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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 일상,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한 이야기들이 지금도 우리의 시공간 속을 흘러갑니다. 그 순간들을 붙잡아 짧게 기록합니다. ‘어머니의 언어’로 함께 쓰는 특별한 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box]

엄마의 말

 

“사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있던 사람이 사라지면 대번에 표가 난다는 뜻이다.

단어는 처지가 좀 다른 거 같다. 한 단어가 언어에 들어올 때는 사람들이 ‘신조어’라는 이름을 붙여 열심히 기록하지만, 나갈 때는 언제나 거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단어의 퇴장은 대개 어둡고 외롭다. 긴 시간 같이했던 수많은 단어 친구 중에 같이 사라지길 자청하는 벗도 없다.

그래서 가끔은 남들이 쓰지 않는 단어를 쓰는 일이 구식 습관이 아니라 우정의 표징으로 느껴진다. 살아있는 언어와 죽은 언어의 경계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쓸쓸한 친구와 말벗이 되어주는 일이랄까.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알 수 없는 단어들’에 좀 더 주목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melinnis, CC BY NC ND
melinnis, CC BY NC 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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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말

 

“내 치아 사진을 보면서 뭐라 뭐라 하시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요즘 이를 치료하고 계신 어머니가 오늘 치과에 다녀와서 하신 말씀이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대화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한 것 같다.

이야기를 들으며 며칠 전 황승식 선생님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의사들이 엄청난 양의 신지식을 배우지만 그것을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 지적 수준의) 환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괄호 안의 표현은 나의 이해를 반영하여 넣은 것이다.)

전문가의 사회적 책무는 ‘전문가로서의 문제 해결’과 함께 ‘전문지식을 통한 소통’에 있다. 즉, 의사는 환자를 돌보고 병을 고침과 동시에 의학적 지식을 가지고 환자와 소통하는 사람이다. 소통에 대한 고려 없이 ‘나는 전문 지식을 가진 의사, 당신은 지식이 없는 환자’라는 프레임을 고집하는 것은 소통을 방기하는 것이다. 소통을 방기하는 것은, 전문가와 문제 해결 의뢰자의 만남 이전에 존재하는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을 왜곡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의학이나 법학 등 특수 분야는 물론, 전문적인 용어와 문법이 자주 사용되는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의 사회적 책임”에 더욱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전문가는 권위를 내세워 사회의 상부를 점하려 할 것이 아니라, 전문지식을 매개로 한 소통을 통해 실질적 평등을 추구해야 한다.

Calamity Meg, CC BY NC ND
Calamity Meg, CC BY NC 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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