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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네 새끼냐?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는 잔인하지만 인상적인 장면들이 여럿 있다. 그중 하나는 주인공인 살인마 장경철(최민식 연기)이 다친 몸을 치료받기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 벌어지는 장면이다. 처치를 끝낸 나이 많은 의사는 몸을 함부로 굴렸다고 장경철을 나무라며 ‘반말을 찍찍’ 한다.

의사: 축구를 얼마나 심하게 했길래 그렇게 손목이 나가? 무슨 축구를 손목으로 하냐? 아무튼 앞으로 살살 해. 알았어? 됐어, 나가 봐 이제.

장경철: 야, 이 씨발아. 내가 니 새끼냐? 이런 씨발, 왜 아무한테나 반말지거리야? 안경 벗어봐. 안경 벗어봐.

(강제로 안경을 벗기려고 할 때 간호사가 들어와서 장경철의 응징이 중단된다.)

장경철: 하여간 늙은 것들은 아무한테나 반말을 찍찍거린단 말야. 이 씨발 확 아가리를 찢어버릴라.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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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보았다 (김지운, 2010)
(제작:페퍼민트 & 컴퍼니, 배급:쇼박스 미디어플렉스)

대사를 그대로 옮기다 보니 과격한 단어들이 등장한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영화에서 의사는 환자를 반말로 나무라다가 곤욕을 치를 뻔했다. 장경철 말대로, 부상 환자가 자기 자식이라면 다쳤다고 나무라든 반말을 하든 누가 뭐라는 사람 없을 것이다. 그런데 환자는 의사의 자식이 아니다. 병원에 서비스를 받으러 와서 비용을 지불하고 의료 서비스를 받는 고객이며, 의사는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두 사람 간의 관계는 용역 제공과 대가 지불이라는 근대적 계약 때문에 성립하는 것이지, 부모자식 같은 원초적인 상하 위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영화의 저 장면에서는 ‘의사 대 환자’ 구도보다 ‘늙은 것들 대 어린노무새끼’의 구도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열 자식 안 굶기는 어머니 마음으로”

1년 전 이맘때,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후보자 토론회를 보면서 나는, 박근혜 후보의 말과 행동 때문에 세 번 불편한 마음을 가진 적이 있다. 그중 하나는 마지막 회차인 세 번째 토론의 끝 무렵에서 마무리 발언을 할 때 던진 다음과 같은 언급이었다.

열 자식 안 굶기는 그 어머니 마음으로 국민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반드시 만들겠다.

대뜸 든 생각은 ‘국민이 당신 새끼요?’라는 것이었다. 국민과 대통령은 부모자식 같은 혈연관계도, 상하 위계 관계도 아니다. 왕정이 아닌 근대적 민주 국가에서 대통령은 국민의 위임을 받아 한시적으로 국가 정책을 운용하는 선출직 공직자일 뿐이다. 권력이 한 개인에게 집중되므로 그 권한은 매우 크지만, 어쨌든 본질에서 한국 대통령은 5년짜리 공무원이다. 어머니도 아니고 어버이 수령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국민은 대통령의 자식새끼가 아니다. 민주적 원칙에 좀 더 충실하여 말하자면 국민은 주인이고 대통령은 머슴이다.

그런데 자식 챙기는 어머니 마음으로 대통령을 하겠다고 한다. 이것은 이만저만한 착각이 아니다. 민주 체제에 대한 이해에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는 발언이다. 나쁜 마음으로 한 말이 아님은 안다. 더구나 박근혜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으면서 자청해서 자식이 되려는 족보 이상한 인간들이 즐비한 세상 탓에 나온 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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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정치 공학으로 볼 때, 왜 이런 발언으로 세 차례에 걸친 대선 토론의 마무리를 찍었는지는 뻔했다. 그 이유를 핵심어 두 개로 표현하자면 ‘육영수’와 ‘여성성’이 될 것이다.

그 인자하던 육영수. 박정희 독재의 예봉을 누그러뜨리던 육영수. 그래서 박정희를 싫어하는 사람도 좋아했다는 육영수. 사망했을 때 ‘국모’가 돌아가셨다고 온 국가가 통곡했던 어머니 육영수. 그리고 그 자리를 그대로 이어받은 ‘영애’ 박근혜. 70년대를 어른으로 지나온 사람들이 살아 있는 한, 어머니 육영수는 박근혜가 가진 엄청나게 큰 정치적 자산일 수밖에 없고, 이런 정서를 적절히 자극하는 것은 아주 효과적인 정치 전술일 수밖에 없다.

또 박근혜는 여자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측은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된다는 점을 최대한 부각하고 팔았다. 야당 정책들을 모두 훔쳐서 늘어놓는 바람에 비슷비슷해진 대선판에서, 박근혜가 다른 후보에 비해 완전히 두드러지게 돌출되는 두 특징이 있었다면, 그건 ‘박정희의 딸’과 ‘여성 대통령’이었을 것이다. 여성성은 문재인이나 안철수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박근혜만의 ‘레어 아이템’이었다.

박근혜의 ‘어머니 마음’ 주장은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여기서 잠깐, 진짜 어머니 마음이란 어떤 것인지 짐작하기 위해, 들으면 언제나 가슴이 찡하는 노래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만 들어 보자.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우리는 이렇게 컸고, 지금도 엄마들은 저런다. 그런데 박근혜는 낳는 괴로움도 겪어본 적 없고, 기르면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도 체험해 본 적 없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어본 적도 없고,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해 본 적도 없다. 이 점에서는 문재인이나 안철수와 완전히 동등하다. 자식을 키워 본 부모 심정이라면 박근혜보다 오히려 두 남자가 더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부모 마음은 박근혜가 팔고 있다. 박근혜가 지나온 일생을 고려하면 그가 말하는 ‘어머니 마음’이라는 게 대체 뭔지 나로서는 도저히 짐작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저 ‘어머니 마음’이란, 진정함에서 나왔다기보다는 오로지 여성임을 활용해 표를 긁어내기 위한 정치적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찢어지는 마음으로 회초리를”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이사회가 ‘수서발 KTX 법인 설립’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시작된 철도 파업 사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 안이 철도 사영화로 이어지리라 보고 우려하는 철도 노동자들은 이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철도공사 측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고, 더 나아가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며 참여 노동자를 깡그리 처벌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불과 닷새가 지나는 동안에 7천800여 명의 노동자가 회사 측으로부터 직위해제 처분을 받았다. 파업에 참가하면 무조건 처벌하겠다는 강경한 입장 때문이다.

12월 13일 발표한 최연혜 철도공사 사장의 ‘발표문’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오늘까지 돌아오지 않은 7,843명의 사랑하는 직원들을
회초리를 든 어머니의 찢어지는 마음으로
직위해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나왔다, 그놈의 어머니 타령.

그뿐만 아니다. 지난 9일에 발표한 ‘사과문’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집 나간 자녀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여러분들이 우리의 숭고한 일터로 속히 돌아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세상의 진짜 어머니들은 다 사표를 내야 할 것 같다.

기사에 따르면, 최연혜 사장은 이런 발표를 내면서 동시에, 파업하는 노조 집행부를 고소, 고발하고 참여자를 직위해제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식을 어르고 뺨치는 것도 어머니 마음이라고 하는 것인지, 세상에 그런 어머니도 다 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노동자들을 상대로 하여 어머니 마음 운운하려면, 노동자들을 위해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며 손발이 다 닳는 고생쯤은 해 본 뒤이어야 하지 않는가. 내놓는 말로만 보면 마치 전태일 열사의 친모이자 평생을 노동자를 위해 살다 간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되살아온 것 같다.

철도공사가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을 직위해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런데 이번의 직위해제는 과거 파업 때의 그것보다 몇 배나 많은 것이다. ‘아버지’도 하지 않은 대량 처벌을 일삼는 ‘어머니의 마음’이란 대체 무엇인가.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는 건가?

당연한 말이지만, 노동자는 자식이 아니고, 회사나 경영자는 어머니가 아니다. 둘은 노동력 제공과 임금 지급이라는 계약으로 맺어진 동등한 근대적 관계다. 이런 근대적 관계에서 노동자의 파업은 협상의 수단으로 법으로 보장된다. 물론 회사 측도 쟁의 과정에서 법에 따라 나름의 수단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계약 관계에서 어머니 운운하는 가모장주의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다.

'내가 네 새끼냐?'  The Navigators (켄 로치, 2001)

‘내가 니 새끼냐?’
The Navigators (켄 로치, 2001)

노동자는 회사나 경영자의 새끼가 아니다. 백번 양보해 새끼라고 쳐 보자. 한쪽으로는 목을 자르면서 다른 쪽으로 어머니 마음 운운하니, 세상에 그런 어머니가 어디 있는가. 자기 주장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면 아이를 반으로 갈라도 좋다고 한 솔로몬 왕 재판정의 가짜 엄마 빼놓고 말이다.

최연혜가 ‘발표문’을 발표하는 날 열린 전국 철도노조와 철도공사 간의 실무 교섭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끝났다. 노조에서 요구하는 것은 이사회가 통과시킨 방안의 철회인데, 철도공사 쪽에서 교섭 당사자로 나온 사람은 ‘인사노무실장’이다. 실무 교섭 자리이긴 했지만, 협상이 진전되는 게 이상한 일이다.

여성 공직자나 기업주들이 어머니 운운하며 모성이나 여성성을 파는 일이 옳은가? 아니다. 이러한 언급들은 대체로 자신과 상대방 사이의 근대적이고도 정당한 계약 관계를 은폐하려 하거나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상대방, 즉 국민이나 노동자를 계약 당사자가 아니라 돌봐주고 은전을 베풀어주어야 하는 대상으로, 또 자신을 어버이처럼 따라야 할 사람으로 규정하는 사고방식에서 이런 언급들이 나온다.

여성의 몸을 파는 것은 나쁘다. 그러나 김상희 의원의 주장처럼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사정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이해는 할 수 있다. 여성성을 팔아먹는 것은 더 나쁘다. 숭고한 모성을 정략에 활용하거나 노동자 탄압을 합리화하는 말 잔치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착오적인 ‘군사모일체’의 제왕주의적 분위기에 편승해 모성팔이를 일삼는 자들에게 국민이 해 줄 말은 하나밖에 없다: 내가 네 새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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