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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슬로우뉴스가 가로수길서점과 제휴하여 좋은 책과 함께 매주 독자를 찾아갑니다. 가로수길서점은 “가로수길에서의 책 한 권”를 더불어 나누고자 2012년 7월에 문을 연 온라인 공간입니다. (편집자)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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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름휴가 다녀오신 분들이 많을 텐데요. 충분하게 재충전이 되셨는지 궁금해집니다. 우리는 보통 ‘피곤하다- 혹은 다쳤다’고 생각 들 때 ‘잠시 쉬어갈까?’라는 고민이나 처방을 하게 되는데요. 만약 외상을 입은 것이라면 병원진료를 받겠지만 ‘마음’에 대한 문제라면 그것을 쉽사리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해집니다. 이럴 때 인문학이 도움되지 않을까 해요. 실제로 금요일이 되면 서울 대학로의 ‘벙커’라는 곳에 이분이 들려주는 시원한 이야기를 찾아 직장인-학생 할 것 없이 많은 시민들이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이 책은 오프라인에서 펼쳐진 강의를 새로 엮어 책으로 출간된 “강신주의 다상담-사랑,몸,고독”편 입니다. 우선, 저자와 출판사 소개부터 시작합니다.

이 책의 저자 강신주는 사람을 사랑하고 시대와 호흡하는 철학자. 폐부를 찌르는 직구, 동서양 인문학을 종횡하며 끌어올린 인문정신으로 ‘지금, 여기’의 수많은 질문에 답해 왔습니다. 삶의 고민과 불만족을 없애기 위해 철학을 찾는 사람들과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나누고 공감하는 일을 즐기는데요. 지은 책으로는 “철학, 삶을 만나다”,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철학 vs 철학”, “김수영을 위하여” 등이 있습니다.

이 책을 볼까 말까. 좀 더 자세히 이 책을 살펴볼까요? ‘오늘의 책 미리 읽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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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ge. 26 사랑-강의, 잔인한 만큼 사랑한다
제가 사랑을 주제로 강의를 하면 많은 분들이 되물어요. 선생님은 그렇게 하시냐고, 그렇게 살고 있냐고요. 다 제가 사랑을 제대로 못해서 얻은 성찰을 말씀 드리는 겁니다. 행복한데 제가 왜 사랑을 고민하겠어요? 저 역시 오만 가지 실패를 했죠. 그러니까 제 이야기는 역경과 좌절에서 얻어 낸 쓰디쓴 성찰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조르주 캉킬렘이라는 이라는 프랑스 철학자가 있습니다. 미셸 푸코의 논문 지도 선생이기도 한데, 이 사람이 쓴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이라는 책이 있어요. 보통 의학은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을 구분합니다. 캉길렘은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 한마디로 말해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 자체를 숙고합니다. 책 자체는 복잡하지만 그 책을 통해 캉킬렘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정상을 정의하는 것은 비정상을 정의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캉길렘의 통찰을 활용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러니까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하려고 골머리를 쓰기보다는, 사랑과는 반대된다는 감정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겁니다. 하긴 당연한 일 아닌가요? 낮을 이해하려면 차라리 밤을 숙고하는 것이 낫고, 남성을 이해하려면 여성을 성찰하는 것이 더 유익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 거꾸로 미움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 보자는 거예요. 누가 죽도록 미운 거예요. 죽도록 밉다는 건 어떠해야지 미워하는 건가요? 누구 미워해 보신 적 있어요? 사람이 남한테 잔인할 수 있는 만큼, 그 자인한 정도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요.

Page. 116 몸-상담, 외모 콤플렉스, 남을 신경 쓰지 않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위로의 말씀을 드리자면 여러분의 외모에 신경 쓰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습니다. 아무리 여러분이 명품을 입어도 그걸 아는 사람은 없어요. 나이를 먹으면서 알게 될 거예요. 그래서 나이 드신 분들이 수술을 안 하시는 이유가 포기한 게 아니라 발악을 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됐기 대문이에요. 유치한 사람들은 어린 아이들 같죠. 아이들은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는 걸 몰라요. 크리스마스에는 자기를 위해 눈이 와야 해요. 아직은 젊으셔서 그래요. 여러분들은 보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없다는 놀라운 사실, 그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살짝 봤을 때도 그냥 사람이 거기에 있어서 보는 것뿐이지 예뻐서 보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건 나중에 한두 번 실험을 해 보시면 알아요. 왼쪽 눈썹을 파랗게 염색을 하고 밖에 나가도 아무도 못 알아봐요. 남들은 여러분을 그렇게 의식하지 않아요. 그리고 혹여 만에 하나 누군가가 의식을 한다고 해도, 그 사람은 여러분을 그다지 오래 기억하지도 않을 거예요. 다른 사람 신경 쓰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말아요. 물론 이건 굉장히 성숙해야 가능한 겁니다. 한번 거지같이 입고 거리를 뛰어 봐요. 그러면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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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를 할게요. 한 사회에서 내가 구축됐고 나는 어느 집에 살고 있고 어느 조직에 살고 있고 그렇지요. 제가 늘 강조하지만 스님이 사찰을 떠날 때는 사랑에 빠질 때고 수녀가 사랑에 빠지면 수녀원을 떠나요. 비구니들도 비구니 암자에서 떠나죠. 어떤 사람은 국가도 버려요. ‘한 번 완전히 변하고 싶은가?’, 그럴 때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건 그렇게 강력한 계기인 거예요. 부모님의 말씀을 어기죠. 다 어기게 되어 있어요. 오로지 나의 느낌에, 내 감정에 유일하게 집중하고 사랑을 할 때만이 우리는 주인이 되는 경험을 해요. 생애에서 우리가 강렬하게 추구하는 건 ‘내가 노예가 아니다’라는 경험을 사랑에서 하는 거예요. 사랑은 굉장히 강력한 압력으로 여러분들이 현재를 살도록 만들어요.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게 하죠. 굉장히 매력적인 순간이에요. 우리가 몸을 테마로 이야기했는데요. 그렇다면 사랑의 장소는 어디일까요? 저는 정신은 아니라고 봐요. 우리의 마음은 아니라고 봐요. 우리의 몸이에요. 모든 것이 몸으로부터 시작 할 거고요. 몸으로 끝날 거예요. 그걸로 귀결되고요. 여러분의 몸이 병들면 사랑은 언감생심이에요. 끝날 거예요. 몸이라는 곳이 여러분들의 사랑이 일어나는 모든 장소예요. 세계와 관계하는 모든 장소가 몸인 거죠. 그러니 몸을 긍정하셔야 해요.

Page. 172 고독-강의, 고독, 어른의 증거
지금 고독한 사람들은 비극적이기는 하지만 괜찮아요. 어른이 된 거니까. 더군다나 우리는 나름대로 고독에 적응이 됐잖아요. 좌우지간 고독은 힘든 겁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어떻게 행복한 일이겠어요. 충족감과 편안함이 사라지는 것이 바로 고독이잖아요. 고독이 반드시 찾아온다면 젊었을 때 찾아오는 것이 더 낫지요. 10대 후반에 고독을 느꼈다면 그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나름대로 견딜 수 있고, 또 그만큼 쉽게 면역이 되지요. 젊고 건강하니까요. 그렇지만 40대에 때늦게 찾아오는 고독은 거의 죽음처럼 힘들게 다가오죠. 실연의 비극과 똑같아요. 20대에 실연하면 죽을 것 같지만 안 죽거든요. 오히려 적당한 실연은 좋을 수도 있습니다. 식욕을 촉진하기도 하고 인생을 리셋해 보기도 하고 학원에 수강 신청을 하기도 하죠. 그런데 40대, 50대의 실연은 힘들어요. 20대 때 실연 안 했던 사람은 40대에 그게 와요. 그러니까 사실 인생에서 가장 성숙한 사람은 10대 때 그 모든 걸 다 겪은 사람이에요. 10대에 이혼까지 다 겪으면 거의 퍼펙트해요. 사람은 겪어야 할 것은 다 겪으면서 살게 되어 있거든요. 문제는 언제 겪느냐는 것이지요.(중략) 젊었을 때는 더럽게 힘들어야 돼요. 그게 다 보험이나 연금 같은 거예요. 그러면 나중에 웬만큼 힘들어도 안 힘들어요. 제가 무슨 얘기하는지 아시겠죠?

Page. 319 고독-상담, ‘왜 사나?’라는 질문이 들 때
인생의 목적을 길게 보지 마세요. ‘왜 사나?’라는 오만한 질문을 하지 마세요. ‘오늘 좋았나?’, ‘지금 이 시간이 좋은가? 그것에 집중하세요. 항상 헷갈리면 지금 감각에 집중해야 해요. ‘내가 이 모임이 좋은가?’, ‘이 사람과 같이 있는 게 좋은가?’, ‘이 책이 좋은가?’ 이것만 집중하세요. ‘이 책을 다 읽은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러지 말고, 지금 순간에 집중해요. 이 세상에서 제일 죽이고 싶은 인간이 삶의 의미를 안다고 하는 사람이에요.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요? 길게 보지 마세요. 오늘 마신 커피 맛이 좋았는지 별로였는지 표현하는 거예요. 그건 말할 수 있잖아요. ‘왜 사나?’라고 질문하지 말아요. 그런 막연한 질문들에 대해 사람들이 얘기를 하잖아요. 다 개소리예요. 우리에게 남는 건 오늘 이 순간, 이 시간이 좋았는지 안 좋았는지 이거예요. 길게 봐서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시죠?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그건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그 막연한 질문들이 대개는 지금 내가 좋은지 내 느낌이 어떤지를 은폐하기 위해서 던져지는 질문이에요. 그리고 그 막연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있는 사람,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무시할 때 써요. ‘인생의 의미는 뭐지?’같은 큰 질문들을 자제하시고요. 힘들면 감각을 믿으세요.

볼까말까 이 책!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감상은 어떨까요? SNS상 독자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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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시겸 님 : 1권부터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고, 이틀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재밌었다. 흥미로웠다. 내가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어떠한 상황에 있을 때 에세이 저자의 행동, 생각을 통해 저자가 삶을 대하는 자세를 보고, 내 인생, 내 삶에 간접적인 경험과 생각으로 추가시키려는 의도이다. 이번 상담집 또한 내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앞으로 행동의 배경이 될 생각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완전히 따르지는 못하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감정과 생각이니까. 완전히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철학을 토대로 저자가 생각하는 이상과 현실의 관습은 너무나 많이 다르니까. 다만 현실에서의 내 위치가 ‘현실의 관습’쪽에서 저자가 생각하는 이상쪽으로 옮겨진 것은 맞는 것 같다. 나를 사로잡은 문장 *알랭 바디우라는 철학자가 있어요. 그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해요. 사랑은 둘의 경험이라고요. 이 세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여러분은 둘의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나요? 여기서 둘이라는 건 나와 그 사람이에요. 나와 그사람, 두 사람이 남자 주인공, 여자주인공이고 나머지는 다 조연인 것이 사랑이거든요. 기적적인 감정이죠. (p.33)
  • cyril 님 : 하루 종일 방에 앉아 <강신주의 다상담>을 읽고 있다. 파안대소하다 낄낄대다 아…하며 눈물도 난다. 그래, 결국 강신주님이 말씀하시는 삶은 <네 멋대로 해라>의 복수와 경처럼 살아가고 사랑하라는 말이다. 이 드라마 갑자기 너무 보고 싶다!
  • 나디아 님 : 다 읽고 나니 울적하다. 읽을 때는 별로 어려운 얘기도 없어서 술술 읽혔다. 퇴근한 후에만 읽었는데도 이틀인가 만에 다 읽은 것 같다. 읽을 때는 강신주의 어법이 시원하고 재미있어서 좋았는데 다 읽고 나니까 울적하다. 명쾌하게 답을 내려주는 건 좋은데 내가 그렇게 명쾌하게 살았던 사람이 아니어서, 나의 감각에 솔직하게 살았던 사람이 아니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항상 착한 선택을 했던 사람이어서 찔리고 후회되어 그러는 것 같다. 강신주의 어법을 싫어하는 사람은 또 싫어하는 것 같더군. 별다른 해결책도 주지 못하면서 날카로운 말들을 써서 되려 더 아프게 한다는 얘기도 있고. 그런데 이 사람이 해결책을 줄 필요까지야 있나? 강신주를 읽으면서 때론 눈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는데 분명 이 현상 안에 뭔가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그 본질이 뭘까 궁금했던 경우 그의 명징한 언어들이 도움이 많이 됐다. (중략) 사랑편을 읽으면서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줄 사람이라면 다른 조건은 생각하지 말고 거기에 빠져들어야 한다는 얘기나 사람들이 다양한 성적 경험을 하지 못했기에 성적인 것을 너무 크게 생각한다는 조언 등은 정말 새겨들을 만 했다. 사랑을 하기에 그 사람을 알게 된다는 얘기도. 여행에 대해 비유한 부분은 정말 마음에 와 닿았다. 내가 프랑스 파리가 나와 맞는지 아닌지를 알게 되려면 우선 파리를 사랑해야 하고 그곳을 여러 번 다녀와서 파리에 대해 경험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라는 것. 사랑도 마찬가지라는 것. 사람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참 대단한 모험인데 나는 지금껏 그 모험을 두려워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울적했다.
  • 페이지 님 : 철학에 관심은 많았지만 왠지 어렵다는 생각에 선뜻 가까이 하지 못했던 나에게 강신주씨의 책들은 철학으로 가는 길목이 되어 주었다. 세상에는 사람들의 고민에 답하는 많은 상담들이 있다. 돌직구로 답하는 상담, 쿨한 상담, 비움을 지향하는 상담, 나를 내려 놓으라는 상담 등등. 강신주의 상담은… 나를 외롭지 않게 했다. 니체와 노자와 마르크스와 시인 등 동서양과 현재와 과거의 사람들이 강신주의 언어로 ‘다상담’에 등장해 모두 나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같았다. 이 책에서 내가 희망을 보았는지, 빛을 보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결 마음이 편해진 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집요하게 붙들며 트라우마로 여겼던 수많은 고민들을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사람들의 고민에 대해 그가 내놓은 답들이 100% 수긍할 수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민을 향해 가는 과정과 고민을 속시원히 뚫어보려는 상담자와 나와의 공감대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될 만한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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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문제나 고민이라는 것이 없으면 정말 좋겠는데, 그게 정말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 같습니다. 저도 그렇고,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 강신주 저자의 강의를 통해 충분한 위로를 얻은 느낌인데요. 좀 더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다 보면 풀리지 않던 것들도 이렇게 완화-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강신주 저자가 말하려던 바도 ‘좀 더 강해지는 우리 자신이 되자’가 아닐까요. 바야흐로 뜨겁고 고된 여름도 지나가고, 입추를 지나 가을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늘 똑같기만 하던 하루하루 – 새해 같던 2013년도 어느새 결실을 준비하는 시기가 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럴 때 인문학과 함께 새로운 내적 수확을 준비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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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재본은 가로수길서점 원문을 일부 수정했습니다.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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