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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슬로우뉴스가 가로수길서점과 제휴하여 좋은 책과 함께 매주 독자를 찾아갑니다. 가로수길서점은 “가로수길에서의 책 한 권”를 더불어 나누고자 2012년 7월에 문을 연 온라인 공간입니다.  (편집자)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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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의 절반도 거의 지나가고 있네요. 1월 1일을 맞이할 때 보였던 팔팔하고 힘찬 모습은 사라지고, 다소 지치거나 때 이른 더위를 핑계 삼아 늘어지고 있지는 않은지요. 새로운 달을 맞이한 겸 체력과 마음 충전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만큼은 조금은 가벼운 책, 그러나 읽고 나면 작가의 밝고 독특한 가치관으로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게 되는 책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 번째 에세이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입니다. 나른한 오후, 가만히 아이스 커피 한잔하면서 하루키가 쏟아내는 이야기를 가만히 읽어보세요. 우선, 작가와 책 소개부터 간단히 해 드릴게요.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1949년 교토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연극과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는 1987년 지금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는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을 발표하여 일명 하루키 신드롬을 낳았습니다. 그 이후로도 “해변의 카프카”를 통해 아시아 작가로는 드물게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도 합니다. “1Q84″로 제 2의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는 개성적인 문체가 살아 있는 에세이 작품으로도 소설 못지않은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데요. 그 중 하나가 바로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입니다. 2012년 3월 26일로 막을 내린 잡지 “앙앙”에서 1년 동안 연재해온 52개의 에피소드와 한 편의 다른 글을 모아 엮은 책인데요. 이 책을 통해 낯가림이 심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아기자기하고 비밀스러운 일상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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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5
영어는 지금 영미인을 위한 언어라기보다 링구아 프랑카(세계 공통어) 쪽 기능이 오히려 크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말해 ‘의미가 통하면 그걸로 오케이’라는 식이 된다. 그렇게 되면 중요한 것은 ‘유창하게 얘기하는’ 것보다 ‘상대에게 전할 내용을 자신이 얼마만큼 제대로 파악하는가’ 하는 것이다. 요컨대 아무리 유창해도 의미가 불명확하거나 무미건조하면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다. 내 영어는 유창하지 않지만, 의견만은 (문자 그대로) 팔아도 될 정도로 많이 갖고 있다보니 상대는 나름대로 귀를 기울여주는 것 같다.

Page. 75
나는 취향상 요즘 유행하는 바퀴달린 소형 슈트케이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무겁고 덜그럭덜그럭 시끄럽다. 비포장길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고 고장도 잦다. 그보다는 내 힘으로 들고 나를 수 있는 끈 달린 간단한 가방을 선호한다. 여행을 수없이 하다보면 약간의 철학이 생겨나는데, ‘편리한 것은 반드시 어딘가에서 불편해진다’ 라는 것도 그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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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물아홉 살이 될 때까지 글을 쓰기보다는 매일 육체노동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래, 소설을 써보자” 결심하고 한밤중에 주방 식탁에 앉아 짧은 소설(같은 것)을 줄줄 써나갔다. 그게 어쩌다 신인상을 받고 뭐가 뭔지 모르는 사이, ‘작가’라는 것이 돼버렸다. // 그래서 그뒤로 삼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내가 ‘소설가다’ 라는 사실에 약간의 불편함(혹은 껄그러움)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 소설을 쓰는 것 자체는 몹시 좋아하고 아무리 봐도 천직이라고 생각하지만, 소설가라는 직책과 사회적 지위에 대해서는 아직 뭔가 익숙하지 않다.

Page. 103
그 옛날, 프랑스의 여성 장관이 “일본인은 개미처럼 일한다”고 발언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는데, 당신은 개미의 생활이 좋은가, 매미의 생활이 좋은가 하고 묻는다면 선택하기 곤란하겠죠? 나는 소띠 산양좌 A형이어서(관계없으려나), 굳이 고르자면 개미 타입이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주의자여서 그런 딱딱한 단체생활은 싫을 것 같다. // 그렇다고 한여름 내내 나뭇가지에 붙어 “맴맴” 시끄럽게 우는 것 역시 천성이 말이 없다보니 기질적으로 맞지 않은 것이다. 잠자리 채를 든 아이들에게 오줌을 찍 갈기고 도망치는 건 즐겁겠지만. // 그런데 분명 개미든 매미든 자신이 개미라는 것, 매미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을 테지. 그저 개미로 살고 개미로 죽어갈 뿐. 거기에는 물론 선택의 여지 같은 건 없다.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인가 따위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런 인생도 있겠구나, 하고 이따금 진지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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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마 숙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길게 살다보면 심한 말을 듣거나 심한 처사를 당하는 경험이 점점 쌓여가기 때문에 그냥 예사로운 일이 돼버린다. ‘이런 일로 일일이 상처받으면 어떻게 살려고’ 하며 툴툴 털어낼 수 있게 되고, 그 칼끝을 능숙하게 급소에서 치우는 요령을 익힌다. // 그런 게 가능해지면 물론 마음은 편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곧 우리의 감각이 둔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상처입지 않도록 두꺼운 갑옷을 입거나 피부를 탄탄하게 하면 통증은 줄지만, 그만큼 감수성은 날카로움을 잃어 젊을 때와 같은 싱싱하고 신선한 눈으로 세계를 볼 수 없게 된다. 요컨대 우리는 그런 손실과 맞바꾸어 현실적 편의를 취하는 것이다. 뭐, 어느 정도 불가피한 일이긴 하지만.

볼까말까 이 책!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감상은 어떨까요? SNS상 독자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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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스더민 님 : 소설가로서 저자의 작품들은 저에게 어렵거나 난해한 것도 있었답니다. 그렇기에,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작가로 만들어버렸는데 이 에세이 시리즈를 읽다 보니 왠지 푸근한 이미지를 갖게 되었답니다. 그만큼 이 책 속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솔직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는 거죠. 여기에, 그가 살아온 삶 중 겪은 여러 가지 소소한 이야기들은 현재의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들었지 않나 싶기도 하답니다. //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면서, 아주 평범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작가. 그런데 작품들은 읽고 나면 며칠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왜 그랬을까?’라는 의문만 수없이 드는 작가 그럼에도 그의 명성만큼 왠지 겸손한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답니다. 이 에세이 시리즈가 아니었다면 작가의 또 다른 모습은 보기 어려웠을 테죠.
  • oz104 님 : 무라카미 하루키의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에서 언급한 자동차 클랙슨에 대해 똑같이 생각한 적이 있다. 일반 클랙슨 옆에 ‘속삼임 모드’같은 게 필요하다고. 가볍게 알리고 싶은데 놀랄까 봐 누르지 못하거나. 가볍게 눌렀는데 보행자가 너무 놀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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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ardin 님 : 정말 의외의 웃음을 짓게 해 준 책이다. 때론 쿡 쿡 웃음이 짓게 되는 이유를 뽑으라면, 음~ 상상을 해 보자. 책갈피 표지에 약력을 소개한 사진을 보면 스포츠 형 비슷한 머리의 맘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의 모습이다. 이런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글 중 때론 야한 생각을 하는 장면이나, 운전 중 미러에 대고 치카치카를 하는 장면, 여행을 준비하면서 아내와 자신의 취미가 달라서 수집하는 물건들이 다름을, 그러면서도 자신이 할 말은 다하고도 엉큼하게 언제 내가 그런 얘기를 했느냐는 듯이 한발 물러선 듯한 모습을 연상시키는 글 솜씨는 정말 귀엽단 말이 떠오르면서 연신 웃음이 떠나가게 하질 않는다.
  • Breeze 님 :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는 이웃집 아저씨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정감이 있다. 그냥 옆집 아저씨가 들려주는 것처럼 일상적이고, 개인의 생각들이 들어 있어, 글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하는 것 같다. (중략) 무라카미의 51편 에세이를 읽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다. 채식을 좋아해 샐러드를 커다란 양푼으로 한가득 먹을 수 있다는 샐러드 이야기를 하는 페이지에서는 나도 모르게 그가 샐러드를 아구아구 먹는 모습을 상상했다. 웃기는 모습이었다.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작가의 성격을 조금은 알 수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일하다 산책 나오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평상복 차림으로 맥주집에도 다니며, 같은 작가들과는 교류하지 않는 조심스러운 사람 같았다. 또한, 여자를 말하는 모습에서도 생활적인 냄새가 났다.
  • flow2제목을 보았을 때 육식동물 사자가 샐러드를 좋아하게 되려면 자신의 본능을 거슬러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인간이 자신의 본능을 교육이나 깨달음 등으로 벗어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이런 조금은 깊은 생각을 하면서 목차를 둘러봤다. 무라카미 라디오 에세이 중 한 편이라고 미리 짐작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제목이 보이지 않는다. 뭐지? 하는 당혹감이 먼저 생긴다. 하지만 첫 에세이에서 왜 이런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나의 짐작이 너무 많이 나갔다는 것을 바로 보여준다. 이런 표현이 하루키를 좋아하게 만들지만.

오늘 소개한 이 책과 같이 보면 좋은 책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같은 듯 다른 이 책, 볼까 말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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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생각났던 건 “요나의 키친”이라는 요리책이었어요.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라는 제목이 아이러니한 것처럼 요나의 키친이라는 책도 섭식장애를 앓던 소녀가 지금은 음식과 요리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에서 닮은 점이 있는 것 같은데요. 또, 저자가 요리에 대해 공부하게 된 계기도 일본유학에서였다고 하네요. 이 책은 단순히 음식의 조리과정을 보여준 책이 아니라 저자만의 요리에 얽힌 사연과 유학 시절 에피소드, 그림, 사진도 담고 있어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와 함께 읽으면 더욱 흥미로운 책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보는 경우가 상당히 드문 편인데요. 왠지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는 마음이 복잡하거나 휴식이 필요할 때마다 읽고 싶은 부분을 골라서 보게 될 것 같습니다. 보통 책을 볼 때는 최대한 조용한 분위기에서 읽으려고 하는데, 이 책은 잔잔하거나 경쾌한 노래를 함께 들으면서 가볍게 읽기에도 좋은 것 같아요. 별다른 노력 없이 술술 읽고만 있어도 미소가 지어지는 책입니다.

제가 하루키의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평범하지만 또 어쩐지 비범해 보이는 일상이 재미있고 그의 꾸미지 않은 솔직한 문체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무라카미 라디오 시리즈 중 작년 6월에 출간했던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중에서 메모해두었던 구절을 읽어 드리는 것으로 이 시간을 마칩니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정말로 슬펐던 적이 몇 번 있다. 겪으면서 여기저기 몸의 구조가 변할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상처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때마다 거기에 뭔가 특별한 음악이 있었다, 라고 할까, 그때마다 그 장소에서 나는 뭔가 특별한 음악을 필요로 했다. 어느 때는 그것이 마일스 데이비스의 앨범이었고, 어느 때는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이었다. 또 어느 때는 고이즈마 쿄코의 카세트테이프였다. 음악은 그때 어쩌다보니 그곳에 있었다. 나는 그걸 무심히 집어들어 보이지 않는 옷으로 몸에 걸쳤다. 사람은 때로 안고 있는 슬픔과 고통을 음악에 실어 그것의 무게로 제 자신이 낱낱이 흩어지는 것을 막으려 한다. 음악에는 그런 실용적인 기능이 있다. 소설에도 역시 같은 기능이 있다. 마음속 고통이나 슬픔은 개인적이고 고립된 것이긴 하지만 동시에 더욱 깊은 곳에서 누군가와 서로 공유할 수도 있고, 공통의 넓은 풍경 속에 슬며시 끼워넣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소설은 가르쳐준다. 내가 쓴 글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그런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p219

[box type=”info”]본 게재본은 원문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가로수길서점 블로그의 원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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