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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자유 투쟁 (레베카 매키넌,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3)
인터넷 자유 투쟁 (레베카 매키넌,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3)

“디지털로 무장한 시민들이 어쩌면 중요한 승리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승리는 필연적으로 영구적일 수 없다. 네트워크 사회에서 권력을 움켜쥔 자는 상업적, 정치적 네트워크 안에서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막기 위해 사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 마뉴엘 카스텔. (23쪽)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인터넷 여론 조작과 감시

국가정보원과 군, 국가기관이 개입해 인터넷과 SNS에서 여론 조작을 시도했다는 것은 이제 팩트다. 인터넷 강국 한국의 2012년 대선에서 벌어진 사건은 1년이 지나도록 실체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책임자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광장에서 시작된 직접 민주주의의 소통이 아고라 같은 온라인 광장에서 재현될 때, 사람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했다. SNS 시대, 이 같은 기대는 더 커졌지만, 역풍은 잔인했다.

결코 위안이 되지 않겠지만, 이 같은 좌절이 한국에서만 유난하고 특별한 사례는 아니란 얘기를 책에서 얻었다. 쉽게 화내고 지칠 일이 아니라, 글로벌하게 진행되는 이 현상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고민을 키우는 얘기다. 베이징과 도쿄에서 CNN 지사장을 지내고 인터넷 정책 연구를 하는 저자는 인터넷의 자유가 위협받는 현장들을 소개한다.

실시간 글로벌 소통이 가능한 시대라지만, 소통을 막기 위한 노력도 범지구적이다. “디지털 기술은 체계적으로 관리되어 선의를 극대화하고 불의를 최소화하는 데 쓰여야 한다”고 저자의 믿음을 공유한다면, 실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반정부 시위의 터전 vs 정부의 탄압 기반

저자가 “아랍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검열 체계를 발전시켰다”고 평가하는 튀니지. 친정부 해커들이 반체제 사람들 웹사이트를 공격했다. 통신사들은 망을 통해 흐르는 모든 정보를 추적하는데 ‘심층패킷검사’(DPI)라는 기술을 사용했다. 맞다. 국내 통신사가 모바일인터넷전화(mVoIP) 제한을 위해 사용하는 기술이기도 하고, 국가정보원이 망에 빨대를 꽂아 감청할 때 쓰이는 바로 그 기술이다.

튀니지 정부는 정보를 훔치거나 가로채는데 머물지 않고 비밀번호를 도용해 활동가의 페이스북 계정을 차지하기도 했다. 튀니지 벤 알리 정권이 몰락하기까지 몇 달 동안, 지메일, 야후, 트위터, 페이스북에 접속했던 모든 사람의 사용자 이름과 비밀번호를 빼내기 위한 특별 프로그램이 모든 튀니지 인터넷 서비스에 설치됐다고 한다.

2011년 3월 이란에서는 500만 개 이상 웹사이트가 차단됐다. 구속된 언론인과 블로거 숫자는 이란과 중국이 엎치락뒤치락 1위. 이란의 통신사에게 시민 추적 기술을 팔았다는 것이 문제가 되면서 노키아지멘스 네트워크는 2009년 유럽연합 청문회에 불려 나갔다. 그들은 ‘적법한 도청’ 목적으로 범죄자 추적에 사용된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이란의 활동가들은 시위나 회의에 위치추적기나 다름 없는 휴대전화를 가져가지 않는단다. 더 이상 카메라폰으로 집회 규모나 시민 폭행 경찰을 담을 수 없다.

문자메시지로 선거를 감시하는 활동가들이 등장하자 2009년 6월 이란 대통령 선거 전 9시간 넘게 이동전화 메시지 서비스가 중단됐단다.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사회, 정치불만이 고조하자 느려진 인터넷 속도와 모바일 문자메시지, 3G 서비스의 일시적 차단은 점점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2011년 3~7월 반정부 시위로 1,400명이 살해됐고, 15,000명이 구금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리아. 그 직전에 정부는 기이하게도 페북, 유튜브 등 웹사이트 차단을 풀었단다. 대체 왜? 정부는 해킹으로 활동가들 계정과 네트워크 연락처를 입수했다고 한다. 덫을 놓고 기다리면 모조리 투명하게 걸리는 게 인터넷이다.

무시무시한 사례를 보다 보니 중국에서 글 하나에 50위안 받는 알바들, ‘50위안 단체’가 곳곳에 애국적이고 친정부적인 글을 올리고, 과도한 정치적 비판을 보고했다는 수준의 사례는 그저 우리와 닮은꼴이라는 것에서만 허탈하다.

미국에도 인터넷 자유는 없다?

이런 상황이 제3세계 국가에서만 일어난다고 믿는 순진한 이들은 이제 줄어들었다. 스노든의 폭로 덕분이다. 스노든도 처음은 아니었다. 이메일과 전화 트래픽을 들여다보는 국가안보국 작업을 도왔다고 고백한 AT&T 직원도 있었다. 미 법무부 검사장 토마스 탐은 어떤 범죄 혐의도 없는 미국인의 이메일이나 전화 내역을 분석 사실을 시인했다. 법원의 어떠한 명령도 받지 않은 감시는 물론 미국에서도 불법이다. 감청 합법화 주장조차 최근 한국적 특수상황이 아니다. 2011년 미 법무부 차관은 범죄자 검거를 위해 이동통신 회사들이 고객 이동 데이터를 저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99쪽)

스노든은 NSA가 거대 인터넷 기업들을 통해 전 세계를 감시하고 있음을 폭로했다. (이미지: Free Press Pics, CC BY NC SA)
스노든은 NSA가 거대 인터넷 기업들을 통해 전 세계를 감시하고 있음을 폭로했다. (이미지: Free Press Pics, CC BY NC SA)

인터넷이 위험한 것은 망에 태우는 정보를 가로챌 수 있는 기술적 구조 탓이다. 망을 운영하는 통신사들이 이를 요구하는 국가의 압박에 저항했다는 기록은 책에 없다. 나의 상식으로도 아직 접해 보지 못했다.

국내에서도 “수사기관이 요청할 수 있다”고 전기통신사업법에 근거해 수사기관에 제공해온 개인정보에 대해 영장 없이 제공하지 말라는 고법 판결 이후, 포털은 이를 중단했지만, 통신사는 여전히 제공 중이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국가의 허가를 받아 사업하는 통신사가 국가 말을 안 듣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반면 인터넷 쪽은 진통을 겪는 과정인 것으로 보인다.

법이 문제라면, 법대로 해봐도… 야후 사례

구글은 결국 2010년 중국에서 철수했지만, 한동안 중국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이트는 검색에 포함되지 않도록 검색 알고리즘을 수정하기도 했다. 인도는 야후,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등 해외 인터넷 기업들에도 “공공질서, 품위, 도덕성”을 유지하도록 한다. 기업들은 알아서 선동적 내용을 지우지 않을 경우, 최고 7년형을 받을 수 있다.

야후가 중국에서 겪은 일은 남 일 같지 않다. 야후는 중국 법에 따라 중국 수사기관이 요청한 한 남자의 계정 정보, 교신 IP 주소, 이메일 내용 등을 넘겼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중국의 천안문 사태 기념일 관련 보도지침을 글로벌 인권단체에 이메일로 보냈던 언론인 시타오는 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10년형이 확정됐다.

국가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은 시타오. 시타오의 석방을 요구하는 엠네스티 피켓.
국가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은 시타오. 시타오의 석방을 요구하는 엠네스티 피켓.

야후는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만약 반세기 전 비밀경찰이 안네 프랑크가 어디 있냐고 물었을 때, 그 나라 법에 순응해 정보를 넘기는 것이 올바른 대답이냐?”는 질타를 들었다고 한다. 야후의 행위는 국내 어느 포털이든, 아니 미국 내에서도 구글이나 야후 등 거의 모든 인터넷서비스 사업자들이 영장 등 절차에 따라 진행하는 일이다. 그런데 안네 프랑크? 이건 어느 선에서 판단해야 하는 것일까? 대체 세상 어느 기업이 법대로 하는 원칙 대신, 법을 어기면서 투쟁의 전선에 나설까? 인터넷에서 기업의 판단 권한을 키우는 건 자칫 또 다른 빅브라더를 만들 수도 있을 텐데.

야후의 이후 대응은 흥미롭다. 이 사태를 계기로 조지타운대에 인터넷과 인권 연구를 돕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베트남 정부가 블로거들을 체포한 사례를 확인한 이후, 현지 직원들이 이용자를 검열하는 정부의 끄나풀이 될 가능성을 우려, 아예 싱가포르에서 베트남어 서비스를 출시했단다.

트위터는 조금 더 적극적이다. 2011년 미 연방 검사들이 위키리크스에 연루된 이용자 개인 정보를 요구하는 소환장을 보내자, 소송 끝에 어떤 정보가 요구됐는지 당사자에게 알렸다. 구글과 페이스북도 유사한 소환장을 받은 것으로 의심됐지만, 이들은 이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인터넷에 대한 전방위적인 위협

인터넷 기본권이던 익명의 자유가 줄어드는 추세도 문제다. 페이스북이나 구글 플러스는 실명 정책을 쓴다. 구글의 경우 SNS 서비스 버즈와 지메일 연락처를 연동했다가 심각한 프라이버시 위협 사례들이 이어지면서 정책을 변경하기도 했다. 반체제 인사, 인권 운동가, 기타 위험에 노출된 개인을 위한 온라인 공간은 사라지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인터넷의 자유는 지적재산권 보호와 보안을 명분으로도 위협받는다.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한 검열과 감시는 2009년 한 해에만 1,750만 달러를 로비자금으로 사용한 미국 음반업계의 활약으로 더욱 심해졌다. “보안은 국민들로부터 자유를 강탈하려는 정부의 가장 강력한 정당성이 되기도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최근 사이버테러 방지를 위해 수사기관이 온갖 정보를 다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는 법안들이 줄줄이 나오는 현실 그 자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반전(?)을 마련한 것도 아이러니다. 미 국무부는 ‘인터넷 자유’를 위한 예산을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사용한다. 어딘지 북 치고 장구 치는, 병 주고 약 주는 느낌? 정부 검열 자체가 북미산 소프트웨어로 이뤄지는 가운데 예프게니 모조로프 같은 이는 이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모조로프는 “인터넷이 어떠한 방식으로 정치와 연동하고 어떠한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지는 각국마다 천차만별이다. 인터넷이 민주주의에 힘을 더해주는 것만큼이나 독재자, 테러리스트에게도 힘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참고: ‘똑똑한 독재자들은 인터넷을 억누르지 않는다’, 월스트릿저널, 2011년 2월 19일, 번역본)  이 시점에서 어쩐지 뜨끔하지 않은가?

저자는 이런 문제점을 포함해 이집트가 블로거를 체포하고 고문한 기록, 중국이 기업에 검열을 강요한 일, 한국 인터넷 실명제 등을 국제회의에서 발표하려 했단다. 그러나 UN 사무차장이며 인터넷거버넌스포럼 책임자인 니틴 데사이는 저자를 개인적으로 불러 UN 회원국 이름들 중 그 어느 것 하나도 언급하지 말라고 요구했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국제 정치란! 그렇다면 대체 이 문제를 그럼 어떻게 접근해서 풀어나가란 말인가.

아무도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

“국경을 초월한 디지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제연합과 유사한 초국가적 단체를 설립하는 일은 현실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좀 더 현실적이고 민주적 접근 방법은 네티즌들이 직접 현재와 공존이 가능한 대안적 공동체를 설립, 강화, 운영하는 방법이다. 효율적 혁신적 합리적 방법으로 모든 종류의 디지털 권력을 바로 세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새로운 권력에 다양한 이념적, 종교적 색채가 부여되는 일을 방지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정부, 기업, 운동가들이 이끄는 해킹 단체들 중 누구에 의해 운영되든지 간에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우선 더 많은 대중의 관심과 참여를 호소. 일반 대중들 스스로 더 이상 수동적 ‘이용자’, ‘소비자’로만 남아있을 것이 아니라, ‘네티즌’ 즉 인터넷 세상의 시민으로서 행동할 수 있어야만 한다.”

어쩐지 슬쩍 비장해진다. 하지만 현재 인터넷이 처해 있는 상황을 글로벌하게 분석하다 보면, 어떻게든 움직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최근 인터넷 세계의 규칙을 다양한 참여자, 즉 정부 뿐 아니라 전문가, 시민단체, 이용자,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멀티스테이크홀더리즘’(multistakeholderism)을 통해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이 확산하고 있다.

작년 발리에 이어 올해 4월 브라질에서 인터넷거버넌스 문제를 논의하는 테이블이 만들어진다. 솔직히, 작년만 해도 인터넷 정책을 다루는 입장임에도 조금 먼 이야기, 형이상학적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았으니 일반 이용자들이 이를 알 리가 없다. 이런 생각이 달라진 배경에는 아무래도 이 책이 기여했다. 그리고 최근 규제권한을 이유로 미국 오픈 인터넷 규칙(Open Internet Rules) 효력 문제가 발생하면서 생각을 가다듬게 된다.

인터넷 자유, 인류가 21세기에 더 넓고 빠르게 나눌 연대의 플랫폼은 지속가능해야 한다. 왜곡되고 조작되고 감시받는 세상에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어쨌든 인터넷이 세상에 있다.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바를 찾아내고, 공론장을 만들고, 지켜내야 한다. 네트워크 권리(Network Rights), 인터넷 자유를 지켜내는 것이 시민의 책무다. 아무도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

인터넷 감시와 검열을 풍자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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