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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새로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시작

©Dis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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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신작 [겨울왕국](원제는 Frozen)이 인기입니다. 미국에서는 2013년 11월에 개봉했지만, 그 해 흥행 순위 6위에 올랐습니다. 한국에서도 현재 거의 2주 가까이 박스오피스 순위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겨울왕국]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요?

우선 여느 영화들처럼 제작과 관련된 소소한 이야기부터 확인하죠.

과거 디즈니 애니메이션과의 연관성부터 할까요? 영화 속에서 성문이 열릴 때 영화 [라푼젤]의 주인공인 라푼젤과 유진이 카메오로 등장합니다. 엘사 역의 이디나 멘젤(Idina Menzel)과 안나 역의 크리스틴 벨(Kristen Bell)은 [라푼젤]의 오디션을 봤다가 떨어졌다고 하죠. 크리스틴 벨은 어렸을 때 [인어공주]를 보고 그때부터 애니메이션의 목소리 연기를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것들 때문에 인기가 있는 건 아니겠죠.

겨울왕국과 눈의 여왕

[겨울왕국]은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을 모티브로 만들어졌습니다. 디즈니는 2002년부터 안데르센의 1845년 작 [눈의 여왕]을 제작하려고 했었다고 하니 개봉까지 11년이나 걸린 작품입니다.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도 안데르센 (*풀네임은 Hans Christian Andersen)에서 따왔다고 하죠. ‘한스 왕자’는 Hans, ‘크리스토프’의 Krist는 크리스티안의 Christ, ‘안나’의 An은 안데르센의 An에서 따온 거라는 거죠. (*주: Andersen의 덴마크식 발음은 ‘아나슨’입니다.) 그 외에도 동화 [눈의 여왕]의 주인공인 카이와 겔다가 [겨울왕국]에서 집사 부부로 등장합니다.

카이와 겔다

카이와 겔다. ©Disney

동화 속 주인공 이름을 단 등장인물이 겨우 단역으로 나오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겨울왕국]은 [눈의 여왕]에서 이야기를 빌려왔지만 많은 부분이 다릅니다.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여왕입니다. [겨울왕국]에서는 동화에서의 눈의 여왕과 카이가 마치 하나로 합쳐진 것 같은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바로 ‘엘사’죠. 많이 알려진 이야기지만 엘사에 대한 뒷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디즈니 속 악당들

디즈니 속 악당들. 좌측부터 우슬라, 가스통, 스카. ©Disney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대부분은 이야기의 중심에 악역이 존재합니다. [인어공주]의 ‘우슬라’, [미녀와 야수]의 ‘가스통’, [라이온 킹]의 ‘스카’ 같은 캐릭터 말이죠. 하지만 [겨울왕국]의 엘사는 이런 디즈니 악역의 전형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심지어 악역도 아니죠. 두 명의 공동 감독은 엘사의 메인 테마곡 ‘렛 잇 고(Let it Go)’를 듣고 악역이 부르기에는 곡이 표현하는 캐릭터의 역량과 수용 방식이 매우 긍정적이었다고 하죠. 그래서, 결국 엘사는 주인공 중 한 명이 됐으며 [겨울왕국]의 이야기 구조까지 바뀌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렛 잇 고’를 작가, 작곡한 사람은 크리스틴 앤더슨 로페즈와 로버트 로페즈 부부입니다. 둘이 영화를 위해 쓴 첫 번째 곡이라죠. 헐리우드 리포터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브로드웨이 스타일보다는 좀 더 요즘 노래처럼 (팝송처럼) 만들려고 했다고 합니다.

“만약 누군가 평생 완벽해지려고 노력했고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했는데 그만 어떤 이상한 실수를 해서 모든 사람이 그에게 등을 돌린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리고 ‘내가 모든 걸 놓아버린다면, 나는 나 자신을 빛나게 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어.’ 같은 편안한 순간이 찾아온다면?

언뜻 들으면 레아 미셀이 [글리](Glee)의 노래 한 곡을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의 켈리 클락슨이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팝락(pop rock) 장르죠. 물론 디즈니는 꾸준히 브로드웨이 스타일 이외에도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만 엘튼 존, 필 콜린스, 톰 존스, 패티 라벨, 조스 스톤, 롭 토마스 등 많은 가수를 기용해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2000년대 초반의 시도들은 그리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성 역할의 전형을 깨는 다양한 장치들

이 외에도 [겨울왕국]은 기존의 디즈니의 공주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특이한 점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역시 “방금 만난 남자와는 결혼할 수 없어”라는 짤방으로 돌아다니는 메시지입니다. (물론 이것은 [마법에 걸린 사랑]이라는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합성 영화에 등장한 바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정통 디즈니 공주 애니메이션에서는 흔치 않죠.) 이는 [라푼젤]에서 보여준 능동적인 여성상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죠.

방금 만난 남자와는 결혼할 수 없어

“방금 만난 남자와는 결혼할 수 없어”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기존 디즈니 공주들은 어떻게 되나요? :-p

안나를 도와 엘사를 찾아 나서는 크리스토프도 기존 남녀 구도에서 많이 벗어나 있습니다. 공주(안나)를 보고 한눈에 반하기는 커녕 ‘만난 첫날 바로 약혼을 했다고요?’ 라고 되묻는가 하면 공주와 “함께” 모험을 떠납니다. 공주를 “위해”, “혈혈단신”이 아니라 공주와 “함께” 말이죠. 심지어 크리스토프는 이야기 속에서 ‘결정적 사랑’의 역할도 아닙니다. 자신의 얼음 장사를 위해 따로 또 같이 행동하는 인물이죠.

겨울왕국에 등장하는 동성 가족

[겨울왕국]에 등장하는 동성 가족

PolicyMic에서는 이 영화에 동성 가족이 나온다는 사실에도 주목합니다. 크리스토프가 장비를 사러 들른 잡화점에서 주인장인 오켄은 크리스토프에게 자신의 가족을 소개하는데 유리창 너머로 성인 남자 한 명과 아이들 넷이 인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켄도 성인 남자인데 사우나 안에 있는 성인도 남자라는 거죠. 만약 이 영화가 기존의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 이런 디테일은 오히려 이상했겠지만 [겨울왕국] 속에서는 이해가 됩니다.

영화에서 여성은 어디로 사라졌나 – 벡델 테스트

여성과 관련된 이야기는 또 있습니다. 공동 감독 중 한 명인 제니퍼 리는 디즈니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초로 여성 감독입니다. (크리스 벅과 공동 감독) 그리고 그는 1991년 [미녀와 야수] 이래로 처음 혼자서 각본을 썼습니다. 각본에는 엘사와 안나가 어딘지 모르게 경쟁적이면서도 결국은 서로 사랑하고 보호하는 관계임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쯤 되면 “벡델 테스트”(Bechdel test)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앨리슨 벡델(Alison Bechdel)은 미국의 유명한 만화가입니다. 그는 1987년부터 2008년까지 “다이크 투 와치 아웃 포”(Dykes to Watch Out For)라는 만화를 연재했습니다. 그가 1985년에 그린 “법칙”(The Rule)이라는 편에서 한 여성 캐릭터는 아래의 세 조건을 만족하는 영화만 본다고 말합니다.

Dykes to Watch Out For의 한 장면

참고로 벡델은 이 아이디어를 자신의 친구인 리즈 월리스(Liz Wallace)에게서 차용했다면서 리즈 역시 아마도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에서 차용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 Bechdel test

벡델 테스트

  • 두 명 이상의 여성이 등장해야 하고 (It has to have at least two women in it)
  • 그 두 명이 서로 대화를 해야 하고 (who talk to each other)
  • 그리고 그 대화는 남자에 대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about something besides a man)

이 테스트는 쉽게 말해 여성이 단순히 구색을 갖추거나 성적 편견을 조장하는 역할 이상의 역할을 가지고 영화에 등장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과거 공주가 나오는 상당수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공주들은 대부분 왕자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공주를 포함한 여성 캐릭터는 다른 여성 캐릭터와 이야기하기보다는 다른 주요 남성 캐릭터와 의사소통을 합니다. 여성 캐릭터의 비율 자체가 적기 때문에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 심지어 여성이 주체적인 캐릭터로 그려지는 [알라딘], [뮬란], [포카혼타스], [라푼젤] 등과 같은 작품에서도 여성 주인공 캐릭터는 다른 여성과 대화를 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건 꼭 디즈니 애니메이션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2013년 한국영화 박스오피스를 보세요. 살펴보세요. 여기에서 다수의 여성이 등장해 여성끼리 서로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는 영화가 있나요?

한국 영화 2013년 박스오피스 순위 (슬로우카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시작일까

많은 영화에서 여성은 주인공이라 하더라도 단지 성(gender)만 여성으로 표현됐을 뿐이지 외롭게 혼자 악의 무리와 싸우거나 전형적인 남성의 성 역할을 대신해 몇몇 캐릭터의 조언을 받아 무언가를 성취해내곤 합니다. 하지만 [겨울왕국]의 두 주인공 엘사와 안나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깨닫습니다.

세상은 점점 바뀌고 있고 여성의 사회적인 시선에도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많이 보는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부진을 면치 못하던 디즈니는 [공주와 개구리], [라푼젤]을 통해 전통적인 공주 애니메이션에서도 새로운 공주의 전형을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보여준 이야기는 변화된 여성상의 업그레이드도 아니고 기존 동화 속 이야기의 뒤틀기 수준도 아닙니다. [겨울왕국]에서는 아예 새로운 차원의 이야기들이 보입니다.

이 새로움은 여성이 감독과 각본을 맡아서 생긴 것일까요? 아니면 이야기를 완전히 바꿔놓을 만큼 새로운 에너지를 발견한 작사, 작곡가의 힘 때문일까요? 아니면 디즈니에서 무언가 변화가 시작된 걸까요? 다음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헐리우드 영화 안팎의 여성

뉴욕필름아카데미(New York Film Academy)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00대 영화를 조사한 결과로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은 다음과 같이 묘사됐다고 합니다.

  • 대사가 있는 캐릭터 중 여성은 30.8%뿐.
  • 여성 출연자의 28.8%가 성적으로 두드러진 옷을 입고 출연. (남성은 7.0%)
  • 여성 연기자의 26.5%가 부분 나체로 출연. (남성은 9.4%)
  • 남녀 캐릭터가 동수인 영화는 전체의 10.7%.
  • 남녀 배우 비율은 남성:여성이 2.25:1.
  • 2007년부터 2012년 사이 일부 노출과 함께 묘사된 10대 여성의 32.5% 증가.
  • 대사가 있는 여성 캐릭터의 1/3이 성적으로 두드러진 옷을 입거나 일부 노출.
  • 여성이 감독을 맡으면 여성 캐릭터가 10.6% 증가.
  • 여성 작가가 붙으면 8.7% 증가.
  • (하지만) 미국에서 여성은 영화표를 구입하는 사람의 절반

영화 속 캐릭터 묘사가 아니라 실제 영화 산업으로 가면 더 큰 차별이 존재합니다.

  •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은 남성의 1/5.
  • 감독 비율은 여성:남성이 9:91
  • 작가 비율은 여성:남성이 15:85
  • 투자 제작자 비율은 여성:남성이 17:83
  • 제작자 비율은 여성:남성이 25:75
  • 편집자 비율은 여성:남성이 20:80
  • 촬영감독 비율은 여성:남성이 2:98
  • 포브스 2013년 기준 가장 비싼 남자배우 10명이 받는 돈은 4억 6천5백만 달러, 여성배우 10명이 받는 돈은 1억 8천1백만 달러
  • 아카데미상 역사상 4명의 여성 감독만 감독상 후보에 올랐고 그 중에서 캐서린 비글로우만 수상.
  • 85회 아카데미상의 수상 후보 중 남자는 140명, 여자는 35명
  • 아카데미상 역사상 여성 프로듀서는 8명만 수상했고 그마저도 다른 남성 공동 프로듀서와 공동수상.
  • 73년간 아카데미상 각본상을 수상한 여성은 오직 8명.
  • 85년간 아카데미상 각색상을 수상한 여성도 오직 8명.
  • 오스카상을 결정하는 위원회의 77%가 남자
  • 2000년부터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배우의 나이는 평균 36세 (남자는 44세)

이 내용은 업월디(Upworthy)의 1/3 Of Women With Speaking Roles In Movies Are More Likely To Be … Naked? 인포그래픽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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