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우도에 있는 한 카페(‘노닐다’)에서 무크지(비정기간행물) 창간호를 냈다.

또 다른 우도로의 초대

‘우도에서 노닐다’는 이름을 가진 이 무료책자는 손바닥을 펼쳐서 대보면 거의 가려질 정도로 자그맣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찬찬히 음미해볼 거리가 많다.

무크지 '우도에서 노닐다' 창간호 표지
무크지 ‘우도에서 노닐다’ 창간호 표지

“여행지로 우도를 찾고 또 이 카페에 들른 사람들이 시간에 쫓겨 풍경을 급하게 스캔하고 떠나는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좀 더 두터운 경험의 시간을 갖는다면 훨씬 여행이 풍요로워질 텐데, 하는 생각이 이 무크지를 낳았지요.”

카페 대표 박신옥 씨의 말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펼치자마자 우리가 놓치고 있는 또 다른 우도로 빨려 들어간다. 폭주하는 사륜 오토바이에 귀앓이를 하는 우도의 길에 대한 연민, 가뿐하게 걸을만한 일곱 가지의 산책로 제안, 떠돌이 개들, 해녀 할망 (제주 방언으로 ‘할머니’란 뜻), 카페에서 자주 흘러나오는 음악, 해변에 버려진 부표들의 재활용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우리가 존재하는 유일한 시공간인 ‘지금, 여기’가 제게는 우도의 오늘이지요. 여행자는 먼 곳을 보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당도한 여행지의 시공간은 항상 의식 속에서 어느 정도 붕 떠 있을 수밖에 없어요. 이 두 격차를 이어줄 소통의 다리가 필요하지요.”

박신옥 씨의 설명이 이어졌다.

찬찬히 보아야만 말을 건네오는 것들

무크지에는 우도의 길을 소음이 심한 탈것들이 아니라, 걷는 이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편집자의 의지가 곳곳에 드러난다. 해안과 마을을 따라 순하게 구부러진 길들을 따라 ‘천천히 혹은 찬찬히’ 봐야만 말을 건네오는 것들에 주목하고 있다.

“카페 문을 닫고 길을 나선다.
바퀴들의 세상이 끝난 시간, 길은 어둠 속에서 나의 느린 발걸음과 함께 깨어 있다. 하루종일 무례한 바퀴들의 굉음으로 몸살을 앓았던 길은 이제 오롯이 길만의 시간, 길만의 적막 속에서 스스로를 위무하고 있다.

(중략)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의 발소리와 소통할 수 있었다. ‘당신은 피곤하군요. 발을 끌고 가다시피 하네요. 조금만 더 가면 쇠물통 언덕이니 거기서 다리쉼을 하세요…..당신은 예전에도 왔지요? 물푸레나무를 닮은 당신의 걸음걸이가 기억나요. 쇠머리오름까지 내처 걸으실 건가요?
그러나 사람들은 이제 길을 바퀴의 속도를 보장해줄 만만한 바닥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길가에 핀 꽃 양귀비와 금잔화 위에 잔뜩 먼지를 덮어씌우고 쏜살같이 질주할 뿐이다. 왜 이 섬의 눈개쑥부쟁이들은 육지의 쑥부쟁이들과 달리 키를 낮추고 옆으로 뻗어 가는지, 해안에 널브러진 부표의 고리 부분이 얼마나 다양한지, 걷다가 잠시 멈춰 고개만 숙이면 이네들의 표정을 읽을 수 있을 텐데….. 해가 떠 있는 동안 길은 카레이싱 코스나 마찬가지다.”

-‘밤산책’ 중에서

또 센 바람과 파도에 떠밀려와 움푹 패이거나 한쪽이 깨진 채 해변에 널브러져 있는 부표들을 다른 모습으로 살려내는 이야기가 실려 있고, 우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마우지에 관한 단상도 실려 있다.

“우도의 동쪽 해안가에는 파도에 쓸려온 다양한 부표들이 있습니다. 파도와 바위에 시달려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 있는 부표들은 우도의 경관을 해치는 골칫거리로 눈총을 받다가 결국엔 쓰레기 소각장으로 가겠지요.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에 유난히 눈길을 오래 주는 카페의 일꾼들이 틈날 때마다 몇 개씩 부표들을 거둬들였습니다. 그것들에 붙어있는 해초와 굴 껍데기를 떼어내고, 거친 표면을 사포로 매끈하게 다듬었습니다….진한 초록색으로 칠한 다음에 여러 모양의 입과 눈을 그려 넣었습니다. 개구리가 되었습니다. 담장 옆, 잔디밭 등이 이 개구리들의 서식지가 되었지요. 귀 밝은 이들은 언제든지 와글거리는 이네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개구리합창단’ 중에서

“처음엔 가마우지들이 날개를 펼쳐 든 채, 오래오래 현무암 바위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맑고 푸르고 깊은 우도의 바다를 향유하는 자세가 참 좋았다….바닷물 속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녀석들치고는 깃털 방수 기능이 부족해서, 틈만 나면 날개를 펼쳐 들고 말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우도의 가마우지들’ 중에서

‘우도의 가마우지들’, [우도에서 노닐다] 중에서

‘지금, 여기’를 담은 이야기

사람 사는 곳에 사람 사는 이야기가 빠질 수 있을까. 이 책 속에는 해녀들 사진이 여러 컷 있는데, 그저 무례한 호기심에 카메라를 들이대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서로 낯이 익고 말이 오가며 생긴 친근함으로 나온 것임을 짐작게 한다. 해녀들의 고된 노동에 던지는 시선이 따뜻하다.

“아직 해가 가슴께에도 오르지 않은 이른 아침에 해녀들이 고래의 꼬리처럼 힘차게 두 발을 수면 위로 차올리면서 자맥질하는 모습과 다시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고 숨비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면 저것보다 더 깊은 기도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샛길과 테라스의 대화’ 중에서

“그래도, 꿈속에서나마 숨비소리 휘날리는 해녀로 살고 싶다.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는 돌고래의 그것처럼 바닷물에 밀착되어 유연한 움직임을 만들어낼 것이다. 나의 피돌기와 호흡은 바닷말과 성게와 문어와 전복들을 중심으로 조절될 것이다. 민첩하고 거친 나의 노동은 나와 내 식솔의 밥과 삶의 도구들이 될 것이다.”

-‘해녀’ 중에서

'해녀', [우도에서 노닐다] 중에서
‘해녀’, [우도에서 노닐다] 중에서
70쪽 남짓한 이 얇고 작은 책은 카페운영자이자 편집장인 박신옥 씨가 언급한 대로 ‘지금, 여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은 섬, 우도의 이야기가 끊임없는 한 무크지도 호를 거듭해서 펴낼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 최초의 카페 ‘르 프로코프’

무크지를 통해 새로운 여행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이러한 시도는 초기의 파리 카페들을 연상시킨다.

“카페에서는 자유가 속삭이고 혁명이 농담을 즐겼다. 카페는 이야기하는 신문이며 모반자들의 소굴이다.”

프랑스 카페를 두고 독일의 비평가 그림 남작이 한 말이다. 그의 말처럼 초기의 카페들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신분과 종파, 이데올로기와 직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이들이 다양한 사고와 상상력을 공유하는 일종의 문화 커뮤니티였다. 이 카페 중 몇몇은 자체적으로 문예지 형식의 간행물을 발행하기도 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1686년 라틴지구에 문을 연 프랑스 최초의 카페 ‘르 프로코프(Le Procope)’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볼테르, 디드로, 달랑베르 등 수많은 사상가들이 모여 토론을 벌였던 공간으로 유명한 르 프로코프는 흔히 최초의 ‘문학 카페’라고도 불린다. 문인들이 자신의 새 작품을 선보이고 새로 발표되는 작품을 둘러싼 비평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카페 르 프로코프는 동명의 월간지를 발행하기도 했다. 1893년 10월 창간한 월간지 ‘르 프로코프’는 1897년부터 주간지의 형태로 발행되었는데 네 페이지로 된 타블로이드 크기의 주간지 르 프로코프에는 시, 꽁트, 단편소설, 모놀로그, 소희극 등이 실렸다.

세기말을 담아낸 카바레 ‘르 샤 느와르’

18세기가 담론의 시대였다면 19세기말 파리는 세기말 보헤미안의 축제를 즐겼다. 바로 이 축제의 무대는 몽마르트르의 ‘카바레’였다. 한국에 들어와 그 의미가 변질하였지만 본래 프랑스의 카바레는 풍자와 아이러니, 유머가 넘쳐난 공연 문화 산실의 장이었다.

1881년에 문을 연, 몽마르트르의 대표적인 카바레 ‘르 샤 느와르(Le Chat noir, 검은 고양이)’는 철학자와 노동자, 창녀, 외국인 등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만남의 장소인 동시에 시인과 예술가, 뮤지션들이 축제를 여는 보헤미안의 상징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최초의 문학, 예술 그리고 아방가르드 음악 카바레로 불리는 ‘르 샤 느와르’에서는 만담과 노래, 그림자극 등이 서로 혼합된 형태로 무대에 올려졌으며 처음으로 피아노 공연이 허가되기도 했다. 에릭 사티, 끌로드 드뷔시 등이 그곳에서 피아노 곡을 연주했다.

이 카바레 역시 동명의 주간지를 발행했다. 캬바레를 홍보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동명 주간지 ‘르 샤 느와르(Le Chat noir)’는 1882년 1월부터 1895년 3월까지 688호를 발행했고 이후 두 번째 시리즈로 1897년 9월까지 122호를 발행했다. 이 주간지에는 ‘세기말’ 정신을 구현한 시, 희곡 등이 다수 수록되었는데 베를렌느와 장 리슈팽의 글 또한 실려있다.

'르 프로코프'와 '르 샤 느와르'
‘르 프로코프’와 ‘르 샤 느와르’

오늘날, 도시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카페들로 가득하다. 여전히 카페는 수많은 사람이 만남의 장소로 이용하는 공간이지만 초기 파리의 카페들처럼 문화 커뮤니티를 구현하는 곳은 극히 드물다. 느리고 깊은 숨소리 같은 무크지, ‘우도에서 노닐다’가 사뭇 반가운 이유다.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