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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폭탄론의 함정: 세금 덜 내게 돼서 좋습니까

“세상에 분명한 건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죽음이고 하나는 세금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나폴레옹도 비슷한 말을 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세금도 마찬가지다.”

세금 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멍청한 말을 했다. “한 달에 1만 3,000원 정도인데 이 정도는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느냐.” 이런 말도 했다. “거위에서 고통 없이 털을 뽑는 방식으로 해보려고 했던 게 세제 개편안 정신이다.” 다시 말하지만, 세금 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금폭탄론의 함정

세제 개편안 논쟁에 등장한 통계를 살펴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팩트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말하는 언론이 많지 않다. (아래 그래프들 단위는 모두 만원, 만명이다. 기획재정부 자료 가공)

1. 소득 구간별 인원 분포 (2011년)

기획재정부는 8일 발표 때 연봉 3,450만 원 이상만 세금을 올리겠다고 했다. 놀라운 사실은 연봉 3,450만 원이면 근로소득자 가운데 상위 28%에 든다는 사실이다. 다음 그래프를 보면 이해가 쉽다. 2011년 기준으로 소득 구간별 인원 분포다.

근로소득자 1,548만 명 가운데 연봉 3,000만 원 미만이 1,030만 명인 66.6%나 된다. 이 사람들은 대부분 세금을 내지 않거나 아주 적게 낸다. 이번에 증세 대상이 됐던 연봉 5,500만원 이상 근로소득자들은 상위 13%에 포함된다.

누가 세금을 더 많이 부담하느냐를 볼 수 있는 그래프다. 소득 구간별 세금 총액 비중(2010년 기준). 연봉 3,000만 원 이하는 세금을 아예 내지 않는 면세자들이 많아 숫자는 많지만 세수 기여도는 적다.

2. 원안과 수정안 세금 부담 비교

기획재정부는 12일 증세 기준을 연봉 5,500만 원 이상으로 올리기로 했다. 그럼 근로소득자 상위 13%만 세금이 늘어난다. 5,500만~7,000만 원까지도 증세 규모를 줄여주기로 했다. 연봉 7,000만 원 이상이면 상위 7% 안에 든다. 이 정도면 비로소 부자 증세라고 부를 수 있을까. 28%의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자던 개정안이 수정안에서는 13% 부자로 좁혀졌다. 15%의 부자가 세금을 더 안 내게 되면서 4,400억 원가량 세금이 덜 걷히게 됐다.

실제로 얼마나 세금이 늘어났는지를 비교한 그래프. 이 정도면 부자 증세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수정안에서는 4,000만~7,000만 원 구간 증세가 사라진 걸 확인할 수 있다.

3. 수정안으로 누가 얼마나 세금이 줄었을까 

기획재정부는 “총급여 5,500만 원 이하는 세 부담 증가 없다”는 자료를 냈다. 이걸 보고 좋아할 사람은 누굴까. 연봉이 3,450만~5,500만 원 사이에 있는 229만 명은 세금이 안 올라서 좋아할 수도 있다. 5,500만~7,000만 원 사이에 있는 95만 명도 세금이 덜 오르게 돼서 좋아할 것 같다. 그러나 이 사람들을 과연 서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연봉이 3,000만~4,000만원인 사람의 경우 1년에 고작 1만 원을 더 낼 뻔했던 걸 안 내게 됐다. 연봉 4000만~5000만 원인 사람은 16만 원을 더 낼 뻔했던 걸 안 내게 됐다.

수정안으로 얼마나 세금이 줄어드는지 나타낸 그래프다. 연봉 4000만~7000만원 사이의 사람들이 최대 16만원까지 세금을 덜 내도 되게 된다. 이게 우리가 원하는 거였나.

수정안으로 얼마나 세금이 줄어드는지 나타낸 그래프다. 연봉 4000만~7000만원 사이의 사람들이 최대 16만원까지 세금을 덜 내도 되게 된다. 이게 우리가 원하는 거였나.

4. 결국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손잡고 보편적 증세 후퇴시켰다 

결국 민주당이 세금폭탄이라고 들고 일어나고 새누리당도 여론의 반발을 의식해 맞장구를 치니까 청와대가 물러선 모양새다. 조중동 등 보수 언론도 월급쟁이가 봉이냐며 반발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씩 비판의 결이 다르다. 조중동은 월급쟁이들을 내세웠지만 사실 이 신문들은 모든 종류의 증세를 반대한다. 복지재원? 복지를 줄이라고 난리법석인 신문들이다. 민주당이 세금폭탄이라고 비판하는 건 자가당착이다. 과연 집권 의지가 있나 의심스러울 정도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손잡고 보편적 증세를 후퇴시켰다고 할 수 있다.

5. “잘한 건 잘했다고 하자” “민주당 복지철학 의심스럽다”

이번 개편안에서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기로 한 건 진보진영에서도 환영하는 대목이다. 이상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잘한 건 잘했다고 하자”고 말한다. 법인세나 금융거래세에 손을 대지 않은 건 비판해야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계속 요구하면 되는 것이고 보편적 증세가 맞는 방향이라는 이야기다.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실장은 “이번 개편은 소득이 높을수록 세금이 증가하는 누진적 증세”라고 평가했다. 민주당을 겨냥해서는 “보편적 복지를 지향한다는 정당이 무시무시한 세금 폭탄론을 꺼내다니 복지국가에 대한 기본 철학을 지니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6. 소득세: 최고세율 과표 기준 1억 5천만 원 하향 조정하자는 이유

실제로 소득세만 놓고 보면 연봉이 많을수록 세금 부담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연봉 5,000만~6,000만 원 사이에 있는 사람들은 16만 원만 더 내면 되지만 연봉 1억~1억 100만 원 사이에 있는 사람들은 1,065만원을 더 내야 한다. 상위 0.1%, 연봉 3억 원이 넘는 1만 6,000명은 1억8 465만 원을 더 내야 한다. 이 정도면 증세 한 번 할 만하지 않은가.

2011년 기준 소득 구간별 세금 납부 금액 비교. 확실히 연봉 3억 원 이상 사람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건 맞는데 주목할 부분은 연봉 3억 원과 2억 9,999만 원의 차이가 엄청나다는 사실. 최고세율 과표 기준을 3억 원에서 1억 5,000만 원으로 낮춰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과표 기준을 낮추면 연봉 3억원 미만인 사람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게 된다.

7. 28% 부자 증세에서 13% 부자 증세로

연봉 2,000만~3,000만 원인 사람은 17만 원을 내던 게 6만 원으로 줄어들게 됐다. 연봉 1,000만~2,000만 원인 사람은 5만 원 내던 걸 한 푼도 안 내게 됐다. 연봉 1,000만 원 미만인 사람들은 원래 세금을 안 냈다. 소득세만 놓고 보면 이번 개편안 원안은 72%의 근로소득자들이 환영할 만한 정책이다. 개정안에서는 87%의 근로소득자들이 환영하는 정책이 됐다. 보편적 증세, 좋은데 나는 좀 빼줘. 이거야말로 포퓰리즘이 아니고 뭔가.

수정안에서는 그대로 내는 사람이 생겨나고 더 내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수정안에서는 그대로 내는 사람이 생겨나고 더 내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8. 이번 수정안으로 ‘그물’에서 빠져나간 사람들

아마도 날마다 신문을 보고 뉴스를 읽고 분노하는 그럴듯한 직장에 다니는 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상당수가 이번 개정안 수정안으로 혜택을 보게 되는 연봉 3,450~7,000만 원 사이, 상위 7%와 28% 사이, 나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아마 기자들 상당수도 이 구간에 해당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 사람들만 조용히 있으면 여론이 무마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비교적 학력 수준이 높고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이 보편적 증세의 그물에서 빠져나가게 됐다는 이야기다.

9. 분명한 건 ‘증세 없이는 복지도 없다’는 사실

물론, 부자들에게 더 거둬라, 나는 한 푼도 더 못 내겠다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부자 증세를 철회하고 법인세를 올리는 게 우선이라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세금 더 걷는 꼴을 못 보겠다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건 마치 KBS의 TV 수신료 인상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박근혜 정부에서 보편적 증세를 하지 못하면 어떤 다른 진보적인 정권이 들어서도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보수 정권이라고 하더라도 보편적 증세를 하겠다는데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국민들 혈세를 4대강 따위에 쏟아붓지 않도록 감시하고 비판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어쨌거나 박근혜 정부도 복지를 확대하겠다고 하고 재원 마련에 골몰하고 있는 상황이다. 분명한 것은 증세 없이는 복지도 없다는 사실이다. 박근혜가 하더라도 보편적 증세는 해야 한다.

소득세와 법인세 문제

그리고 몇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더 있다.

1. 소득세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첫째,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 대비 소득세 비중은 2010년 기준으로 3.6%,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평균 8.4%와 비교해서 매우 낮다. 그러니까 소득세를 올려야 한다? 우선 비과세·감면을 줄이고 34%에 이르는 면세자 비율을 낮춰야 한다. 조금이라도 내고 많이 버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내도록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근로소득세 최고 세율 38%를 낮추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이번에는 근로소득세만 건드렸지만, 금융과 부동산 거래로 얻은 소득에 세금을 늘릴 필요가 있다.

소득세 비중은 우리나라가 OECD 평균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 보편적 증세와 최고 세율 인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 문제는 법인세

둘째, GDP 대비 법인세 비중은 3.5%로 OECD 평균 2.9%보다 높다. 그러니까 법인세를 올리면 안 된다? 이것도 오래된 통계적 착시현상이다. 법인세 비중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애초에 세율이 낮다는 사실을 빼먹으면 안 된다. 최저 세율이 10%로 OECD 평균 17.1%보다 매우 낮다. 과표 기준 2억 원 이하는 10%, 2억~200억 원은 20%, 그 이상은 22%가 적용된다. 최고 세율은 2002년 28%에서 27%로, 2005년 25%로, 2009년 22%로 계속 인하됐다. 그나마 대기업에 적용되는 온갖 세액공제 혜택이 많아 삼성전자의 경우 실효 세율이 16.7% 밖에 안 된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은 실효세율이 각각 31%와 28.1%였다.

우리나라가 법인세 비중이 높은 건 사실이다. 그런데 정작 법인세 세율이 낮다는 사실을 빠뜨리면 안 된다. 세율이 낮은 데도 GDP에서 차지하는 법인세 비중이 높다는 건 내수가 척박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우리나라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방증이 아닐까.

3. 외국에선 다들 감세한다?

셋째, 외국은 다들 감세하는 추세다? 하나마나 한 소리다. OECD 나라들은 높은 세율을 깎는 추세고 우리나라는 낮은 세율을 높여가는 추세다. 우리나라 조세 부담률은 지난해 기준으로 20.2%, OECD 평균은 24.6%다. 사회보장부담률을 더한 국민부담률은 26.8%인데 OECD 평균은 36.3%(2010년 기준)다.

세원별 세수 비중 비교.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소득세가 적고 소비세가 많다. 사회보장기여금(국민연금)도 OECD 평균의 3분의 2 수준이다.

세원별 세수 비중 비교.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소득세가 적고 소비세가 많다. 사회보장기여금(국민연금)도 OECD 평균의 3분의 2 수준이다.

누진 과세 통한 보편적 증세가 사회적 합의의 핵심 

한겨레는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의 말을 인용해 “중산층 월급쟁이들의 불만의 핵심은 십수만 원의 세금 부담 때문이 아니라, 대기업과 자산가, 고소득 자영업자와의 조세 형평과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라고 지적했는데 언론이 때로는 국민들을 계도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많은 국민이 반대하니까 문제라는 논리는 곤란하다.

소득세보다 법인세를 올리는 게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소득세를 올리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니다. 우선순위의 문제는 있지만, 법인세 인상이 보편적 증세의 전제 조건이 되는 것도 아니다. 세금폭탄과 보편적 증세는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 있다. 보편적 증세의 핵심은 누진 과세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세금폭탄이 될 수 있겠지만 그래서 필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다. 그건 ‘나는 못 내겠으니 부자들에게나 거둬라’가 되어선 안 된다. 이제 이런 목소리를 낼 때다.

‘나도 낼 테니 부자에게 더 거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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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이정환
슬로우뉴스 편집위원 / 미디어오늘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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