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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그토록 그곳에 가고 싶어 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지난 가을, 여행 다녀온 누군가가 SNS에 올린 사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멋진 한 장의 바위 사진에 반했었나 보다. 언제부터인지 ‘주왕산’은 내 산행 위시리스트에 올라있었다. 오래 벼르다 얼마 전 드디어 주왕산에 다녀왔다.

참 이상한 산이다. 매력적인 산이다. 바위와 폭포의 어우러짐이 환상적이다. 그렇지만 ‘바위와 폭포가 아름다운 산’으로 대표라 할 수 있는 ‘설악산’에 비하면 그 규모는 왜소하다. 주왕산 정상까지 721미터. 정상은 그저 애피타이저(Appetizer)일 뿐이다. 혹은 등산코스에 따라서는 디저트(Dessert)가 될지도 모르겠다. 주왕산의 참맛은 폭포와 바위가 어우러져 펼쳐 보이는 ‘학소대 ~ 제1폭포’까지의 풍광이다. 그 멋진 경치를 모두 보고서는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자그마한 산이 품고 있는 장관이 놀랍기도 하다.

대전사에서 바라본 ‘주왕산표’ 바위  2013년 7월 20일
대전사에서 바라본 ‘주왕산표’ 바위
2013년 7월 20일

주왕산 국립공원 입구에서 조금 올라가면 대전사가 나타난다. 주왕산의 느낌을 보여주는 ‘안내소’ 같은 곳이다. 규모는 작지만 단아하고 기품있다. 법당 위로 솟아있는 바위는 ‘주왕산표’ 바위 그대로다. 이곳에서 주왕산 ‘정상’을 애피타이저로 할 것인지 디저트로 할 것인지를 결정하면 된다. 유람파가 아닌 등산파인 나는 당연히 주왕산 정상을 먼저 올랐다. 초반에 계단과 오르막을 오르고 나면 이내 능선이 나타난다. 한 시간에 일이십 분을 더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어렵지 않게 올라서일까, 정상이 주는 감흥도 그리 크지 않다. 평지에 달랑 ‘주왕산’ 비석 하나가 어색하게 서 있을 뿐이다.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하는 정상을 벗어나면 내리막 능선길이 이어진다. 이곳에서 후리메기 삼거리로 향한다. 약 2.5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 약 한 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내려가다 보면 계곡물이 좋다. 물색이 갈색을 띠는 게 특이하다. 갈색빛 물에 자세히 보면 새끼손가락 만한 물고기들이 노닌다. 그늘은 시원하고 물소리는 경쾌하다. 주왕산은 흔히 가을 단풍이 멋지다고 하는데, 여름의 시원함도 절대로 뒤지지 않을 듯싶다. 별 다섯 개!

후리메기 삼거리쯤 도달하면 슬슬 진력이 난다. 언제쯤 폭포가 나타나는 건지… 삼십 분은 더 걸어야 제3폭포(용연폭포)로 올라가는 길과 제2폭포(절구폭포)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만날 수 있다. 주왕산에 가기 전 어느 블로그 글을 읽으니 주왕산에 폭포가 세 곳이나 있으니 굳이 다 올라가서까지 폭포를 볼 필요가 있을까 싶어 제3폭포는 건너뛰고 바로 2폭포로 향했다는 구절이 있었다. 제3폭포를 가보면 알게 된다. 얼마나 큰 실수를 한 것인지를. 주왕산에 대한 감탄은 바로 제3 폭포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주왕산 용연폭포  2013년 7월 20일
주왕산 용연폭포
2013년 7월 20일

용연폭포는 이단으로 흘러내리는 규모가 큰 폭포다. 상단 폭포 옆에는 둥그런 굴 두 개가 버티고 있다. 두 개의 굴을 보면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의 ‘절규’가 떠올랐다. 하단 폭포 아래에 서면 이단으로 흐르는 폭포의 초상화를 잡을 수 있다. 꽤 규모가 있고 인상적인 모습이다. 그에 비해 제2폭포인 절구폭포는 물줄기도 가늘고 규모도 작다. 대신 폭포 앞으로 계곡이 이어져 소풍 나온 가족들이 물장난치며 자리 잡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절구폭포 앞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고 설렁설렁 내려가다 별 준비 없이 제1폭포를 만났다. 나는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폭포 때문이 아니다. 폭포를 둘러싸고 있는 몇백미터 구간의 바위와 하늘의 어우러짐이 예술이었다. 우리 산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바위들이었다.

제1폭포 ~ 학소대 구간 2013년 7월 20일
제1폭포 ~ 학소대 구간
2013년 7월 20일
'제1폭포 ~ 학소대 구간'을 원경으로 찍은 모습   2013년 7월 20일
‘제1폭포 ~ 학소대 구간’을 원경으로 찍은 모습
2013년 7월 20일

선이 굵게 하늘을 향해 솟아난 바위가 바로 눈앞에 딱 버티고 있었다. 대개 우리 산에서 선이 굵은 바위들은 한 걸음 떨어진 곳에 병풍처럼, 그림처럼 걸려 있는 게 보통이었는데, 주왕산의 바위들은 조형물처럼 앞에 버티고 서 있다. 가본 적은 없지만, 사진으로 보았던 중국의 산세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하늘을 향해 솟은 주왕산의 선 굵은 바위  2013년 7월 20일
하늘을 향해 솟은 주왕산의 선 굵은 바위
2013년 7월 20일

당나라 때 주도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이라 칭한 뒤 당나라와 싸움을 벌이다가 크게 패한 뒤 쫓겨 다니다가 마지막으로 숨어든 곳이 바로 주왕산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중에서 발췌). 주왕이 살았던 곳이라는 전설이 만들어 진 것도 이곳의 산세가 중국 산과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주왕산은 인근에 탄산 약수로 유명한 달기 약수터, 인공 저수지로 만들어진 주산지 등 볼 것이 많다. 여름 휴가지로 가을 단풍 산행으로 꼭 한번 가볼 만한 곳이다. 비록 산행 1년밖에 안됐지만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독특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산이다.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 등산코스
등산코스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것이 대전사 ~ 주왕산 ~ 후리메기 삼거리 ~ 제2폭포 ~ 제1폭포 ~ 대전사로 돌아오거나 코스를 반대로 하여 대전사에서 제1폭포부터 시작하여 주왕산에 오르는 코스다. 전체적으로 무난한 구간이며 4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먹을것
주왕산 입구에는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여느 산과 마찬가지로 전, 두부, 도토리 묵, 막걸리 등을 판다. 그러나 주왕산의 특징적인 음식은 달기 약수로 끓인 백숙이다. 파르스름한 빛깔을 내는데 맛은 일품이라고. 그밖에 산나물이 좋아서 산나물 전도 특이한 맛을 낸다. 여름철에는 복숭아, 가을에는 사과가 유명한 곳이다.

▶교통
열차나 버스를 이용, 안동이나 대구에서 청송으로 가서 주왕산행 시내버스 (20분 소요)를 이용한다. 동서울터미날에서 주왕산행 버스(4시간 소요)가 1일 7회 운행한다. (‘한국의 산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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