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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를 위하여: 백지사설, 편집권 그리고 순수에 관하여

연세대학교의 학보인 연세춘추는 몇 달 전 운영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첫 면이 백지로 된 호외를 펴냈다. “예산 지원을 외면하는 학교에 항의하는 뜻”을 담은 것이었다. 학교에서 기존 연 예산이었던 8억원 중에서 교직원 인건비와 인쇄비 등 5억원만 남기고 나머지를 삭감했다는 것이 당시 연세춘추 관계자의 말이다.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연세춘추의 1면이 백지로 발행된 것은 2007년 5월 편집권 갈등으로 같은 일이 있은 뒤 이번이 두번째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는 사설

연세춘추는 2007년 이전에도 백지로 신문을 낸 적이 있다. 2000년 4월 3일 발행한 1388호다. 다만 이 당시에는 면 전체가 백지였던 것은 아니고 ‘사설’만 백지로 나왔다.

백지 사설 아래에는 “『연세춘추』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아 게재하지 않습니다. 읽는이 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라는 글이 씌어 있었다. 당시 이 안내문 아닌 안내문을 읽으면서 쓴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종합 일간지 칼럼난 아래 관례적으로 달려 있는, ‘외부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이번에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상황에서 패러디처럼 쓰였기 때문이다.

사설(社說)이라는 건 말 그대로 그 신문의 발행사(社)가 직접 하고 싶은 논설(說)을 이르는 것이다. 사설을 영어로는 에디토리얼(Editorial)이라고 하고 편집 방향은 에디토리얼 폴리시(Editorial Policy)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테니, 백지로 발행된 당시 연세춘추의 사설 아래 안내문은 에디토리얼이 에디토리얼 폴리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물론, 단단히 모순이다. 세계 언론사에 유례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에디토리얼 폴리시와 일치하지 않는 에디토리얼

에디토리얼 폴리시와 일치하지 않는 에디토리얼

당시 편집자는 사설 내용은 백지로 발행하면서 제목만은 살려뒀다. 늘어난 흰 여백 덕분에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그 제목은 ‘등록금 투쟁, 이대로 좋은가’다.

이쯤 되면, 당시 학생 편집자가 어떤 생각에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것도 같다. 문제가 된 1388호가 발행되던 4월에는 늘 그렇듯 등록금 투쟁이 한창이었다. 특히 2000년은, 비권 총학생회 시절인 1999년과 달리, 이른바 민중민주(PD) 계열인 ‘우리, 꼬뮤나르드’가 총학생회로서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이 때문에 연세춘추 사설 집필자는 등록금 투쟁을 날을 세워 비판했을 터이고, 학생인 편집국장은 도저히 이 사설을 실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이런 강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당시까지 일반적으로 연세춘추는 편집본을 들고 교수에게 가서 사인을 받은 뒤에 조판 작업에 들어갔는데, 1388호 제작시에는 교수에게 사인을 받는 과정을 아예 생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호의 1면을 보면 당시 편집인은 양승함 현 정치외교학과 교수였고, 주간은 박영렬 현 경영대학장과 유평준 현 글로벌행정학과 교수였다. 그리고 편집국장은 당시 인문학부 3학년이었던 조익신 씨(현 jtbc 정치부 기자)였다.

대학언론과 편집권 독립

신문이 나온 뒤에 사달이 난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연세춘추는 1주일 뒤인 4월 10일 발행한 1389호에서 “위 사설은 1388호(4월 3일자)에 게재될 예정이었으나 마지막 조판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로 인해 공란으로 보도된 바 이번호에 다시 게재합니다. 읽는이 여러분의 많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라는, 역시 안내문 아닌 안내문과 함께 문제가 된 사설을 전문 게재했다.

게재된 사설은 “등록금 투쟁이 과열되고 있는 것은 전국적인 연대 속에서 학생회가 경직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전제하고 “소모적인 대립은 중단돼야 한다”는 이유로 “학교당국은 확고한 교육신념과 의지로 학사업무 방해 및 학교기물파괴자들을 준엄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강경 발언을 담고 있었다. 이 신문이 총장을 발행인으로 하는 학보사임을 고려하면 학생들에게는 일종의 징계 예고로까지 받아들여질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학생회 "등록금을 동결하라" 연세춘추 사설 집필자 "아니, 동지, 우리와 함께 국가를 상대로 싸우자"(…)

학생회 “등록금을 동결하라”
연세춘추 사설 집필자 “아니, 동지, 우리와 함께 국가를 상대로 싸우자”

그리고 다시 한 달가량이 지난 그해 5월 8일 1391호 1면 귀퉁이에는 조익신 편집국장이 4월 17일부로 해임되고 정수근 씨(당시 인문학부 3학년, 1388호 발행 당시 편집부국장)가 같은 날 신임 편집국장으로 발령받았다는 사령이 실렸다. 연세춘추 출신들에 따르면 시사부장과 사진부장도 정직 처분을, 편집부국장 외 다른 4명의 부장들도 경고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2000년의 연세춘추 백지 사설 사태는 1935년 첫 발행된 연전타임스의 뒤를 잇는, 대학신문의 효시라는 이 신문의 편집권이 전혀 독립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한국일보의 1면 백지 발행 사태

2013년 5월 2일 일부 지역에 배달된 한국일보 1면은 제호 아래, 오른쪽 윗부분이 하얗게 뚫려 있었다. 한국일보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는 2000년 1월 1일자에서 “(새로운 천년이라는) 가능성의 공간을 독자에게 바치자”는 뜻으로 1면 백지 발행을 하고서 호평을 받은 바 있는데, 이번에는 어떤 기획일까.

아쉽게도 이번에는 기획성 기사가 아니었다.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이번 1면 백지 발행 사태는 “사주가 경영권 유지 등 사익을 위해 매각 협상을 그르쳤다”고 인식하고 있는 한국일보 기자들이 1면에 ‘회장의 불법 인사를 거부한다’는 성명을 싣자,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사주 측이 해당 성명을 빼고 신문을 다시 발행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이튿날인 3일에는 2면에 실리기로 돼 있던 한국일보 편집국 비상총회 관련 기사가 삭제돼 백지로 나왔다. 일부 배달판에서는 백지 대신 한국일보가 주최하는 2014년도 대입 설명회 소식을 전하는 사고(社告)로 대체되기도 했다.

1면이 백지로 나온 한국일보. 세로로 길게(長) 백지가 나왔으니 장백지?

1면이 백지로 나온 한국일보.
세로로 길게(長) 백지가 나왔으니 장백지?

하루만에 다시 등장한 장백지(…)

하루만에 다시 등장한 장백지

한국일보 노조는 앞서 지난 4월 사주인 장재구 회장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개인이 필요한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한국일보에 200억원 상당의 재산상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 노조가 밝히는 고발 이유다.

이에 장 회장은 5월 1일 이영성 편집국장을 해임하는 인사로 맞섰다. 장 회장은 이 국장 대신 하종오 전 사회부장을 신임 편집국장으로 임명했다. 그런데 장 회장이 이 인사 과정에서 노사 합의사항을 일방적으로 어겼다는 것이 한국일보 노조의 판단이다.

앞서 언급했던 연세춘추가 학교의 뜻에 따라 편집국장을 해임하고 새 편집국장을 임명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국내의 주요 전국단위 종합일간지들은 편집국장을 투표로 평가하는 절차를 두고 있다. 편집국장 임면(임명)동의제 또는 편집국장 복수추천제가 그것이다.

미디어오늘 기사에 따르면 이 인사에 대해 한국일보 노조는 “장 회장은 노사가 합의한 ‘한국일보 편집강령규정’ 조차 일방적으로 위반했다”고 반발했다. 편집국장 임명 시 5일 전에 내정자를 조합과 편집평의회에 통보하도록 되어 있는 규정을 어기고 일방적으로 인사를 발표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일보 노조 비상대책위원회는 이영성 편집국장 해임안에 대한 투표 결과 편집국 구성원 98.8%가 해임을 반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 회장은 고집을 꺾지 않았고 6월 7일 창간기념사를 통해 “과일나무에 가지치기를 하는 것은 좋은 과일을 얻기 위한 것”이라며 “순수한 뜻을 가진 사원들과 함께 독자들에게 신뢰받는 한국일보를 만들겠다”고 주장했다. 자신과 대립하고 있는 기자들을 내보내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그리고 장 회장은 급기야 편집국을 봉쇄하고 기사 집배신을 폐쇄했다. 기자들의 아이디도 삭제했다. 이 과정에서 용역이 동원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한국일보 기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집배신 시스템에 접속하려고 하면 ‘퇴사한 사람’이라는 안내가 뜬다”고 증언을 내놓으며 도움과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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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16일, 한국일보 사측은 편집국을 폐쇄하고 시스템 로그인까지 차단했다.

편집권 독립과 한국일보

일각에서는 이번 한국일보의 싸움이 지난해 공정보도라는 기치를 걸고 파업한 연합뉴스와 KBS, MBC, YTN, 국민일보, 부산일보 등과는 다르다고 보기도 한다. 회장 개인의 ‘배임’에서 시작됐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사주가 있는 신문사에서는 회장 개인의 일이 신문 편집에 있어서도 큰 문제로 떠오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최근 조민제 국민일보 회장에 대한 법원 판결을 각 신문이 어떻게 보도했는지 제목만 비교해 봐도 명확히 알 수 있다.

더구나 한국일보는 회장의 배임과 관련한 분쟁이 발전해 사주 측이 편집국장의 교체를 기도하는 데까지 나아갔으며, 다시 편집국이 편집해 내놓은 신문을 백지로 다시 내놓는 사태에까지 이른 문제이므로 공정보도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편집권 독립과 관련한 투쟁으로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한국일보의 편집국장 기습 경질이 최근 1년여 사이 두번째 일어난 일이라는 점도 이번 사태가 편집권 독립과 직결되는 이유다. 재정적으로 부침을 겪은 한국일보는 지난 2011년 ‘적극적 중도’를 내세운 이충재 편집국장 체제가 되면서 안팎에서 새로운 평가를 받았다. 안에서도 이 전 국장에 대해 만족했고, 미디어오늘과 기자협회보 등은 “한국일보가 달라지고 있다”, “힘 있는 언론 명성 되찾나” 등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이 전 국장은 취임 10달 만에 기습적으로 경질됐다. 프레시안에 따르면 이 전 국장의 경질은 한국일보 직원들도 연합뉴스 보도를 보고서야 알았을 정도로 사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이상석 당시 한국일보 사장은 이 전 국장을 경질한 이유로 ‘광고 매출의 점진적 감소’ 등 경영 부진을 들었다. 결국 한국일보 사측의 눈에는 편집국장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신문을 만드는 책임자가 아니라 기사로 돈을 벌어오는 사람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일보 기자들의 투쟁은 필연적인 것이다.

한국일보는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먼저 노동조합을 만든 언론사다. 전국언론노조의 전신인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이 1999년 펴낸 ‘언론노련 10년사’는 1987년 당시 한국일보 노조의 순수를 긴박감 넘치게 기록하고 있다. 한국일보가 지켜야 할 ‘순수’는 사주를 비호하는 순수가 아니라 이런 언론운동의 순수다. 한국일보 기자들의 투쟁을 뜨겁게 응원한다.

1987년 10월 29일 서울 종로 2가 YMCA 회관 2층 친교실. 오전 8시에 ‘영등포 조기축구회’ 모임이 예정되어 있었다. 약속했던 오전 8시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흥분한 모습으로 주변을 살피며 긴장하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아예 인근 여관에서 밤을 지새고 나왔다. 친목 모임 참석이라기보다 오히려 비밀 결사에 참가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드디어 오전 8시가 되자 58명이 모인 가운데 모임이 시작됐다. 그것은 친목 모임도, 비밀 결사도 아닌 한국일보사 노조 결성식이었다. 이신우 일간스포츠 기자가 임시 위원장을 맡아 진행한 이날 창립 총회에서는 국민의례, 성원 보고, 경과 보고, 결성취지문 낭독, 노동조합 결성 찬반투표, 규약 채택, 임원 선출, 폐회로 이어지는 식순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이들은 총회가 끝나자 서둘러 관계 서류와 설립신고서를 갖춰 종로구청에 제출했다. 이 순간까지도 발기인들은 내내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1974년 노조 결성 당시 구청측이 갖은 핑계로 접수를 거부하여 끝내 합법 노조에 이르지 못했던 경험 때문이었다. 종로구청 직원은 제출된 서류를 꼼꼼히 살펴보고는 이를 접수했다. 이로써 2개월 간 비밀 첩보 작전식으로 추진해온 한국일보사 노동조합 결성이 정식으로 완료돼 1980년대 민주화 이후 첫 언론노조가 탄생하였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언론노련 10년사』(1999), 2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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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추락, 더 볼 수 없어 거리 섰습니다”
한국일보 비상대책위원회 특보를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한국일보 조합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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