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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이슈 중 하나가 ‘갑의 횡포’였다. 편의점을 필두로 남양유업, 아모레퍼시픽 등 그동안 ‘갑’에 의해서 억눌려 있던 ‘을’의 분노가 일순간에 폭발했다. 연일 기업을 비난하거나 고발하는 기자회견이 이어졌다. 시민단체도 ‘을’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개선을 촉구했고, 국회의원도 관련 법안을 쏟아 냈다.

더 기막힌 사업자 대 사업자 간 ‘갑의 횡포’

갑의 횡포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지난 시절 우리 사회는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경제발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을’보다는 ‘갑’이 항상 우선이었다. ‘을’의 피해는 잘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대가로 취급했다. 정부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펼쳤고, ‘갑’이 법을 어겨도 법원은 처벌에 관대했다. 중소기업이나 영세자영업자의 피해는 늘 뒷전이었다.

‘억울하면 소송해라’

피해자들을 가장 힘들고 분노하게 하는 말이다. ‘사업자(기업) 대 소비자’와 관련해서는 피해예방이나 구제절차가 잘 마련되어 있는 편이다. 반면, ‘사업자(기업) 대 사업자(중소기업, 영세자영업자)’와 관련된 제도는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정부나 국회, 언론 심지어 시민단체조차 이들에게 별 관심이 없다. 사업자 간 계약에서 발생하는 모든 피해는 ‘을’이 감수해야 하고, 모든 책임 역시 ‘을’이 떠맡았다.

최근 크게 불거진 무점포창업 문제가 이런 ‘사업자-사업자’와 관련한 부조리를 상징한다. 무점포창업은 피자, 밥버거, 컵밥, 핫바, 도너스, 컵치킨 등의 간편 식품을, 샵인샵(SHOP IN SHOP) 형태로 인근 슈퍼나 편의점, PC방 등에 입점 시킨 후 위탁 판매하는 사업이다.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기 때문에 주로 주부나 학생, 직장인들이 관심이 높다.

그동안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한 편의점과 남양유업에서 ‘갑의 횡포’는 그나마 낫다. 가맹점주나 남양유업 대리점주는 GS나 롯데, 남양유업이란 분명한 상대방이 있고, 피해를 당하더라도 그러한 거대기업에 관한 사회적 비난을 조성해 상황을 개선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무점포창업은 본사가 사기 업체거나 영세하기 때문에 피해보상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예 본사가 증발해버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무점포창업 사기행각에 이용당한 방송

무점포창업은 적은 자본으로 쉽게 창업할 수 있다. 그래서 피해자 역시 많을 수밖에 없다. 더욱 기막힌 것은 무점포창업 사기업체들이 피해자를 물색하는 데 방송을 이용했다는 점이다. 광고가 아닌 OBS-W[창업성공시대] 같은 번듯한 프로그램이었다. 방송사가 직접 취재하는 창업소개 프로그램을 통해 ‘피해자’를 불러모은 셈이고, 방송사는 한편으론 사기에 이용당한 피해자일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피해를 부추긴 공범 역할을 해준 셈이기도 하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소자본 창업’
‘안정적 수익보장!’
‘전화만 받아도 한 달에 200~300만 원’
‘웬만한 회사원 수준의 수익발생’

무점포창업 알선 업체들은 현란한 수식어로 창업희망자를 유혹했고, 소비자나 전문가 인터뷰를 통한 추천 방식, 기존 창업주의 성공사례 등이 방송 전파를 타고 흘러 달콤하게 피해자들을 유혹했고, 피해자들은 당연히 방송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신뢰했다.

무점포창업 사기행각에 이용당해 결과적으로 피해를 부추긴 방송  (사진: OBS-W '2013 창업성공시대')
무점포창업 사기행각에 이용당해 결과적으로 피해를 부추긴 방송
(사진: OBS-W ‘2013 창업성공시대’)

무점포창업 알선 업체들의 사기행각

사기성 무점포창업 업체의 사업방식은 거의 유사하다. 960~980만 원의 창업비를 지급하면 특정 지역 독점권을 부여하고 위탁판매점 20곳을 소개해 준다. 소개받은 위탁판매점에 계약한 브랜드 상품을 배달하고 판매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모든 게 거짓말이다. 방송에 나온 창업주는 가상의 인물이고, 계약한 브랜드와 비슷한 상품으로 동일지역에 2중, 3중 계약을 맺는다. 경실련이 고발한 (주)큰사람 업체는 코니코니피자, 한끼밥버거, 참부오느생생피자, 프리미엄칸칸피자, 즉석콘밥, 즉석컵밥, 땡겨유 등 유사한 브랜드로 다수의 계약을 체결했다.

또, 소개해준 위탁판매점 역시 엉터리라서 판매가 불가능했다. 상품 역시 애초에 시식한 제품이 아닌 형편없는 제품이다. 이 또한 냉동식품을 일반택배로 배달하다 보니 상품 자체가 상하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중국산 쌀과 유통기한이 지난 국내산 쌀을 원료로 해 상품이 전량 회수되거나, 대장균이 초과 검출되어 판매 중지되는 일도 있었다. 식약처 인증도 가짜로 판명됐다. 당연히 수익은 0원이었다.

처벌 근거 부족한 법적 사각지대

이처럼 무점포창업 사기업체는 애초에 사업성이 없어 상품 판매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약금이나 창업비를 챙길 목적으로 창업방송을 이용하여 피해자를 모집한 것이다. 그러나 이를 처벌할 의지도 부족하고, 법적 근거도 부족한 실정이다.

사기로 형사처벌도 쉽지 않고, 피해 금액이 적고 피해 사실 입증도 쉽지 않아 소송도 어렵다. 공정거래위원회나 국회에 호소해도 아무도 관심이 없다. 사업자와 사업자 간의 계약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사기당했다며 바보 취급, 죄인 취급받기 일쑤다. 사기업체는 이런 사회적 무관심과 제도의 허점을 노려 더욱 기승을 부린다.

무점포창업 피해를 공론화하고, 피해 예방을 위한 제도 마련은 그래서 중요했다. 경실련은 피해자를 모집해서 피해자 증언대회도 개최하고, 국회에서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도 열었다. 또 무점포창업 5개 업체 11개 브랜드를 공정위 신고하고,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무점포창업 피해점주 57명과 함께 사기업체 2곳 집단고소도 수행했다. 불공정한 계약서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약관심사도 청구했다.

[box type=”info” head=”경실련이 신고한 주요 불공정계약 내용”]

첫째, 부당한 환불거부 및 합의 강제 조항: 회사의 책임으로 인해 계약이 이뤄지지 않거나, 회사의 계약위반으로 인한 중도해지 시에도 계약금이나 가맹금 등을 환불하지 않는 것으로 계약한다. 또한, 환불하지 않는 것에 일절 이의를 제기하지 않거나 무조건 합의하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둘째, 일방적 계약해지 및 상품구매 강제: 계약서의 사소한 위반에도 계약해지로 간주하여 별도의 해지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그리고 회사로부터 월 50만 원 이하의 상품을 구매하거나 3개월 이상 주문을 하지 않는 경우 역시 해지 절차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어, 실질적으로 상품구매를 강제하고 있다.

셋째, 사전 약속 불이행 및 일방적 상품변경: 창업상담 시 온갖 감언이설로 가맹점을 유치하게 된다. 그러나 사전에 구두나 서면으로 약속한 내용을 일절 인정하지 않는다고 명시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또한, 일방적으로 계약한 브랜드와 상관없는 제품으로 변경할 수 있어, 매출감소나 추가 비용발생 등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

넷째, 부당한 면책 및 유리한 재판관할: 회사가 제공하는 상품의 하자나 상품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가맹점의 판매가 부진할 경우에도 일체 회사에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관되게 불공정약관 결정하고 있는 분쟁발생 시 관할법원을 회사 소재지 법원으로 한정하고 있다. 기타 계약금을 현금으로만 지불하게 하고, 양도양수 시 반품 거부, 운영과 관련된 사소한 것까지 보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box]

발로 뛰어 직접 확인해야… 공짜 점심은 없다

아직 많은 업체가 이상에서 설명한 것과 유사한 방법으로 소자본 무점포창업 대리점을 모집한다. 대부분은 애초에 사업이 불가능하다. 일부 사기성 업체를 검찰에 고소, 고발했지만 처벌받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사업자와 사업자 간의 계약을 이유로 모든 걸 책임지고 고통받아야 하는 불합리한 현실은 분명히 잘못됐고,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주변에 무점포창업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꼭 알려주길 바란다. 창업은 발로 뛰고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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