만드는 것은 이 자리에 있는 어린이 여러분의 몫”

잊혀질 소리를 찾아서 - 박근혜 대통령

출처를 찾아서

그러면서 “앞으로도 이렇게 좋은 작품성이 있는 영화라든가 작품들, 좋은 아이디가 있으면 이런 것이 수출까지 돼서 세계인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고, 우리 문화예술인들도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가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또 “지금은 아저씨(레드로버 하회진 대표)가 큰 길을 여셨지만 이제 그 뒤를 이어서 더 좋은 영화를 만들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대박을 터뜨리는, 그런 좋은 상상력과 작품을 만드는 것은 이 자리에 있는 어린이 여러분의 몫이고 여기서 그런 인재가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며 “‘나는 나중에 어떤 멋있는 상상력을 발휘해서 세계인을 감동시킬 작품을 한 번 만들어 볼까’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앞으로 어린이 여러분도 꿈의 나래를 많이 펼 수 있기를 바라겠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朴대통령 대한극장 깜짝 등장 “가짜 아니에요?” (2014년 1월 29일) 중에서

여러분의 목소리를 찾아서

“통일은 대박이다” 발언에 이어 두 번째 대박 발언입니다. 이번엔 ‘대박 어린이’입니다. 아마도 이 “대박”이라는 표현, 주변 반응은 좋았나 봅니다. 당시 청와대 공식 트위터 계정도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첫 기자회견이자 2014년 신년 기자회견을 소개하며 이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https://twitter.com/bluehousekorea/status/420006887002624000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대박은 “어떤 일이 크게 이루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흔히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합니다. 대박이라는 명사에 터트린다는 표현을 붙여서 ‘대박 터지다’, ‘대박이 맞았다’와 같이 쓰이죠.

영어에 비슷한 표현이 뭐가 있을까요? ‘잭팟이 터졌다'(hit the jackpot) 정도가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요?

박근혜 대통령은 어린아이들 앞에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것과 대박을 터뜨리는 것 그리고 좋은 상상력을 동일 선상에 놓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좋은 상상력을 동원한 작품인지 아닌지는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세계인의 사랑? 박스오피스에서 대박을 터뜨리는 것?

국내 영화 박스오피스 순위는 대규모 자본이 투자된 상업 영화가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박스오피스에서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트린 영화’가 가장 좋은 영화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시네마테크KOFA가 11명의 영화 평론가와 함께 선정한 2013년 한국영화 리스트를 보면 오히려 상업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 더 많습니다.

시네마테크KOFA가 주목한 2013년 한국영화 (슬로우카드)

‘대박’이 장악한 사회의 풍경

대형 자본이 장악한 영화관은 관객이 가장 많이 들 것 같은 작품을 상영합니다. 대박이 날 확률이 없는 기초과학에 대한 인기는 시들합니다. 심지어 기초과학을 이야기할 때도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니 어쩌니 하면서 이야기합니다. 지식의 상아탑이어야 할 대학은 취업률에 목숨을 겁니다. 점점 많은 사람이 성공의 가치를 돈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어느 신용카드 광고에서 예쁜 여배우가 외친 “부자 되세요”가 이 시대의 좋은 덕담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지 오래입니다.

대박과 일등, 세계 최고와 승자 독식의 무한 경쟁 속에서 상상력은커녕 온전한 상식마저 유지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런 곳에서 세계 유일의 공인인증 시스템에 바탕한 관리 감독 부실은 연례행사처럼 초대형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대박’을 터뜨리고, 모두를 위한 복지 정책은 후퇴합니다. 민영화라는 이름의 경쟁체제가 공공 부문에 도입되고, 이제 대통령까지 나서서 우리의 미래인 어린이에게 대박을 터뜨려야 한다고 독려하는 사회. 과연 ‘기초’와 ‘상식’이 온전히 자리 잡은 사회의 모습인지 의문입니다.

슬로우뉴스 독자 여러분,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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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기사에서 말씀하신대로 본래 ‘대박을 터뜨리다(터트리다)’ 는 ‘잭팟을 터뜨리다’ 라는 영어식 표현을 옮기는 데에서 많이 쓰이기 시작했으며

    잭팟 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본래 사전에 같은 뜻으로 오르기전 ‘도박장’에서 주로 쓰이는 용어였다고 합니다.

    원래 대박 중박 소박으로 선박의 크기에 따라 표현을 하는 단어에서 온 것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속물적이지만 큰 성공을 하는 것’을 뜻하는 느낌이 강한데, 대통령뿐 아니라 최근 여러해전부터 ‘헐~대박ㅋ’ 식의 별 뜻 없는 감탄형 추임새로 이미 쓰여가고 있죠…….

    기사 말미에서 우려하는 그런 속물사회의 느낌을 언어가 그대로 반영하고 있고 그런 모양을 대통령이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씁쓸하죠.

  2. 전 그냥 요즘 대통령께서 하시는 언행을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그러시는 거려니 하면 속이 몹시 편하다는 민간요법(?)을 깨닫고 사용하고 있는데요.

    역시나 저도 씁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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