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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까말까 이 책 17: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슬로우뉴스가 가로수길서점과 제휴하여 좋은 책과 함께 매주 독자를 찾아갑니다. 가로수길서점은 “가로수길에서의 책 한 권”를 더불어 나누고자 2012년 7월에 문을 연 온라인 공간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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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로수길서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신작을 소개하며 출간 당일 많은 독자들이 교보문고에 줄을 서서 책을 구입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오늘은 우리나라 작가의 새 신작이 출간된 이후 진행된 작가의 낭독회에 1,000여 명의 독자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살인자의 기억법”이란 소설을 출간한 작가 김영하 씨인데요. 책의 줄거리만 보면 마치 이 한여름에 읽기 좋은 추리소설 같은 느낌이 들지만, 작가는 그럴 의도는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 서늘한 소설책은 독자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유난히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 애를 먹었다는, 소설을 쓰는 이유가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는 저자의 말을 통해 “살인자의 기억법”은 어떤 이야기를, 의미를 독자들에게 들려줄까요? 먼저, 이 책의 저자와 책 소개부터 시작합니다.

이 책의 저자 김영하는 1995년 계간 ‘리뷰’에 “거울에 대한 명상”을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한 소설가입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퀴즈쇼”, “빛의 제국”, “검은 꽃”, “아랑은 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소설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호출”이 있는데요. 문학동네 작가상 등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작가의 작품들은 현재 미국 프랑스 독일 등 1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되고 있습니다. “살인자의 건강법”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후 일 년 반 만에 펴낸 소설로 알츠하이머에 걸려 점점 사라져가는 기억과 사투를 벌이는 은퇴한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작가의 잠언들, 돌발적인 유머와 위트, 결말의 반전까지 정교하고 치밀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책을 볼까 말까. 좀 더 자세히 이 책을 살펴볼까요? ‘오늘의 책 미리 읽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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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ge. 25-26

아침에 은희를 알아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지금은 알아본다. 다행이다. 의사 말로는 은희도 곧 기억에서 사라질 거라고 했다. “아이 때 모습만 남을 거니까요.” 누군지도 모르는 존재를 지킬 수는 없다. 나는 은희의 사진으로 펜던트를 만들어 목에 걸었다. “아무리 그러셔도 소용없을 겁니다. 가까운 기억부터 사라지거든요.” 의사가 말했다.

Page. 33-34
70년의 인생. 돌아보면 입을 벌린 검은 동굴 앞에 선 기분이다. 다가올 죽음을 생각할 때는 별 느낌이 없는데 과거를 돌아보면 마음이 어둡고 막막하다. 내 마음은 사막이었다.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다. 습기라곤 없었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어린 날도 있었다. 내겐 너무 어려운 과제였다. 나는 늘 사람들의 눈을 피했다. 그들은 나를 소심하고 얌전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거울을 보며 표정을 연습했다. 슬픈 표정, 밝은 표정, 걱정하는 표정, 낙담하는 표정. 그러다 간단한 요령을 익혔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의 표정을 그대로 흉내내는 것이다. 남이 찡그릴 때 찡그렸고 남이 웃을 때 웃었다. 옛사람들은 거울 속에 악마가 살고 있다고 믿었다지. 그들이 거울에서 보던 악마, 그게 바로 나일 것이다.

Page. 51
나는 살아오면서 남에게 험한 욕을 한 일이 없다.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욕도 안 하니 자꾸 예수 믿느냐고 묻는다. 인간을 틀 몇 개로 재단하면서 평생을 사는 바보들이 있다. 편리하기는 하겠지만 좀 위험하다. 자신들의 그 앙상한 틀에 들어가지 않는 나 같은 인간은 가늠조차 못 할 테니까.

Page. 57
살인자로 오래 살아서 나빴던 것 한 가지: 마음을 터놓을 진정한 친구가 없다. 그런데 이런 친구,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말 있는 건가?

Page. 119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나오니 밤하늘엔 별들이 찬란하다. 다음 생에는 천문학자나 등대지기로 태어나고 싶다. 돌이켜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를 상대하는 일이 제일 힘들었다.

Page. 144-145
한 남자가 찾아와 만났다. 기자라고 했다. 그는 악을 이해하고 싶다고 했다. 그 진부함이 나를 웃겼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악을 왜 이해하려 하시오?” “알아야 피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나는 말했다.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악이 아니오. 그냥 기도나 하시오. 악이 당신을 비켜갈 수 있도록.”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그에게 덧붙였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볼까말까 이책!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감상은 어떨까요? SNS상 독자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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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님 : 대다수가 빨리 읽혀지는 책이라 했다. 나의 독서습관 탓이겠지만… 나는 빨리 읽혀지지 않았다. 행간에 배치된 내용이 무얼까? 갸웃거리다 사념들에 치여 책장을 덮곤 했다. 그의 문체는 힘차고 거침없다. 이렇게 직선적으로 내리 꽂히는 강렬함을 마지막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그의 내공이며 실력이다. 필력이라 해야 하나? 그래서 버거웠다. 어느 지점에서 숨을 돌려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단숨에 읽고 나면 반드시 호흡곤란이 올게 분명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사람과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 거라는 것이 내내 든 생각이다. 이건 ‘시간’의 이야기다. 또한 ‘존재의 의미’에 대한 고찰이다. 그래서 쉬이 읽히지 않고 자꾸만 무언가 목구멍에 턱턱 막히는 것이다. 뼈를 다 발라내지 않고 급하게 우물거려 삼키는 갈치조림처럼 자꾸 목에 걸린다. (중략) 무엇을 말하건 새어나가게 될 비밀. 나는 차라리 함구한다. 다만 읽어보라고, 읽되 천천히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읽어보라고 귀띔해주고 싶다.
  • 오명화 님 : ‘설국열차’와 최근 읽은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의 공통점. 앤딩에 이르러서야 이야기의 본질을 만난다. 주제는 설국열차가 더 묵직하지만 스토리텔러로서는 살인자의 기억법이 더 마음에 든다.
  • 눈치도없이 님 : 김영하 작가는 말했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이 책을 읽고 나는 말했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그리고 그 시간이 왜곡하고 더하거나 빼버린 기억이지.” 기억이라는 게, 새삼 무섭다. 책 속 주인공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70대 노인이(자 왕년의 연쇄살인범이)다. 노인의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알츠하이머에 걸리지 않은 나는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 책을 읽고서는 어리둥절해 했고, 다시 읽고서는 ‘기억’이라는 것에 신기해 했다. 알츠하이머에 걸리면, 기억이 이렇게 되는 거야…? 뒤죽박죽, 온통 뒤틀리고, 어딘가 살이 붙고 어딘가는 지워졌다. 그런데 그것, 알츠하이머 환자만 그런 걸까? (중략) 이 책은 얇지만, 읽을 거리는 다양하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며 가졌던 감상이 다양했으나, 그 중에서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시간의 기억법’이다. 나 또한 이 노인과 같은(이 정도는 아니어도, 이와 유사한) 기억의 왜곡에 휘둘리라는 것. 아무도 이길 수 없는 그 시간이 흘러가면서, 기억의 심연에서 헤매는 일이 적지 않으리라는 것.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왜곡된 기억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 ingan37님 : 오랜만에 김영하다운 소설. 가독성 있는 단문에 건조하고 냉소적인 문체. 반갑다. 이 책은 출간 전에 예약 주문을 했고, 어제 받자마자 한 시간 만에 후딱 읽었다. 읽고 나니 허탈하다. 오래 기다리던 연인을 플랫폼에서만 잠깐 본 것 같은 아쉬움. 다음 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같이 잠시 공허하다. (중략) 김영하의 팟캐스트(책읽는 시간)을 자주 듣는 나로서는 책을 읽으며 작가의 음성이 자동 지원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내는 무심한, 차가운 단문들. 한때 연쇄살인범이었던 노인의 오락가락하는 기억과 그 기억을 붙들기 위해 악착같이 메모하고 녹음하는 그의 행동이 손에 잡힐 듯 명료하다. 이번 소설의 제목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그리고 결말은 <호출>을 연상케 한다. 소설은 과거 연쇄살인범이 현재 연쇄살인범이라 확신하는 사내를 쫓는 형식이다. 때문에 독자 역시 노인을 따라 손에 땀을 쥐며 사내를 추적하지만 결말은 허망하다. 멀리서 찾아갔지만 예정시간보다 일찍 마감한 맛집의 닫힌 문 앞에 서있는 느낌.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 니체, 몽테뉴, 프랜시스 톰프슨 등의 어록들 또한 스토리를 따라가지 못하고 생경하게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다. 포, 차 떼고 중편 정도로 다듬었으면 더 좋았을 걸……. 뭔가 5% 부족한 듯한 이 독후감을 김영하의 팟캐스트를 들으며 달래야겠다.
  • 김영하에 대해 그간 가지고 있던 생각이라면 ‘글’은 잘 쓰지만, ‘이야기’는 글쎄라는 것. 어떤 상황이나 감정을 글로 그려내는 그 탁월한 필력에야 이견을 달 수 없지만, 복잡다단하고 미묘한 심리 묘사나 예측할 수 없는 반전과 극적인 상황 전개의 서사이냐에 대해선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 그래서 나는 김영하는 단편형 작가라고 생각해왔고, 그의 단편에 대한 무한애정과 별개로 장편에 대해선 늘 물음표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나의 이런 편견은 이 책으로 인해 단번에 깨지고 말았다. 이 책은 굉장히 영리하다. 작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최근 짧은 호흡의 글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경향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으며, 영화적인 소설, 즉 읽는 동시에 머릿속에 그려지는 스타일로 영상세대의 구미를 자극하고, 엄청난 속도감으로 독자를 마지막까지 붙잡아둔다. 무엇보다 마지막 반전. 이 반전이 그 어떤 반전들보다 압도적인 이유는, 독자들에게 예측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는 데 있다. 보통 반전을 감춘 소설은 퍼즐을 맞추고 추리하고 검증하며 저자와 두뇌싸움을 벌이는 재미를 선사한다. 자신의 추리와 어긋났을 때, 독자는 감탄하거나 혹은 승복하지 못해 불만을 품는다. 자신의 추리와 맞아떨어졌을 때, 독자는 쾌감을 느끼거나 시시해한다. 그런데 추리할 새도 없이 반전을 만났을 땐? 이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이다.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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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책을 내고 한 인터뷰에서 우리 정체성의 핵심은 기억이라고 생각한다며 지금의 나는 결국 내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기억들로 만들어져 있다고 했는데요. 그래서 저도 제 블로그에 기억이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보았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정말 제가 블로그에 글을 쓰며 ‘기억’이란 단어를 통해 제 지나간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놓았더라고요. 사실 추리소설이나 무서운 이야기를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터라 작가가 왜 굳이 살인자에 대한 1인칭 시점으로 소설을 썼을까 궁금했는데, 살인자를 통해 기억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말에 저도 오싹함을 참고 이 소설이 궁금해졌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본 게재본은 가로수길서점 원문을 일부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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