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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나도 얼굴에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쓰여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알 듯 모를 듯, 만날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귀공자처럼 생겼는데 단호하고 터프한 사람도 있고, 우락부락한 아저씨가 마음은 여리기만 한 때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한 번에 드러나는 사람보다는 잘 모르겠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한 달 전 다녀온 화악산이 무척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다. 꼭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꼽고 있다.

화악산을 사람에 비유하자면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영화 ‘아저씨’의 주인공 원빈 같다. 뭔가 사연이 있는 듯한 눈빛, 수려한 용모의 주인공에 빠져 영화에 집중하듯이, 화악산도 신비스러운 매력에 이끌려 그 힘든 산길을 어쨌든 꾸역꾸역 오르게 한다.

경기오악의 으뜸

화악산은 ‘경기오악(京畿五岳) 중 으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오악의 ‘악(岳)’자가 말해 주듯 바위가 많고 험한 산을 상상할 수 있는데, 그 중 으뜸이라니 오르기 만만치 않겠다는 게 이 산에 대한 첫인상이었다(‘악(岳)’은 역사적으로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던 큰 산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높이도 1,468미터. 결코, 쉽게 생각할 높이가 아니다. 과연 그랬다. 쉽지 않은 산, 오르기 힘든 산. 그런데 이 산의 매력은 등산로가 좁고 좁은 산길 옆으로 풀과 나무가 울창해서 산길을 오르며 마치 그 길 끝에 ‘비밀의 정원’이 나타날 것 같은 신비로운 상상을 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화악산에 오르기 위해 경기도 가평군 북면 관청리에 도착했다. 이 정도 높이, 규모가 있는 산이면 등산로 입구가 잘 정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식당도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야 정상일 텐데 등산로 입구 찾기가 어려웠다. 그곳 지리에 밝은 관청리 주민에게 물어물어 겨우 ‘출입 제한구역’ 표지가 붙은 철문을 열고 이 비밀스러운 산에 한발 들어섰다. 왼쪽으로는 풍성하게 흐르는 계곡 물이 시원한 합창곡을 만들어내고 조금 과장하자면 정글처럼 우거진 숲에 좁다란 길이 하나 흐르고 있다.

바로 목적지인 화악산 정상 ‘중봉’(1,450m)으로 안내해주는 길이다. 보통 산에서 볼 수 없는 신비스런 광경에 끌려 한 걸음씩 안갯속으로 모습을 가리듯 빽빽한 숲으로 숨어들었다. 얼마를 더 가니 등산로 옆 풀과 나무가 더욱 우거져 두 팔로 나뭇가지를 헤치고 나아가야 했다. 우거진 숲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풍성하게 모여 있어, 이곳은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산으로도 손꼽히다.

좁다란 등산로 옆으로 울창한 풀과 나무를 헤치며 오른다 2013년 6월 29일
좁다란 등산로 옆으로 울창한 풀과 나무를 헤치며 오른다
2013년 6월 29일

안갯속을 걷듯 비밀에 다가서다

보통의 ‘악’산을 오를 때와는 달랐다. 산을 오르며 볼 수 있는 저 멀리 걸려있는 한 폭의 그림 같은 바위들을 감상하거나, 그 바위들을 타고 오르는 맛이 일반적으로 ‘악’산이 주는 맛이라면, 화악산은 내 손을 잡고 이끄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좁은 등산로를 따라 안갯속을 걷듯이 한 걸음 한 걸음 비밀에 다가서는 다소 신비로운 맛이 있다.

화악산의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맛은 다른 곳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독특함이 있었으나 문제는 산이 너무 험해서 정말 힘들다는 것이다. 등산로 입구를 조금 벗어나면 합창곡 같았던 계곡의 물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그때부터 산은 본격적으로 가파른 오르막길을 던져 준다. 여전히 등산로는 좁고 풀은 무성하다. 깔딱고개라 할 수 있는 난코스를 몇 번을 넘고서 삼거리에 도달했다. 이곳에서 다리도 쉬고 과일도 먹으며 1.7킬로미터쯤 남은 중봉으로 향할 힘을 비축하고 있었다.

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있는데 커다란 나비가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신기한 모습을 동영상에 담고 사진을 찍고 주변을 어슬렁거려도 이 나비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마치 내 아이폰에 모델을 서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듯했다. 화악산 산행기를 적은 블로그 글을 읽다가 다른 곳에서 내가 놀았던 나비와 똑같은 모양의 나비 사진을 올린 것을 발견했다. 아, 진정 화악산 터줏대감 나비였던가 보다.

화악산 터줏대감 나비 2013년 6월 29일
화악산 터줏대감 나비
2013년 6월 29일

나비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다시 정상으로 향했다. 원래 화악산 정상은 군사 시설이 있어 들어가지 못하고 중봉이 등산객들에게는 사실상 정상 역할을 했다. 이제까지 올랐던 길이 워낙 험하고 힘들어 이제부터 정상까지는 가벼운 능선길이겠거니 안심했던 건 내 커다란 실책이었다. 조금도 더 수월하지 않은 길이었다. 화악산은 그렇게 정상까지 가파른 경사의 오르막이 계속 이어졌다. 그래도 숲이 울창해 아무리 더운 날에도 땡볕을 직접 만나지 않고 그늘에서 산행할 수 있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드디어 중봉에 올랐다!  2013년 6월 29일
드디어 중봉에 올랐다!
2013년 6월 29일

어려움을 견뎌 본 사람은 뭔지 모를 자신감이 생긴다. ‘세상아, 다 덤벼봐라!’ 하며 어깨를 활짝 열어젖힐 수 있다. 화악산은, 등산인들에게는, ‘어드밴스드 코스’임에 틀림없다. 어려운 길을 오르고, 내릴 무렵에는 아픈 다리 근육 사이로 뿌듯함은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해냈다는 그런 기특함 같은 것 말이다.

[box type=”info” head=”산행 코스 “]

  • 산행 코스 관청리(12:50) -> 삼판도로(14:20) -> 서쪽능선 -> 조무락골 갈림길 (15:05) -> 중봉(16:10) -> 애기봉(18:20) -> 관청리(20:30) (총 7시간 40분)
  • 관청리 출발-헨스철망-주능선 진입-화악산(중봉) -조무락골 삼거리-관청리 삼거리-749.7 삼각점 -38교/가림-가림등산로 입구(8시간)
  • 가평군 북면 38교-석룡산-쉬밀고개-화악북봉-중봉-관청리(도상 13Km 전후)(7시간)
  • 화악2리-천도교 수련원 삼거리-천도교수도원-옥녀탕-군도도-중봉-조무락골-석룡산 능선/조무락골 삼거리-38교-용수목 종점 ( 6시간 30분 12Km)
  • 화악2리 건들내 – 천도교수련원 – 중봉 – 1090봉 – 언니통봉- 749봉 – 660봉 – 5거리 – 용수리종점 신청평휴게소-화악터널앞-실운현 – 화악산 북봉-중봉 -군도로-실운현(6시간)
  • 실운현-북봉-중봉-중봉/방림고개갈림길-복호동폭포-조무락골 입구 (6시간)

출처: 한국의 산하  [/box]

[box type=”info” head=”교통 안내 “]
교통 안내 가평으로 가서 가평시내버스로 갈아탄다.

  • 서울 동서울터미널, 상봉터미널에서 춘천행 버스를 이용 가평에서 하차
  • 청량리역환승버스 정류장에서가평행 좌석버스 이용 가평하차
  • 청량리역에서 경춘선 이용 가평 하차

[현지교통]

  • 가평-적목리 : 1일 5회 운행, ,적목리나, 관청리 하차
  • 가평-화악리: 1일 5회 운행.
  • 가평-조무락골 입구 용수동 : 1일 5회 운행
  • 가평 시내버스시간 안내

출처: 한국의 산하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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