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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 세대에게 묻다: 일이란 무엇인가

일이라는 것이 굉장히 좋은 활동이라면 누가 돈까지 줘가며 일을 시키겠는가? (마이크 로이코)

– 알 지니, [일이란 무엇인가], 공보경 역, 들녘, 2007, 40p.

일은 그 사람의 사회적 자아, 역할, 지위 그 모든 것을 대변한다. 물론 일이 아니라 ‘소비’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사람도 있다. 일을 가질 능력이 안되거나 아니면 일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다. 일, 아니면 소비. 월급 명세서가 아니라면 카드 명세서라도 갖고 있어야 이 사회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소비가 있어야 시장을 창출할 수 있으니까. 그래야 우리에게 일자리가 생기지 않겠는가?

TaxCredits, "Job Search" (CC BY)

TaxCredits, “Job Search” (CC BY)

우리 대부분은 돈 때문에 원하지 않는 일을 한다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말 한 취업사이트가 8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바, 전체의 65.7%가 현재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이유로 절반 가까이 경제적 이유를 들었다. 거칠게 표현하면,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겨레에 이런 기사도 떴다. 중소기업의 잦은 이직을 막기 위해서는 연봉보다 일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기업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직장인의 2/3는 돈을 벌기 위해 원하지도 않은 현 직장을 택했지만 일 만족도가 낮아 결과적으로 이직이 잦다는 해석을 해 볼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 같아서 이런 이직의 순환고리에 갇힌 직장인 중 일부는 경력이 제대로 쌓이지도 않은 채 니트족이 되거나 수입이 불규칙한 일자리를 전전하게 된다. (니트족: 진학, 취업, 직업훈련을 하지 않는 사람. Not currently engaged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약자)

실업 세대

미국에서 사람들이 일을 통해 ‘자아’를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난 배경에는 베이비붐 세대의 종신고용 신화가 사라진 데 있다. 회사가 노동자의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는 가운데 노동자는 스스로 가치를 자아에서 찾기 시작한 것이다. (알 지니, 같은 책, 53p) 이는 국내 사정에도 대입해 볼 수 있어서 많은 구직자들이 자아를 찾고 꿈을 이루는데 직업의 목적을 두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해서 꿈을 이루는 직업을 갖기는커녕 국내 실업률은 5.8%에 육박한다.

세계로 눈을 돌려 보면 다를까? 최근 이코노미스트 지(紙)는 전 세계적인 현상인 실업 세대(‘generation jobless’)를 특집기사로 실었다. OECD 조사 결과 개발도상국에 사는 만 15~24세 사이의 청년 2천6백만 명이 일자리가 없으며 미국과 영국에서는 인문학사 학위로는 안정적인 직장을 얻을 수 없다. 교육에 대한 높은 투자도 실업을 막을 수는 없다.

꿈꿀 수 없게 하면서, 동시에 꿈꾸라고 강요하는 사회

우리나라도 많은 구직자가 교육에 대한 높은 비용으로 직장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게다가 직업을 선택할 때 ‘꿈’, ‘자아실현’과 같은 이상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반드시 일을 통해서만 자아를 실현해야 할까?

몇 년 전부터 한국에 불어 닥친 자기계발서 열풍은 ‘힐링’, ‘청춘’ ‘멘토’ 등을 주요 키워드로 삼아 엄혹한 현실에도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주문을 건다. 꿈을 가지고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보라고, 네가 지금 이룬 것이 없는 이유는 아직 청춘이고 스스로 노력이 충분치 않아서라고 말이다. 하지만 진실은 원하는 일을 실제로 할 수 있는 능력과 환경의 소유자는 따로 있다는 것이 아닐까. 일을 통해서가 아니면 인간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는 걸까.

Y, "I hate this job", (CC BY)

Y, “I hate this job”, (CC BY)

이런 흐름은 미국에서 먼저 시작됐다. 미국 작가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저서 [긍정의 배신]에서 ‘너는 할 수 있다’라는 긍정주의가 미국인의 심리를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를 묘사한다. 미국에서 ‘성공-목표를 성취하라’를 메시지로 저서, 강연, 비디오테이프 등을 통해 형성된 시장은 자그마치 210억 달러로 그 자체가 하나의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기업논리에 유리한 이데올로기로 활용되면서 실패에 관한 책임을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전가,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자기착취를 내재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긍정주의가 일궈내는 자기착취의 가장 위험한 요소는 사람들이 그것을 착취라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이 자유롭다고 믿는 데 있다.

한국도 이와 다르지 않다. 꿈을 ‘셀링’하는 트렌드가 만연한 가운데 젊은 구직자들은 안정적 직장과 자아실현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돌고 있다. 한국사회 시스템을 순종적으로 따랐다면 나올 수 없었을 변종, 싸이나 김연아가 롤모델이 되는 사회에서 그저 평범한 우리들은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걸까? 열정을 기름 삼아 노동착취를 일삼으려 하는 사회에서 얼마나 버티면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일까? 언제까지 현재의 직장을 나의 꿈을 향한 징검다리로 생각하면서 현실을 부정해야 하는 걸까.

꿈과 긍정주의가 초래하는 소외… 일상 자체에 혁명성을 품어야

꿈과 긍정주의는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별 볼일 없이 느끼게 한다.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에 무관심한 데에는 나의 ‘미래’의 삶은 지금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삶과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도 작용하고 있다.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불평, 불만만 많은 그래서 저임금 노동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회의 부적응자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로 직접 다가오지 않는 한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마저도 마치 남의 일처럼 생각한다.

또한, 꿈과 긍정주의는 자신을 과대평가하게 한다. 물론 스스로 과소평가해서도 안 될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목도하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고, 능력에 적정한 수준의 직업 교육을 받으며, 이를 통해 성취를 일구는 삶을 꿈꾸게 하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 스스로 일이 자신에게 미치는 의미를 사유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삶을 얻으려면 일상에 ‘혁명성’을 내재해야 한다. 앞서 확인했듯 한국사회는 아직 개인의 삶을 돌아볼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 노동문제에 관심을 두고, 스스로 변화를 주도해야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사실 최근 다니던 회사에 퇴직서를 냈었다. 하고 있는 일이 내 적성과 꿈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은 지금도 그 회사에 다니고 있다. 지금까지의 고민은 모두 여기에서 출발했다. 나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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