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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는 어떻게 교육되는가: 창조 없는 SW정책

“어휴, 하여간 그 캔버스의 압박! 안 그래도 큰데 마감 전날에 보면 두 배는 더 커요. 언제 다 채워!!”

“아 이거 남의 일이 아닌데 ㅋㅋㅋㅋ 제출 한 시간 남았는데 커널 패닉 뜨고 그러면 ㅋㅋㅋㅋㅋ”

“하여간 미술 한다고 하면 다들 우아하고 세련된 이미지 상상하는데 그거 다 착각이에요. 단체로 눈이 퀭해 가지고 캔버스 앞에 붙어 있는 걸 못봐서 그래.”

“아니, P양 엄청 여리여리하던데? 밤새고 그래도 돼요?”

제법 오래된 일입니다. 어쩌다 미술 하시는 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게 있다면, 의외로 대화 내용이 낯이 익다는 것이었습니다. 낯익음의 시작은 월요일 오전 업무 회의였습니다: “게임 기획자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아이디어를 내는 일이라는 거지.” “맞아요, 사실 개발자하고 디자이너들한테 업무 요청하고 조율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인데.” “서로 완전히 다른 인종한테 업무 요청서 쓰다 보면 화성인과 금성인에게 번갈아 편지 보내는 느낌마저 들죠.” “하여간 그래서 팀 전체 회의가 제일 힘들어. 외계인들 사이에 낀 것 같애.” “맞아. 성별까지 다르면 의사소통류 최종보스 확정.”

Artist in his studio

렘브란트, “예술가의 작업실(Artist in his studio)” 캔버스에 유화, 1629년. 보스턴 미술관 소장.

낯익음의 끝은, 바로 전날 친한 형과 나눈 대화였습니다: “형 P양이랑 의사소통은 되는 거에요?” “안될 건 또 뭐냐.” “의사소통류 최종보스라던데?” “솔직히 얘기하자면 니가 제일 이상해요. 그건 P양도 인정 ㅇㅇ” “제가 뭘요?” “너 코드도 짜고 글도 쓰잖아.” “아니, 그게 이상할 게 뭐가 있어요.” “전혀 다른 일이잖아?”

평소 이런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느낀 게 하나 있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이 일들을 서로 다른 것으로 인식하고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그리고 소프트웨어 개발 – 이들은 서로 너무나도 달라서, 이걸 하는 사람들은 흡사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것처럼 여겨지는 게 보통인 것 같았습니다. 글 쓰는 개발자처럼,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게 여기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로 말이죠.

글쓰기, 그림 그리기, 그리고 소프트웨어 개발

(둘 다 해본 내 경험에 의하면) 소프트웨어 개발(hacking)과 그림에는 공통점이 있다. 아니, 개발자와 화가는 내가 경험한 사람들 중 가장 닮은 사람들이다.

폴 그레이엄 (Lisp 해커 겸 Y combinator 창업자)

그런데, 사실 이 일들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흔히 ‘창조’라고 불리는 일이라는 겁니다. 대체 무엇이 특별하길래, 이들에게만 ‘창조’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붙일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일들은 경쟁력에서 개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일들입니다.

어떤 경쟁력은 학문적 발전에서 나옵니다. 예를 들어서 50년 전의 비행기와 지금의 비행기는 경쟁이 되지 않습니다. 항공기를 만들기 위한 공학적 지식이 크게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모든 결과물이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항공기 개발에 관련된 학술 논문들은 거의 공개되어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비행기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왜 그럴까요? 각종 설비와 재료를 적절히 조달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 정형화된 수식으로 표현하기 힘든 노하우,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쳐 단련되어 그 노하우를 문제없이 구현해내는 조직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국 비행기를 가진 나라들은 이렇게 오랫동안 비행기를 만들며 제반 환경이 정비되어 온 나라들입니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일에서는 일을 수행하는 개인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똑같은 캔버스와 물감을 썼다 해도 무명 화가의 결과물과 렘브란트 같은 거물의 결과물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똑같은 소재와 툴로 글을 썼다고 해도, 저 같은 듣보잡이 쓴 글과 IT계의 유명인사가 쓴 글은 결과물에 있어 차이가 납니다. 이렇게 어떤 일들은, 수행하는 사람 그 자체에서 경쟁력이 발생합니다.

Self Portrait of 34

렘브란트, “자화상(34세)” 캔버스에 유화, 1640년. 영국 내셔널 갤러리 소장.
렘브란트의 그림들은 대부분 미술관들이 소장하고 있는데, 어쩌다 한 번 경매에 나오기라도 하면 입찰 최고가 기록을 바로 갈아치운다. 현재까지의 최고 기록은 2009년 12월 세워진 약 382억 원으로, 무려 40년간 비공개 되어 있던 작품이라고.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결과물에 있어서 경쟁력의 원천은 상당히 다양합니다. 학문적 발전에 있을 수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노하우 내지 조직력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일에서는, 사람 그 자체의 비중이 다른 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창조’라 불리는 일들은 이렇게 개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일들을 가리킵니다. 컴공과 신입생과 구글 엔지니어는 비슷한 컴퓨터에서 동일한 프로그래밍 언어로 작업을 하지만, 이들이 생산하는 부가가치는 차마 비교하기 민망한 수준으로 차이가 납니다. 사람의 차이가 결과물을 결정지어버리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개발 역시 ‘창조’에 들어갑니다.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와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창조’는 어떻게 배우는 것일까

“시나리오를 배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영화를 틀어 놓고 시나리오를 베껴 쓰는 것이다. 같은 영화를, 그것도 수십 번 말이다… 나는 그 과정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심산 (소설가 / 시나리오 작가)

“드라마 [모래시계] 대본, 최인호의 시나리오 전집 등을 모두 베껴 썼다… 좀이 쑤시고 어딘가 아프다. 그래도 꾹 참고 필사를 계속했다.”

만화가 윤태호 (『미생』 작가)

‘창조’라 불리는 일들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습니다. 뛰어난 결과물이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생각 (혹은 창의력)”에 의한 것으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다른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 이 영역 역시 기존 결과물의 연장선상에서 발전합니다. 기존 창조물을 연구하고, 거기에 각종 시행착오와 개선을 더해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창조물이 나온다는 얘깁니다. 이걸 해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존 창조물을 모방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걸작 창조물 역시 모방의 결과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그걸 잘 모를 뿐이죠.

A Man with a Quilted Sleeve

티치아노, “누비 소매 옷을 입은 남자의 초상(A Man with a Quilted Sleeve)” 캔버스에 유화, 1509년. 영국 내셔널 갤러리 소장.
이 그림은 한때 렘브란트의 절친한 친구가 소유하고 있었다. 렘브란트는 그때 이 그림을 모사해서 그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위 자화상에서 렘브란트가 입고 있는 옷 자체가 당대의 옷이 아니라 한 세기 전, 티치아노의 시대에 입던 옷이다. 모델의 포즈와 구도, 심지어 접힌 소매의 질감에서도 두 그림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Portrait of Baldassare Castiglione

라파엘로,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의 초상(Portrait of Baldassare Castiglione)” 캔버스에 유화, 1514~1515년. 루브르 소장.
수백 년 동안 미술 교육에서 스승이나 거장의 작품을 모사하는 것은 필수적인 경험으로 인식되었다. 시각 매체가 발달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이걸 하는 방법은 사실상 유학뿐이었고 따라서 렘브란트의 두 스승을 포함한 웬만한 화가들은 다들 이탈리아 유학 경험이 있었다. 렘브란트는 유학 경험이 없었지만, 부지런히 거장들의 작품을 구입하고 모사하면서 실력을 닦아 나갔다. 렘브란트가 이 그림을 모사한 것은 아직도 남아 있는데, 이 경험 역시 위 자화상에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된다.

모든 창조물들이 이런 과정을 거칩니다. 거물들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소년은 글짓기 대회 학교 대표를 도맡아 하면서 글쓰기를 연마합니다. 읽었던 글들의 표현이나 문체를 흉내 내면서 말이죠. 대부분의 사람들 눈에는 그게 안 보이기 때문에, 그냥 저 친구는 태어날 때부터 글을 잘 쓰는구나 착각하기 쉽습니다. 컴퓨터과학을 공부하게 된 소년은 갈수록 프로그램 소스코드를 붙들고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겠지만, 실상 그가 하고 있는 건 어렸을 때 원고지를 붙잡고 하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인간의 언어를 기계의 언어로 바꿔 잡았을 뿐이죠.

결론적으로, 창조는 대상에 애정과 열정을 가진 사람이 기존의 창조물들을 연구하고, 모방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서 교육됩니다. 미대생이 캔버스 앞에서 골치를 썩이는 거나 공대생이 리눅스 소스코드를 붙들고 골머리를 앓는 것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행위란 얘깁니다. 남의 일이 아니라고요.

창조에 역행하는 창조 경제

뛰어난 개발자 역시 훌륭한 소스코드를 보면서 프로그래밍을 배운다. 오픈소스 운동의 잘 알려지지 않은 혜택 중 하나는 그것이 개발을 배우는 걸 더 쉽게 했다는 점이다… 내 또래 많은 해커들 역시 John Lions의 책에 실린 유닉스 소스코드를 읽으면서 배웠다.

폴 그레이엄 (Lisp 해커 겸 Y combinator 창업자)

정부의 소프트웨어(SW) 정책이 한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창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명백한 사실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거든요. 정부는 예나 지금이나 SW 산업의 중요성을 외치면서 인력 양성을 부르짖습니다. 창조 경제를 기치로 내건 새 정부 출범 이후에만도 개발자 22만 대군 양성이라느니, 두 달짜리 교육으로 빅데이터 전문가를 양성한다느니 하는 정책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죠. 이런 뉴스를 접하다 보면 다른 업종 사람들 입장에서는 “정부는 SW 산업만 우대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 업계의 반응은 정반대입니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를 마!” 인력이 심각하게 모자란다는 산업에 인력을 공급해 주겠다는데, 도대체 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걸까요? 그 이유는 정부의 정책이 오히려 인력 풀을 마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Self-Portrait with Two Circles

렘브란트, “두 개의 원이 있는 자화상(Self-Portrait with Two Circles)” 캔버스에 유화, 1665~9년. 켄우드 하우스 소장.
렘브란트는 50여 점의 유화를 포함해 100점 가까운 자화상을 남겼다. 이 그림들에서 렘브란트는 르네상스의 대가들을 모방하는 한편 다양한 묘사들을 시도했는데, 이 그림 역시 위 자화상과 마찬가지로 렘브란트 특유의 광원 효과가 나타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렘브란트는 이렇게 빛을 다루는 방법에 대한 수많은 시도 끝에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이 그림과 1550년경에 그려진 티치아노의 미완성 자화상과의 연관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창조는 대상에 애정을 가진 사람이 기존의 것을 연구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교육되고 탄생합니다. 회사 일을 마친 개발자가 퇴근 후 집에서 오픈소스 코드를 살펴보거나,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하면서 말입니다. 실제로 Linux, MySQL에서 Hadoop에 이르기까지, 지금은 거대한 산업을 일군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 세상의 빛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앞장서서 초급 인력을 대량으로 시장에 풀어버리면, 이런 길은 막힙니다. 대량의 저가 인력 공급으로 전문 인력마저 도매금 취급을 받는 마당에 저녁이 있는 삶가능할 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상황 하에서 ‘고수’들은 제대로 몸값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 해외로 탈출을 시도합니다. 결과적으로 신규 고급 인력의 양성은 줄고 기존 고급 인력은 누출됩니다. 사람 비중이 높은 산업에서 사람 씨가 마르는 한심한 사태가 벌어지는 겁니다. 인력 공급이 뭐가 어떻다고요? 목마른 사람 입에 소금물을 강제로 털어 넣겠다는데 기분 좋을 사람은 없지요.

“정부가 나서서 저렇게 많이 양성하면 누군가는 창의력을 발휘해서 큰 성공을 거두지 않겠느냐”고 물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봤듯이, 창조라는 건 그렇게 교육되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지금까지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 정부의 SW 정책은 “나랏돈을 들여서라도 국내 산업 기반을 파괴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요약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자폭천재 박수를 드려요

Night Watch

렘브란트의 대표작, “야경”을 보러 몰려든 사람들.
찬연하게 쏟아지는 빛의 아름다움은 렘브란트의 대명사처럼 여겨지지만, 이 또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렘브란트는 당시 위트레흐트에 거주했던 카라바조의 추종자들의 영향으로 이 기법(chiaroscuro)을 깊이 탐구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jasper-foto)

제가 분명히 말하고 싶은 건 바로 이겁니다: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를 장식한 거장은 정부가 화가 22만 대군 양성 같은 걸 해서 나온 게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당시 네덜란드 정부가 집중한 곳은 신항로 개척이나 식민지 건설 같은 일이었습니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서 시행착오 한 번 하기가 부담스러운 일들 말입니다. 사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이런 류의 일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로켓 개발이나 슈퍼컴퓨터 개발, 생물학 연구, 이런 것들 말이죠. 이런 곳이야말로 국민의 혈세가 진정으로 의미 있게 사용될 수 있는 곳이고 또 그것이 결과적으로 SW 산업에도 도움이 됩니다. 해외 무역에서 돈을 번 무역상들이 르네상스의 걸작들을 구입하고 화가들에게 그림을 주문하면서, 이탈리아 유학 경험이 없던 젊은 화가가 거장들의 작품을 탐구하고 자신의 작품을 팔 기회를 얻었듯이 말입니다.

그러라고 배정된 예산이 아닐텐데…

Statues

암스테르담의 렘브란트 광장에 세워진 렘브란트 동상.
“야경”의 주인공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비록 이 그림의 주인공들은 오래전에 삶을 마쳤으나, 그들의 모습은 렘브란트의 손에서 영생을 얻었다. (출처: underdutchskies)

글을 쓰는 도중에 달갑지 않은 기사를 접했습니다. 정부가 2020년까지 탐사선을 달에 보내겠다던 계획을 무려 5년이나(!) 앞당기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걸음마를 떼었으니 내일은 육상 경기에서 상을 타오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얘깁니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 비정규직 연구자가 넘쳐나며 심지어 올해 들어서는 더 심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도였습니다. 국내 SW 산업기반을 정성 들여 파괴할 예산은 있고, 고생하는 연구자 월급 줄 예산은 없다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둘 다 미래창조과학부 소관인데 말이죠. 사실, 몇 달 전 한 생물학자분께 들은 이야기에 이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었습니다: “연구실 생활도 안 해본 것들이 정책 주관을 하니까 매사가 이 모양이다. 낙하산도 안 다뤄 본 것들이 공수작전을 기획하는 것도 아니고…”

국민의 혈세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월급쟁이의 피요, 자영업자의 기름입니다. 예산이 엉뚱하게 샐 때마다 비정규직 눈물 떨어지고, 부가세 인상 소문이 떠돌 때마다에 각 가정의 시름 소리는 깊어져만 갑니다. 우리의 세금, 정말이지 제대로 쓰이는 것 맞습니까.

P.S.
@capcold 님의 말씀에 따르면, 정부가 초급 인력을 과다 생산해서 ‘판’을 망가뜨린 건 만화판도 마찬가지라고. 이 정도면 뭔가 패턴마저 느껴진다.

참고문헌

  • 폴 그레이엄, “해커와 화가(Hackers and Painters)” (번역본)
  • 마리에트 베스테르만 저, 강주헌 역, “렘브란트”, 한길아트, 2002
  • 크리스토퍼 화이트 저, 김숙 역, “렘브란트 : 영혼을 비추는 빛의 화가”, 시공아트, 2011
  • 파스칼 보나푸 저, 김택 역, “렘브란트: 빛과 혼의 화가”, 시공사, 1996
  • 로베르타 다다 저, 이종인 역, “렘브란트”, 예경, 2008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gorekun.log’에도 실렸습니다. 글의 표제와 본문, 각주 등은 슬로우뉴스 편집원칙에 따라 일부 삭제, 수정, 보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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