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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정치인인 울산 택시기사 김창현 님은 하루하루 겪은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연재합니다. 이 택시 일기를 필자와의 협의를 거쳐 슬로우뉴스에도 연재합니다. 택시라는 작은 공간 속에서 만난 우리 이웃의 이야기들은 때론 유쾌하게, 때론 담담하게, 또 때론 깊은 감동으로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그 이야기들을 거울삼아 우리는 삶을 돌아봅니다. 그 삶의 풍경을 매주 조금씩 공들여 담아볼까 싶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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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현의 택시일기

파출소 경찰, 자율방범대와 함께 야간 순찰을 돌며 청소년 야간선도를 하는 40대 여성 둘을 태웠다. 청소년 상담공부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며 좋은 일을 한다는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하였다.

밤에 모여 담배를 피는 게 뭐가 문제?

“밤 늦은 시각, 초등학교 구석에 가면요. 남녀 학생들이 잔득 모여 있어요. 글쎄 집에도 안가고.”
“그러면 어떡하나요?”
“집에 가라고 선도하고요. 잘 안가면 방범초소로 데려와 집에 연락하기도 해요.”

“밤에 집에 안가고 모여 있으면 뭐가 문제지요?”
“남녀 학생이 모여 있으면 아무래도 문제지요.”
“어떤 문제지요?”
“일단 청소년들은 미성년자고요. 일찍 집에 들어가 공부해야 하잖아요.”
“아무런 잘못을 저지른 것이 없이 밤에 모여 있다는 것 만 갖고 왠지 불온시 하고 범죄인 취급하는 것 같지 않나요?”

“담배도 피워요.”
“담배 피우면 뭐가 문제지요?”
“음… 건강에 안 좋고 또 미성년자가 피면 안 되지요.”

“건강에 안 좋으면 어른들도 못 피게 해야지요. 사실 건강으로 따지면 어른들은 몸이 많이 망가져 있으니 더 안 좋지요. 아이들은 한창 새로운 세포가 생겨나니 극복이 훨씬 빠르지요. 미성년자에게 강제로 못 피게 하려면 우선 어른들을 강제로 못 피게 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담배의 해악을 잘 가르쳐 스스로 담배를 멀리하게 만들어야지 강제한다고 잘 되겠어요?”
“……”

이 아주머니들은 황당한 기사를 만났다. 상식을 자꾸 벗어난 이야기를 하니 말이다. 그런데 반박하기가 쉽지 않음을 느낀 한 여성이 말을 받는다.

“그러고 보니 아무 짓도 안했는데 무조건 잡아오고 집에 연락해서 데려가게 했네요. 아이들 입장에선 기분 나쁘고 황당하겠군요. 인상을 험악하게 쓰고 말을 안 들어서 아이들이 빗나가 그렇다고만 생각했는데…”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예비 범죄자 취급하는 게 선도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청소년들의 인격, 그들의 인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뭐 사실 담배를 저도 찬성하지 않습니다만 그렇다면 일관성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어른들이 학생들을 선도하려면 말이지요.”

청소년은 성관계를 하면 안 된다고 법에 나와 있나

입을 다물고 뭔가 반격의 기회를 노리던 다른 아주머니가 입을 열었다.

“집에 안가고 밤거리를 쏘다니다 보면 성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져요.”
“성문제요? 정확히 말하면 성폭행인가요? 아니면 둘이 하는 성관계인가요?”
“둘 다지요. 성폭행 위험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고요. 어린 것들이 좋아한다고 하면 안 되잖아요?”

“성폭행은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큰 범죄니 일단 빼놓고요. 그런데 청소년은 성관계를 하면 안 된다고 법에 나와 있나요? 세계 어느 나라에 그런 법이 있나요?”

갑자기 택시 안에 정적이 흐른다. “지금부터 갈 때가지 가볼까.” 싸이의 노래가사가 떠오른다.

“그렇잖아요? 왜 청소년 집단 윤간사건이 빈발할까요? 제대로 성관계를 안 가르쳐 그런 것이지요. 아무도 사랑하는 이들의 아름다운 성관계를 가르쳐 주지 않고 무조건 어린 것들은 하면 안 된다고만 가르치니 청소년들이 그 정보를 어디서 얻겠어요? 모두 야동, 포르노에서 얻잖아요. 거기 나오는 남녀 성관계가 어디 정상인가요? 여성의 거부의사는 곧 찬성을 의미한다고 나오지 않던가요? 얼마나 집단 sex가 많습니까? 왜곡된 성을 배우고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이지요.

공자님 같은 도덕적 언사만 하는 어른들에게 뒤돌아서면 혀를 내밀고 비웃으며 말이지요. 청소년들이 나누는 말 중 ‘따먹었다.’라는 말이 있어요. 정말 옳지 못한 기분 나쁜 표현이지요. 가끔 정신 못 차린 일부 어른들도 이런 말을 술자리에서 쉽게 내뱉곤 하는데요. 왜 이런 말을 하게 되었을까요?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먹습니까? 얼마나 폭력적입니까? 아무도 올바르게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남녀가 성을 매개로 서로 사랑을 나누는 것의 희열과 아름다움을 가르쳐 주지 않으니 한 쪽이 한쪽을 해치운다는 식의 표현이 나오는 것이지요.”

“그럼 아저씨는 아저씨 딸한테도 막 해도 된다고 가르치나요?”
“허허. 막하면 안 되지요. 그러나 성에 대해서 스스럼없이 말은 합니다. ‘사랑하는 행위이고 정말 좋은 것이다. 다만 사랑에는 항상 책임이 따르는 것을 잊지 마라. 서로의 감정과 생활의 콘트롤은 자기 몫이다. 물론 피임도 마찬가지이다.’ 뭐 이렇게 가르치지요. 딸아이가 훨씬 생각이 깊어지고요. 또 숨김이 없어지지요. 아빠를 좋아하게 되는 건 부수적인 수입이고요. 하하.”

“와. 대단하네요. 갑자기 아저씨가 존경스러워 지네요. 누구나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안 되는데…”
“나는 우리 십대에게 남학생 여학생 어울려 파티를 자주 열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같이 노래 부르고 손잡고 춤추면 얼마나 좋아요?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남녀가 잘 사귀는 방법을 일러 주는 것 아닐까요? 그 사랑을 잘 표현하고 또 넘치는 성 에너지로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지 않아야 하지 않겠어요? 아무리 어린애로 치부하고 묶어 두고 싶어도요. 우리 아이들은 중 3, 고1이 되면 육체적으로 다 컸고요. 정신적으로 아주 빠르게 세상을 익혀가고 있거든요. 조선시대까지 가지 않아도 바로 몇 십년 전만 해도 고등학생들이 4.19혁명을 주도 했어요. 우리 어른들이 어른대접을 하고 자존감을 세워주면 청소년들은 아주 빠르게 자기 인생을 책임지는 어른이 됩니다.”

“공부 안하고 매일 놀기만 하는 그 애들에게 그런 자유를 주면 아주 개판될 것 같은데…”
“우리 어른들은 연애를 해도 사회생활이 망가지지 않지요. 왜 그럴까요? 자기 인생의 한 부분이지 그것이 전부는 아니니까요. 청소년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워낙 질풍노도의 시절이니 심하게 연애병을 앓고 빠져들기도 하겠지만 다 돌아옵니다. 우리 다 겪어 봤잖아요? 좀 아이들을 믿어야 지요.”

philip.bitnar (CC BY)
philip.bitnar (CC BY)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다른 인격체, 바로 남

“참 맞는 말씀이신데요. 그리고 참 좋은 말씀이고요. 그런데 왜 아이 얼굴만 보면 자꾸 폭발할까요?”
“그건 말이지요. 소유욕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 아이는 내꺼’ 라는 생각. 이게 가장 큰 문제지요. 아버지들은 사실 어머니 보다 훨씬 아이들에게 소유욕이 약해요. 그래서 이성적으로 사물을 판단하는데 엄마들은 자주 이성을 잃어요.”

“소유 의식 때문이군요.”
“예. 엄마는 자기 배속에 열 달을 키우고 아이를 낳고 또 갓난아이 때부터 젖 먹여 키우다 보니 아이를 남이 아닌 자기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문제의 시작이랍니다.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엄마와 완전히 다른 인격체, 바로 남입니다. 그걸 인정하세요. 소유하려 들지 말고 남이다 남!”

“남이다. 아~ 좋은 말씀이시네요. 남편한테는 그걸 진작 결론 내렸는데 아이들한테는 그 결론이 아직 안 내려지는데요. 정말 힘든 말이군요. 남, 남이라…”
“남이다. 나와 전혀 다른 객체다. 이렇게 보면 화가 훨씬 덜 날걸요? 청소년 상담하신다면서요? 다른 아이들 머리 노란 건 화 안 나잖아요? 그 아이들한테는 객관성이 유지되니까요. 자기 자식한테만 문제의 객관성을 보는 눈이 없어지지요?”

여기에서 우리의 대화는 끝났다. 두 사람은 처음 대화를 시작할 때의 태도는 사라지고 헤어짐을 못내 아쉬워하며 내렸다. 많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한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지는 것임을 빨리 깨닫게 하는 것이야말로 해답

그러나 나는 안다. 아이와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 지금까지 인내하겠다는 결심은 다 사라지고 또 폭발할 것이다. 어찌 사랑하는 아들을 남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런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부모는 잘 없기 마련이다. 엄마의 속이 썩고 또 썩고 또 썩어야 아이는 어른이 된다.

나는 장가 간 아들이 첫 전셋집을 계약할 때 어머니가 따라가 대신 서명하는 것을 숱하게 보았다. 어찌나 ‘내 새끼’하며 길렀는지 30대 40대가 되어도 아직 엄마의 품에서 떠나지 못하는 꼴불견을 연출한다. 성숙한 인격체로 대접하고 그에 맞는 대화를 하고 그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지는 것임을 빨리 깨닫게 하는 것이야말로 해답이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아이에게 맡겨두자. 이게 답이다. 공부도, 이성교제도 자기의 인생개척도 자기 책임이지 부모의 몫이 아님을 빨리 선언하자. 그러고 나면 훨씬 아이의 생각이 깊어지고 대화의 격조가 높아 질 것이다. 장담한다.

2013년 5월 30일 활짝 갬. 자식은 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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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현행법상 13세 이상인 자가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진 경우 처벌받지 않습니다. 물론 법적인 내용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 나라에서 일정 연령 이하인 자의 성관계를 법률로 처벌하기도 합니다. (참조: 위키백과) 다만, 본문에 언급한 내용은 문맥상, 청소년의 성 문제에 대해 열린 시각으로 대화하고 교육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2013-06-03 14:10,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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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아이의 존재를 인격적으로 대우해주는 연습이 부족하여 매일 매시간 나의생각 대로 좌지우지하는 일일들로 맘상하고 맘다쳐서 괴로워 할때가 숱한것 같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우리 아이들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세를 가르치고 존중하는 법을 터득해 가는
    것이 바른길임을 늘 숙지해야겠습니다
    따랑하는 혀니씨 더운날씨에 수고많으시구요..안전운행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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